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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May 16. 2018

[22] 동명동집 - 의정부 영감.

2부-강원도 속초

우리는 그 집을 '동명동집'이라고 부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동명동집'과 '서울집'과 '죽전 월셋집'과 지금 살고 있는 '속초 월셋집' 모두를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우리끼리의 대화가 늘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우리 집을 말이지, 대출을 일단 이렇게 한 다음에 저렇게 하고 나서 저렇게 되면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으면 하는데..." 

"잠깐, 우리 집 어디? 뭘 어쩐다고?" 


심난한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말을 뚝 끊고 묻기라도 하면 맥이 쭉 빠질 뿐만 아니라 그 주제의 심각성에 따라 짜증이 확 밀려오기도 했다. 하여 그 놈의 '우리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콕 집어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집'에 대한 정리는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서울집'은 지난달에 팔았고, 이사 나온 '죽전집'은 남의 집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월셋집'은 역시 남의 집이긴 마찬가지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여 우리는 그 집을 '동명동집'이라고 부른다. '동명동집'은 강원도 속초시 동명동에 있다.  


여행으로 몇 번 와 본 도시에 집을 사고 그곳으로 터를 옮기는 일은 삶에서 얼마나 큰 결정인가. 그 중차대한 결정을 우리는 동명동집을 처음 본 순간 그 자리에서 해 버렸다. 집이 무지하게 컸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하여간 집이 무지 컸다. 큰데 쌌다. 여기서 싸다는 것은 서울의 집값 기준이지만, 속초의 집값에 대해 알 턱이 없는 우리로서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크고 싸다. 그것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에게 동명동집을 판 '의정부 영감'이 십 년 전 그 집을 샀을 때에는 우리가 산 값의 절반이었으니, 십 년 전 '의정부 영감'도 동명동집이 크고 겁나게 싸서 샀던 것이 분명하다.


동명동집은 총 다섯 가구가 살 수 있는 집으로 현재는 네 가구가 산다. '의정부 영감'이 일명 '별장'으로 사용했던 2층 오른쪽 집은 영감의 짐이 빠진 후로 비어 있다. 동명동집 중에서 가장 넓고 멀쩡한(!) 곳이기에 그가 짐을 빼자마자 우리는 거금을 들여 바닥에 보일러 호수를 다시 깔고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 세를 놓았다. 이달 중순 새로운 사람들이 그곳에 살러 온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의정부 영감'을 처음부터 '의정부 영감'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의정부 어르신'이라고 불렀고, 그 다음에는 '의정부 할아버지'라 불렀으나 집의 잔금을 치르며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앞으로 동명동집의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의정부 영감'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인물, 그러니까 무대의 막이 오르자마자 곧바로 사라진 단역에 불과하지만, 그의 강렬한 인상이 깊게 남아 영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의정부 영감'을 두고 누구는 백억 대 재산가라 했고 누구는 천억 대 재산가라 했다. 그는 "돈이 그렇게 많으면 뭐해?"라고 우리가 흔히들 말할 때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처럼 보였다. 행색이나 말투, 행동이 남긴 인상은 이를 테면 이런 것이었다. 동네 복덕방에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장기판을 뒤집어엎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사라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은근슬쩍 다시 나타나 장기판 앞을 기웃거릴 것 같은 그런 류.   


