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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Mar 25. 2020

산티아고 가는 길 - 열여섯 번째 날

오르니요스 -카스트로헤리츠(21km)


인간의 존엄은 지키게 해 주세요!



      새벽에 또 열이 나고 배가 아팠지만 2층 침대라 내려갈 일이 곤란해서 그냥  참고 잤다. 5시 반쯤 깨서 좀 뒹굴거리다 2층에서 침낭 다 개서 정리한 다음 내려와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세수하고 올라와서 나머지 짐을 다 챙겨서 내려오니 식당엔 아침이 준비되어 있었다. 셀프바 같은 형식이라, 접시 하나 챙겨서 비닐봉지에서 먹을 만큼 토스트를 꺼내 굽고 시리얼+우유 조금, 머핀 2개, 커피, 오렌지 주스, 쿠키까지 야무지게 잘 먹었다. 3유로 아침치곤 아주 준수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우걱우걱 아침을 먹고, 아마도 베드가 없어서 뒤뜰 옆 식당 공간에서 잔듯한 청년들 틈에서 부지런히 가방을 싸고, 한번 더 화장실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숙소를 나섰다.



      해는 뜨지 않았고 꽉 조인 허리 벨트는 배를 조여 오고 나의 대장은 또 무언가 큰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에 헤드라이트를 비춘 자리만 간신히 보일 정도의 어둠이라 엄한 곳에서 바지를 내리다 지나가는 순례자의 헤드라이트에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니, 부디 인간의 존엄을 잃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 빌어가며 메세타를 올랐다. 아름답다는 산 볼의 알베르게 근처에서 Can I use your toilet?라고 물어보려다 그땐 또 상태가 괜찮아서 그대로 지나쳤다.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조금 뒤, 메세타 위의 어느 밭 옆에 있는 작은 돌 벤치에 앉아 잠깐 쉬면서 발가락  말리기 타임을 가졌다.  어제 보낸 메시지에 최 신부님의  답장이 있었다. 성인과 왕들의 성상은 전구를 청하고, 그들을 닮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인 것으로 보면 좋겠다고, 불편한 마음의 순례길이라도 그것으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해주셨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왠지  또 눈물이 나서 청승맞게 일출 바라보면서 훌쩍이고 말았다.  



메세타에 올라서서 일출을 맞으니 동그란 태양이 아주 잘 보인다.




온타나스에서



   그렇게 길을 걸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온타나스에 도착했다. 첫 번째 바에 가서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새벽에도 배 속이 그 난리였는데 한참 지난 지금 또다시 난리였다. 게다가 화장실은 남녀공용에 한 칸뿐이라 한참 기다려야 했다.

 바에선 오믈렛과 순례자들 사이에서 맛있다는 소문이 돌던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주인이 영수증과 오믈렛을 주면서 영어인지 스페인어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뭔가 알려주었다. 한국인인 나는 별생각 없이 그저 씩 웃고서 야외의 자리에 앉아 오믈렛만 먹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스가 안 오길래 마침내 옆에서 열심히 오렌지 주스를 만들... 뽑아내고 있는 다른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내 오렌지 주스가 안 나왔어

   -오, 너 오렌지 주스 샀어?

   -응. 돈 냈어. 오믈렛하고 오렌지 주스. 근데 오믈렛만 있어.

   -ㅇㅇ 알았어 오렌지 주스 줄게!


허겁지겁 먹다 오렌지 주스 나오고 나서야 한 장 찍어봄


    그러고선 흔쾌히 오렌지주스를 뽑아 30초 만에 나에게 내어준다...... 이렇게  쉽다고? 지나고 생각해보니 주인이 나에게 영수증을 주면서  했던 말은 ‘이 영수증을 밖에 있는 오렌지 주스 만드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오렌지주스를 줄 거야’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모르고 오믈렛 반절 정도 먹다가 나름 큰 마음먹고 항의(?)하려던 내가 어이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화장실도 한번 더 가고, 가방 메고 신발끈 묶고 다시 기운차게(?) 출발하는데 왠지 온타나스의 성당이 눈에 띈다. 어떤 곳일까 하고 입구에서 살짝 보려고 하니 안쪽에서 제일 좋아하는 떼제 곡인 ‘찬미하여라’가 흘러나온다.  살짝 홀린 듯이 들어간 성당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각국 언어로 된 미사통상문이 비치되어 있는 모습과 대주교의 십자가에 대한 설명, 그리고 무인 판매대였다. 


