경계와 함께 걷기: 고백(2)

말할 수 없던 시간들을 지나, 다시 말할 수 있는 자리로(마지막편)

by 호수를 걷다




퇴사 날,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커피 쿠폰을 바라본다.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해 보려 한다.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한계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곳에 가만히 손을 뻗어 본다. 그곳은 이제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속 싱클레어의 말처럼, 나는 그 문장을 다시 붙잡는다.

그 말은 단지 고무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존재의 시선이 바뀔 수 있다는, 후대를 향한 작가의 배려 같았다. 위로의 말 같았다.


그렇게 나는 깨닫는다. 이 마음은 상실이 아니라 이해라는 것을. 그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살아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내 감정에 자리를 내어 준다. 혼란스러운 마음속에, 나라는 정체성을 다시 세워 본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당신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상담실을 나와 혼자 걷던 길. 그렇게 몇 날을 지나, 어느 순간 나는 다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수많은 날 동안 혼자 표현하며 보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책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정리된 책장에 빅터 프랭클, 얄롬, 스콧 펙, 한나 아렌트의 책을 하나씩 넣는다.

익숙하면서도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이해하고 싶은 책들이다. 그리고 작게 인쇄한 스티븐 행크스의 그림을 액자에 담아 책장에 올린다. 그의 수채화처럼, 고요한 정서가 천천히 물들어 온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내 안에 많다. 그러나 이제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해 보려 한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앞날에 언어를 붙여 주는 글들에 감사한다.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어렴풋하게 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던 수많은 글들을 지나왔듯,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낯설어진 책들을 이해하려 애쓰고, 낯선 순간을 지나 정리된 책장 앞에 선다.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책들을 그 자리에 넣어 본다. 그렇게 시간을 갖는다.




나는 다시 새로운 것들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되고 싶지 않았던 존재의 반대편으로 도망가던 선택에서 벗어나, 이제 완전히 새로운 길의 입구에 서 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을 이해할 수 없음을, 비로소 인정한다.




침대에 누워 창가에 발을 올려 본다. 한여름 밝은 오후 여섯 시, 따뜻한 바람이 발바닥에 닿는다.

음악 소리에 맞춰 발가락을 천천히 까딱거린다. 나는 처음으로, 진짜 휴식을 경험한다.









[에필로그]

이 시리즈는 상담심리사이자 상담심리학 연구자로서, 제 정체성을 되짚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저는 제 감정을 응시했고, 언어화하며 회복의 리듬을 발견했습니다.

『호수를 걷는 시간』 시리즈는 “말할 수 없는 우리들”을 위한 회복적 언어의 시도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고립된 감정, 닫힌 말하기의 문을 조심스럽게 다시 열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붙잡고 닫혔던 말하기의 문을 조금씩 열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 서로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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