'의정부 영감'은 우리에게 동명동집을 판 돈으로 동명동집에서 다섯 걸음 떨어진, 그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4차선 대로변 상업지구 15평 땅에 3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그 땅의 모양이 어찌나 길고 좁은지 처음 그 근처를 지날 때 그 자리에 무언가를 지어 올릴 수 있다는 상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로에 면한 가로 면이 대략 십여 미터쯤 될 듯싶으나 세로 면은 아무리 잘 쳐도 2미터나 될까 싶은 그 땅에 영감은 당당히 건물을 지어 올렸다. 교묘한 땅의 생김 때문에 4차선대로 길 건너에서 보면 꽤나 번듯한 건물로 보이지만 건물의 측면에서 보면 황당함에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얇은 모습이다. 정말 그렇다. 건물이 얇다. 영감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영감의 조카 말에 의하면 바닷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건물이 앞뒤로 흔들흔들 한다고 한다. 하여간 영감이 대로변에 길쭉하게 건물을 지어 올린 덕분에 영감 땅 뒤에 있는 2층짜리 여관 건물은 길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의하면 그 여관인지 아니면 여관 주인이 소유한, 동명동집과 골목을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건물인지를 '의정부 영감'이 사고 싶어했으나 여관 주인이 안 판다고 하여 못 샀다고 했는데, 그것의 복수로 '의정부 영감'이 그 얇디 얇은 건물을 지어 올려 대로에서 여관이 보이지 않게 가린 것은 아닌가 하고 나 혼자 상상해 본다. 나중에 속초에 와서 보면 알겠지만 영감의 새 건물은 정말이지 골 때릴 만큼 얇다. 


잔금을 치르러 부동산 사무실에 모여 앉았을 때 1931년생, 87년을 산 영감은 잔뜩 뿔이 나 있었다. 어찌나 툴툴대고 짜증을 내던지 나는 이 양반이 계약을 엎으려고 저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중 드는 조카가 대신 변명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의정부 영감'이 자식에게 불법으로 증여한 것이 들통나 3억원 가량의 증여세를 내게 되었는데, 거기에 그동안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동명동집'의 양도소득세까지 내게 되어 기분이 영 그렇다는 것이었다. 영감은 뭣 씹은 얼굴을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나는 억울해. 그 큰 집을 이렇게 싸게 팔았네."

"아이고, 나는 억울해, 월세도 나오는 그 좋은 집을 괜히 팔았네."


도대체 그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는 우리로서는 딱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가만히 있는 수 밖에. 계약에서부터 잔금까지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만사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 고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수많은 사람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살다 보니 체념만 는다. 하여간 봄비가 내리던 삼월의 어느 날 '동명동집'은 우리 집이 되었고 '의정부 영감'과는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의정부 영감'의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인이 지금 속초에 와 있는데 시간이 되면 만나서 전기요금 정산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우리는 어딘가에서 놀고 있었기에 조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그는 꼭 만나서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고 다음 번 그가 속초에 오면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도대체 전기요금 정산과 관련해서 꼭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가 뭐가 있나 의아했지만, 그러십시다, 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기 전 조카는 한 가지 더 할 말이 있다며 말을 좀 얼버무리더니,


"2층 현관문 자물쇠 있잖아요. 그게 삼촌이 의정부에서 본인이 가져 온 거라고 달라고 하시는데..."


자물쇠? 여러분, 어떤 자물쇠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자물쇠입니다. 창고, 헛간, 외양간, 변소 등의 변변찮은 문을 잠글 때 쓰는 쇠 자물쇠 말입니다. 그걸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게 현관 열쇠잖아요. 하여간 알았어요."


자물쇠야 줘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까짓 것을 돌려 달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진술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저 "오,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 라고 고개를 끄떡끄떡 해 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전기요금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한국전력을 찾았다. 참, 속초의 한국전력은 시외버스터미널 길 건너에 있는데 구식이기는 하지만 오래된 벚나무를 비롯해 조경이 꽤나 볼만하다. 우리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나무들이 한창 꽃을 피울 때라 이렇다 할 특색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관공서 건물조차 서정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민원봉사실에 민원인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금세 동명동 담당자에게 안내되었고, 담당자는 우리가 동명동집의 주소를 말하자 무슨 볼일로 왔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의정부 영감'네가 다녀간 지 며칠 안 된 모양이었다. 