  스페인 성당에서 미사를 몇 번 드리면서 안 그래도 미사 통상문 번역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한국어 버전만 딱 한부가 남아있었다! 내가 그 한부를 집어 들어 챙기자마자 한국어 버전은 한 개도 남지 않게 된 거다. 다른 나라 언어 버전은 아주 많이 남아있었는데.... 한국어판을 애초에 조금만 만든 건지, 아니면 이 길 위에 한국인이 너무 많아 그런 건진 알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채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큰 복을 받는다는 '대주교의 십자가' 목걸이도  하나 사려는데 가격이 2유로다. 잔돈은 아까 있던 바에서 다 쓰고 지폐뿐이라 어쩌지 하는데 옆에서 한국분 두 분이 성당 구경하시길래 염치없이 지폐랑 동전 교환을 부탁드렸다. 다 긁어 모으셔도 4.9유로 정도라 안 되겠다 하셨지만 약간의 손해는 괜찮다며 내 5유로 지폐를 건네드리고 간신히 셈을 치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사야만 하는 기념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왠지 욕심이 났었나 보다.



비와 파리와 유적을 지나는 길


    약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온타나스를 나서는데 후드득후드득 하더니 곧이어 어마어마하게 비가 쏟아진다.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는데 갑자기 많은 양이 쏟아져서 그런지 이미 등이 다 젖은 상태로 우비를 걸치려니 젖어서 제대로 입어지지도 않는다. 한참을 낑낑거리며 우비에 팔을 끼워 넣었는데 내 몸과 우비 안쪽 바깥쪽 할 것 없이 죄다 젖은 상태다. 더 젖지 않는 정도의 역할만 간신히 하는 우비를 걸치고 한참을 걸었다. 햇볕이 조금 비치길래 벗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몇 번의 우비 경험으로 ‘우비를 벗으면 그 순간 비가 온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쉽게 벗지 않고 그대로 한참을 걸었다.




나무 사이로 쭉 뻗은 길을 따라 오늘의 목적지로 향한다.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쨍하고 하늘은 파랗다. 날이 개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우비를 벗어 배낭 아래쪽에 매달고 기분 좋게 걷기 시작하려는데,  눈앞에 파리들이 어른거린다. 피레네 산맥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똥길(...)이라 그런가 파리가 많구나 했는데 그 길을 한참을 지나서  똥냄새라곤 나지 않는 길까지 파리들이 나를 쫓아왔다. 한 4~5마리 정도 되는 벌레들이 마치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듯 뱅뱅 돌고 있었다. 숨을 쉬다 콧구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팔이나 귀 언저리를 간지럽히고 사라지기도 했다. 나한테서 똥냄새가 나는 건가 하는 자아성찰도 두어 번 하고 나니 너무 짜증이 나서 몇 마리는 손으로 때려잡았다. 대충 왱왱거리는 어디쯤을 향해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다 보니 2시간여 걷는 동안 3~4마리는 잡은 것 같다. 열심히 손뼉 치고 짜증 내느라 멋진 경치를  놓치고 길 위의 시간을 날린 느낌이라 좀 슬퍼졌다. 


  카스트로헤리츠의 입구(?) 격에 해당하는 산 안톤 아치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옛날 유적이라는데 아치 자체 말곤 큰 구경거리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나이 든 순례자들을 위해 아치 밑에 빵을 남겨두는 전통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아치 밑에 작은 바구니엔 작게 포장된 작은 먹을거리들이 조금 담겨있었다.




산 안톤 유적의 산 안톤 아치. 아치의 오른쪽 아래엔 작은 과자류들이 놓여 있었다.


된장국을 주는 알베르게

 

    그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서 죽 걷는데 뒤에서 누가 갑자기 말을 걸어 깜짝 놀랐다. 한국인 순례자 아저씨였다. 젊은 아가씨가 혼자서  씩씩하게 걷는 게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말을 걸고 물어보는데 하나같이 전형적인 한국인 질문이다. 혼자 왔냐, 나이가 몇이냐 같은. 급기야 너무 잘 걷는 내가 의심(?)스러웠는지 내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궁금해한다. 들어봐도 되죠, 라는 통보인지 질문인지를 마치자마자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내 어깨에  매인 가방을  한 손으로 훌쩍 들어 올린다. 아마 7kg 전후였을텐데, 훨씬 가벼울 거라 생각했던 건지 생각보다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걸 여자분 혼자 들고 가다니 대단하다, 내 동행인은 가방 다 동키로 보내고 맨몸으로 걷는데 비위 맞추느라 힘들다 등등 묻지도 않은 본인 이야기를 하염없이 늘어놓는다.......


