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고백할 수 있는 자리
존경은 단순한 예의나 권위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회복의 감정입니다.
상담 장면에서 존경은, 내담자의 두려움을 함께 걸어주며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도록 돕는 힘이 됩니다.
겨울, 몸이 좋지 않기 시작했다. 억지로 수업을 이어갔지만 결국 여름이 되어서 병원에 입원했고, 3주 동안 치료를 받았다.
입원실에서도 두 번이나 화상으로 강의를 들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몸으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1학기 마지막 시간, 내가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교수님은 따뜻하게 웃으며 학우들의 박수를 이끌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안정감을 경험했다.
10년 동안 감정을 차단한 채, 오직 이성으로만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온 내게 그 격려는 너무 낯설고도 뜻깊은 따뜻함이었다.
나는 최근 시각이 다른 차원으로 보이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은 그대로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2학기 오리엔테이션 시간, 구성주의 이야기까지 마친 교수님은 마지막 학기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지난 수업에서 어떤 배움이 있었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지난 학기 경험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변형적 의자기법이나 심리도식을 적용하면서 제 시각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심리적 회복이라는 분야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이미 만들어진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습관을 깨고 시각을 확장하는 건 분명 성장의 과정이겠지만, 모르는 자기의 무의식을 건너가는 일은 여전히 두렵습니다. 교수님이나 선배 교수님들은 이런 과정을 어떻게 다루고 건너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 말은, 존경하는 교수님 앞에서 처음으로 내 두려움을 직접 고백한 순간이었다.
늘 이성으로만 자신을 다잡아온 내가, 그 자리에서는 무의식의 낯설고 깊은 세계를 향한 두려움을 솔직히 내어놓았다.
교수님은 잠시 미소를 지으시며 『무경계』라는 책을 언급하셨다. 수업 속에서 수련생들에게 그 책을 소개하며, “무의식과의 경계, 그것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건네주셨다.
그 장면이 내게는 오래 남았다. 존경이란 멀리서 우러러보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감히 말하기 힘든 두려움을 꺼내놓을 수 있을 때, 그것을 함께 걸으며 들어주는 안내 속에서 싹트는 감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마치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창문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빛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
무의식을 건너는 길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을 때 비로소 보이는 빛이 있었다.
그 빛은 존경의 자리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그룹슈퍼비전의 시간, 나의 사례를 발표했다. 접수면접이 없는 1회기 상담 장면이었다. 나는 “라포 형성을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피드백을 받고 싶다”고 목적을 밝혔다.
녹취록 속에서 내담자는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본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에게 “가면을 어떤 이름으로 붙일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고, 그는 “조용히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가면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실 가족들 앞에서는 까불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지만, 대인관계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내담자가 본모습과 가면 사이의 갈등을 스스로 정리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회기임에도 내담자가 ‘처음으로 정리해 본 느낌’이라고 표현했을 때, 상담의 자리가 지닌 힘을 새삼 배울 수 있었다.
사례가 끝난 뒤, 동료들과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한 상담센터 원장은 “내담자가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나는 웃으며 “아직 내담자의 언어로 표현된 것이 아니기에, 제가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원장은 내 질문 방식과 목소리에 대해 다시 되물으며, 나의 태도를 함께 짚어주었다.
처음에는 다소 단호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지만, 그 피드백 덕분에 내 질문 태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또 다른 선생님은 “맥락을 잘 짚어냈다, 첫 회기인데도 통찰을 준 것 같다”는 평가를 주었고, 사례를 먼저 발표했던 선생님은 “좋은 나눔이었다”고 따뜻하게 웃으셨다.
교수님은 끝까지 내 발표를 경청하시며, “다음번에도 사례를 다시 나눠 달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존경이 단순히 위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피드백과 인정 속에서 확장되어 간다는 것을 체감했다.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과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교수님은 한 글을 보여주시며 '서사를 리라이트하는 작업'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글을 쓰면서 힘든 경험을 서사로 리라이트하니,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메타 아카데미 수련을 통해 서사 속에서 메타적으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을 내담자에게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됩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다. 그 순간 존경은 단순한 학문적 권위가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를 다시 살아내도록 안내하는 회복적 힘으로 다가왔다.
2024년 나는 가장 바쁜 한해를 보냈었다.
편도 36km가 넘는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대학에서 고위험군을 포함한 모든 사례를 혼자 도맡아 처리했어야 했다. 동시에 소논문을 투고하며, EMDR과 CBT 수련을 계속하며 굉장히 바쁘고 위태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달력과 스케쥴러에 작성된 나를 위한 하루는 자꾸만 뒤로 밀려났고, 하루는 계속해서 부족했다.
모든 것들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상황들 속에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준 사람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뒤,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내는 시간동안, “그럴 수 있어요.”라고 따뜻하게 미소지으며 나를 바라보시던 그 마음을 계속해서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 목소리를 되내이며 다시 살아가려고 계속해서 되풀이했다.
퇴원 후, 다시 선생님을 찾아 뵈었을 때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문구를 나에게 건내며 초대했다.
“Until you make the unconscious conscious, it will direct your life and you will call it fate.”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그것이 당신의 삶을 지배할 것이고,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우리는 “왜 나는 늘 비슷한 관계에 빠질까?”, “왜 같은 문제를 반복할까?”라고 말하곤 한다.
의식하지 못한 무의식의 패턴이 삶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겉으로는 마치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내면(무의식)에는 억눌린 감정, 반복되는 패턴,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이 힘들이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조용히 좌우하게 된다.
융은 이런 무의식을 의식 위로 끌어올려 “나에게 어떤 패턴이 있는지”, “어떤 감정이 반복되는지” 알아차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이해’와 ‘통합’의 과정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내가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즉, “운명”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무의식의 영향이며,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삶은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철저한 이성 속에서도 내담자와 함께 걷는 것의 진정한 의미로 초대하는 교수님, 그리고 존재 그 자체로 단단하게 버텨주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선생님. 존경하는 이 두 분은 제 삶을 다른 궤도로 변화시켰습니다.
저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체력이 회복된 지금,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존경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끄는 회복의 감정이었습니다. 그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제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존경을 품는 순간, 삶은 단단해지면서도 따뜻해집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만의 존경의 대상을 떠올리며, 회복의 빛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