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대화(2) 성찰편

타인의 존재와 글쓰기가 공포를 다루는 방식

by 호수를 걷다




나는 한동안 북오산 IC까지 36km를 자차로 운전하며 매일 고속도로를 달려 회사를 다녔다.

평소에도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하루 8~9시간씩 고속터미널과 전철을 오갔지만, 그 길은 전혀 다른 시간으로 다가왔다.
뒤에서 빠르게 추월해 가는 차들을 보며 운전하던 순간, 나는 숨을 쉬지 못할 것 같고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압도적인 공포에 휩싸이곤 했다.


그때 공포는 단순히 한 가지 차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몸은 질식할 듯 호흡이 막혔고, 정신은 아득히 멀어졌으며, 생각은 “여기서 끝이 나겠구나”라는 파국만 되뇌고 있었다.
정신과 감정, 인식이 서로 다른 층위에서 흩어져 경험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마침 그 시기에 나는 EMDR(안구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 수련을 받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 두 분과 함께 훈련을 이어가며, 각자의 사례를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수련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메일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인간의 공포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지만, 타인의 존재 속에서 함께 다뤄질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내 곁에 머물러 주고, 내 경험을 함께 바라봐 주고, 서로의 고통을 나눌 때, 내 안의 압도적인 감각은 서서히 다른 얼굴로 바뀌어갔다.




책과 글, 그리고 또 다른 연결

수련 중 한 여성 교수님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언급했다.
삶과 죽음, 일상과 절망의 경계에 선 제목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중에 그것이 브런치에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글쓰기와 삶이 이어지는 방식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그 무렵, 엄마는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저널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도하시던 엄마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향일 수 있지 않을까?”


그 말은 내 안에 씨앗처럼 남았다.


결국 나는 두 여성의 조언과 두 남성과의 수련 속에서, 내 경험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이 그러하듯, 한 편의 대화도 그러했다.
둘 다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두려움이 다른 빛으로 변환되는 순간

지금 돌아보면 이 과정은 단순히 심리학의 발달 단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계적 발달 이론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차원, 영성 심리학에서 말하는 ‘존재적 확장’에 가까웠다.


그것은 두려움의 소멸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움이 다른 빛으로 변환되는 과정이었다.


공포라는 경험이 타인의 존재 속에서 다뤄지고, 다시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로 환원되는 순간 ― 그것은 하나의 단계가 아니라, 존재의 깊은 결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때의 경험이 열어준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공포가 나를 삼키지 못했던 이유는, 누군가 내 곁에 함께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글이 되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공포는 나를 고립시키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함께였고, 글쓰기가 다시 나를 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 또한 또 다른 이들에게 닿아,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숨결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포는 혼자의 싸움이 아닙니다. 타인의 숨결과 시선 속에서 다뤄질 수 있고, 글쓰기는 그것을 다시 나누게 해주는 또 하나의 호흡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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