   내가 도림천변을 걷는 건지 올레길을 걷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의 길을 걷지 않고 굳이 외국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낯설고 무례한 침략을 꺼려서라는 게 생각났다. 동영상을 찍는다는 말로 그를 먼저 보내고, 살짝 뒤처져서 어느새 오늘 묵을 마을을 100여 미터 앞에 두고 걸었다.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아마도 오늘 같은 숙소에 묵을 거란 희미한 예감... 아니  선명한 예감이 들었다. 부르고스에서부터, 아니 그전부터 순례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던 ‘비빔밥과 된장국’을 주는 숙소가 바로 이 카스트로 헤리츠에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속이 부글부글하고 아마도 장염 비슷한 무엇일 거 같은 내게, ‘된장국’은 엄마 약손과 같은 이미지가 되어 있었다. 왠지 그 된장국을 먹고 나면 내 속앓이도 나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지쳐있었기에 저녁의 순례자 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미사 시간이 알베르게의 저녁 제공 시간과 딱 겹친다. 너무 먹고 싶었던 된장국이었기에, 아쉬움을 꾹 누르며 미사 대신 저녁밥을 택했다.






    그렇게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나는 순례길 2주일 동안 만났던 한국인들 중 거의 대부분을 다시 만났다. 조금 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국인 남녀 일행은 물론, 일주일 전의 비야투에르타 알베르게에서 같이 맥주를 마신 중년 부부, 어제와 그제 걷는 내내 한국 라디오를 쩌렁쩌렁 틀어놓고 걸어서 이곳이 순례길인지 청계산 등산길인지 알 수 없게 만든 한국인 남자, 그리고 어제도 만났던 P남매, S, 도현 씨, D, J커플, E까지. 알베르게에 묵는 사람 중 대부분이 한국인인 상태였다.  아마 다들 나와  같은 이유로 이 알베르게를 골랐을 것이다. 비빔밥, 된장국, 그리고 라면과 소주. 그렇다. 이곳엔 외국 나온 한국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식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마 알베르게 주인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었기에 가능한 서비스였을 것이다.


    저녁 메뉴는 단일 메뉴였고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된장국 하나와 계란 하나가 든  비빔밥 보울을 하나씩 앞에 두고 앉아있었다. 음식이 서빙되자마자 한국인들은 바로 비비기 시작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만 둥그렇게 뜬 외국인들은 알베르게 주인의 설명을 듣고 앞에 준비된 고추장을 적당히 떠서 밥을 비벼 먹기 시작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미국인 쉐린, 아일랜드인 제임스, 노르웨이인 그레웍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이 수상하게 누런 국물이 내 복통을 해결해줄 거란 나의 믿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요구르트를 예로 들어가며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보았지만 이 수상하게 짭짤한 국물은 그들의 호의를 얻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안 좋다는 나의 말에 쉐린이 선뜻 자신의 된장국을 나에게 준 것은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보다 나를 향한 걱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미사도 포기하게 만든 비빔밥과 된장국.



    걷는 동안 구글 지도와 예약한 알베르게 위치, 또 다음에 예약할 알베르게 리뷰들을 보려는데 휴대폰의 데이터 연결이 거의 되지 않고, 문자 메시지로 알 수 없는 프랑스어가 계속 도착하고 있었다. 번역기로 돌려보니 유심 어쩌고 하는 내용인데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지 뭐, 하는데 계속 마주치고 이야기했던 도현 씨가 자신이 프랑스어를 전공 중이라고 수줍게 밝혀왔다. 아니 이런 기적이! 나는 염치 불구하고  그녀에게 메시지에 대한 내용을 물어봤고, 메시지를 본 그녀의 대답은 ‘유심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파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산 유심이었다. 그나마 싼 편이었고 별다른 조치가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유심만 갈아 끼우고 나에게 부여된 번호를 보며 모든 게 완벽하게 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본 프랑스 유심 회사는 너무도 당당하게 프랑스어로만 전화를 받았고, 어떻게 외국인 대상으로  유심을 팔면서 영어 응대도 안 하냐고 분노하기엔 나도 그렇게 영어를 잘하진 못했다. 지켜보던 도현 씨는 자신이 통화해보겠다고 나서 주었고 나는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전화도 잘 안 터지는 시골  마을에서 유심 회사와 연락이 닿고, 문제를 해결하기까진 그 뒤로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모든 이야기들보다 내 기억에 더 남은 것은, 피곤한 일정을 마무리하는 중에도  배우 박소담을 닮은 목소리로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한참 동안 전화를 붙잡고서 내 문제를 해결해주려 노력하던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배가 안 고파도 먹게 되는 맛, 라면과 소주.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해는 쉽게 지지 않았고, 이런 컵라면과 소주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컵라면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사서 이미 한잔 하고 있던 도현 씨, J, D, E와 즐겁게 나눠 먹으며 높은 성 너머로 사위어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유튜브에 영상도 있습니다

>>>https://youtu.be/XKlTmKthl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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