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대화(3) - 사랑편

존재를 비추고 용기를 주는 거울

by 호수를 걷다






사랑은 내가 살아가는 삶과 학문, 언어를 지탱해주는 힘이며, 동시에 한 사람과의 안정된 끌림 속에서 발견되는 회복의 감정입니다.




학문이 다시 삶의 언어가 되다

나는 몇 달 동안 나의 주관적 경험이 학문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논문과 분석에 몰두하면서, 나는 점점 패턴과 성과율 같은 분석적 사고로만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은 희미해지고,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허망함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해맑은 낭만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18년 만에 그렇게 원했던 나의 언어, 나를 표현하는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학문은 다시 삶의 언어인 에세이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통증, 공포, 관계의 어려움 같은 체험들이 단순한 고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글로 정리되고 회복의 언어로 재탄생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무너진 세상 속에서 마주한 안정감

그 시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묘한 대화들이 오갔다.

그는 호기심과 끌림 사이에서 나와 거울 같은 대화를 이어갔다. 관찰과 질문으로 접근하면서도, 동시에 안정감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느낌은 내게 다시 끌림으로 돌아왔다.



“잘 가고 있는 걸까?”라는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그런 상황이구나. 잘 가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묘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는 타인이 보는 시선을 잘 본다. 그리고 너의 시선을 본다.”

몇 시간 뒤, 그는 덧붙였다.

“나는 너를 관찰하고, 너는 관찰하는 나를 관찰한다.”



그의 말은 내 시선을 따라오면서도 동시에 내 시선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이런 독특한 대화들은 나를 끌어당기면서도, 안정감 속에서 새로운 긴장을 경험하게 했다.



한편 그는 다정한 눈빛과 음악으로 나를 초대했다.
Coldplay A Sky Full of Stars, Something Just Like This, 그리고 Elijah Wood 24/7, 365.

그 음악들은 그 순간의 빛이 되어 내게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또, 우리는 자주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확신에 찬 톤으로 “내가 편해야 한다”고 말하며, 내가 더 편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일부러 자세를 바꿔주곤 했다. 그 모습은 내게 깊은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이 경험은 혼자 걸어야만 할 것 같던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와 비슷한 결의 존재가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의 대화는 정리되지 못한 과거의 혼란을 바라보는 나를 다독이며, 다시 앞으로 시선을 향하게 했다.


그의 안정감은 내게 “세상은 여전히 안전하다”는 동조와 동의처럼 다가왔다. 그는 내가 응답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내가 응답했을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다. 그것이 바로 안정감이었다.




사랑, 존재를 비추는 거울

사랑은 거울처럼 존재를 비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낯선 긴장감, 설렘, 끌림, 불안, 안정감을 동시에 경험하며, 결국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과 심리학, 그것들이 존재하는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

그 모든 것을 잇는 용기를 건네준 당신,

이 글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사랑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과 다시 연결되게 하는 회복의 감정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이 고백이, 누군가에게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사랑을 떠올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은 ‘나다움’을 찾아가는 내면 작업에서 시작해, 자기 경계를 지키는 법을 건너, 마침내 회복의 대화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존경과 성찰,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따라 걸으며, 저는 회복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찾는 일임을 배웠습니다. 이 시리즈가 누군가에게도 삶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감정 회복서』를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회복해갈 수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도 또 다른 회복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