'동명동집'의 3층 옥상에는 태양광 판넬이 설치되어 있다. 태양광으로 모아진 전기는 '의정부 영감'이 '별장'으로 쓰던 2층 오른쪽 집에서만 사용한다. 태양광으로 모아진 전기는 매달 영감이 사용한 전기에서 차감된다. 예를 들면, 태양광으로 100kw가 모아졌고, 영감이 60kw를 사용했다면, 그가 내야 할 전기요금은 0원이며, 남은 40kw의 전기는 다음 달로 이월된다. 다음 달 같은 양의 전기가 생산되고 소비되었다면 이제 모아진 전기의 양은 80kw가 되는 것이다. '영감'이 태양광 판넬을 설치한 이래 이렇게 해서 모아진 전기가 10,000kw이다. 헌데 이 10,000kw의 전기는 돈으로 환불되지 않는다. 집주인이 바뀌든 나랏님이 바뀌든 돈으로 돌려 주지 않는다. 10,000kw가 돈으로 얼마인지 환산할 수도 없는데 그 이유는 전기요금은 누진제로 계산되기도 하거니와 일반 가정집에서 한 달 동안 한꺼번에 10,000kw의 전기를 소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계산할 수는 있으나 무의미한 수치이다. 동명동 담당자는 이 모든 것을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인구 8만의 소도시 속초의 관공서는 문턱이 낮게 느껴진다. 여태껏 만나 본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친절했으며 자신의 시간을 민원인에게 할애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아 보였다. 사족이지만 인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구통계자료를 보면 2018년 4월 기준으로 지난 일 년간 속초시의 인구는 89명이 늘었다고 한다. 그 중 두 명이 누군지는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조카에게서 전화가 오면 반드시 내가 받으리라 벼르고 있었다. 조카도 그걸 알았는지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낭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조카는 당황한 눈치였는데 어쨌거나 맡은 바 소임이 있으니 그는 이내 본론을 꺼냈다. 


"제가 오늘 한전에 다녀 왔는데 거기 다녀 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전화로 말씀 드려도 될 것 같은데... 내용은 한전에서 들어서 아시겠지만 남은 전기가 무려 만 킬로와트나 된다고 하잖아요. 근데 한전에서는 그걸 돈으로 돌려주지 않는다고 하니까... 저... 매수인분이 그걸 좀 돈으로 주십사 하는 거지요. 저희 삼촌이 그건 본인 전기라고..."


짐작은 했으나 막상 라이브로 들으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한전에서 돈으로 안 주는 걸 저희가 어떻게 드리나요."

"그래도 저희 삼촌이 그건 본인 거라고... "

"한전에서 정산을 해 준다면 몰라도 그걸 저희가 어떻게 드려요."

"그건 아는데요, 삼촌이 저한테 자꾸 전화 좀 해 보라고 하셔요. 나도 참 난감한데..."


이래서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보세요 조카님. 계약서에도 써 있잖아요. '현 상태 그대로' 라고요. 그 말은 남은 전기 또한 저희에게 넘기신 거예요. 그건 안됩니다."


친절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런 상황에서 나는 툭하면 얼굴이 시뻘개지는데 전화상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조카는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말했다. 오늘의 진짜 본론이었다.


"그러면 말이죠, 저희 삼촌이 새로 지은 건물이랑 그 집이랑 직선 거리로 한 2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그럼 3층 옥상에서 전기를 따다가 저희가 그 전기를 좀 쓰면 어떨까 싶은데..."


맙소사! 세상에는 정말로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보편적인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절대 안 돼요! 그리고 그 돌려 달라고 했던 자물쇠 말인데요? 언제 가져가실 거예요? 떼 놨으니 말씀만 하세요. 언제든 갔다 드릴 테니. 지금 갔다 드려요?"


"아아... 그 자물쇠는... 아우, 삼촌은 그걸 달라고 하셔서. 참나. 하여간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 드릴게요."


그 후로 그들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디지털 번호 키를 사다 2층 현관문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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