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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Jul 22. 2018

[23] 동명동집-3층 아줌마에 대한 기록.

the other side.

1.

"3층 사는 임씨는 거기만큼 살기 좋은 데가 없다고 다른 데로 이사 갔다가 다시 왔잖아요. 근데 그 임씨가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꾸 나한테 전화를 해대는 통에 내가 아주 귀찮았어. 암튼 그럴 필요 없다고는 했어요."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3층에 전화를 걸었다.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집주인이 바뀌어 인사차 전화 드렸습니다. 임차계약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끝. 북한을 지척에 둔 이곳의 지역어는 억양과 강세가 북한 사람들의 그것과 흡사하고 타 지역 사람인 내가 듣기에 목청을 불필요하게 한 단계 높여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화기 너머 3층 임씨의 목소리는 유난했다. 그는 우리에게도 월세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소리쳐 물었고 우리는 그럴 필요 없다고 소리쳐 대답했다. 상대방이 큰 소리로 말하면 어쩐 일인지 따라서 큰 소리로 말하게 된다. 


3월 중순 ‘의정부영감’이 짐을 빼자 영감이 '별장'으로 쓰던 2층 오른쪽 집의 속살이 드러났다. '별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손볼 곳 그러니까 돈 들어갈 곳 투성이였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공구박스와 목장갑을 챙겨 동명동집으로 출근했다. 가는 길에는 다이소나 철물점에 들러 수리에 필요한 것을 사고는 했는데, 사고 나면 꼭 한두 가지씩 빠트린 것이 있어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다시 물건을 구하러 가기 일쑤였다. 3월의 속초는 여전히 뼈가 시리게 추웠고 의정부 영감이 보일러의 기름통을 알뜰히 비우고 떠난 까닭에 난방이 되지 않는 집안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명동집에만 다녀오면, 언젠가 비 오는 이르쿠츠크에서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자동차 GPS의 ‘즐겨찾기’에 분당구 수내동 사무실을 지우고 동명동집을 '회사'로 등록했다. 그것을 등록하며 우리 둘은 낄낄낄 웃어댔지만, 사실 그곳에 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기에 동명동집에 가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자고로 회사란 그런 곳인 것이다.  


그 무렵 3층 임씨를 처음 만났다. 동명동집은 두 면이 도로에 접해 있는데 그 중 한 도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인데다 길을 나눠 쓰는 앞집이 없고 막다른 길이나 다름없어 그 앞을 지나는 이가 많지 않다. 그러니 누군가 그 길에 나타나면 동명동집 관계자일 확률이 높다.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 잘 생긴 얼굴에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그는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가 꽁무니에 매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그가 바구니에서 짐을 꺼내 건물 입구에 내려놓는 것을 보고 우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이구야, 이제야 얼굴을 뵙네요."


그의 인사는 이제라도 만나서 반갑다기보다는 경계와 냉소를 드러내기 위한 인사치레의 말투였다. 세입자에게 있어 집주인이란 자고로 그런 존재인 것이다. 집주인과의 사이에서 생긴 갈등은 대개 세입자 스스로 해소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그 갈등의 크기는 세를 산 세월에 비례한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학습으로 내재된 적대감의 표출. 임씨의 첫인상은 꽤나 차가웠다. 


"저는 노가다나 하고 뭐 그러고 삽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가느다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그것을 깊이 빨아들이며 동명동집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도 그의 눈길을 따라 동명동집을 올려 보았다. 붉고 낡은 벽면이 쏟아질 듯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다.'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동명동집을 볼 때면 제일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크다. 동명동집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집이 면한 골목의 협소함 덕분에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집이 내게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집도, 그 동네도, 이 도시도 여전히 그렇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임씨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아무 말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임씨가 사는 3층은 물론이고 ‘의정부영감’의 '별장'을 제외한 다른 어떤 집도 그 안을 보지 못한 채 집을 샀다. 내부가 어떤 모습일지 몹시 궁금했지만, 쌀쌀맞은 그와의 첫 만남에 괜스레 풀이 죽어 그가 사라진 시커멓고 텅 빈 현관을 바라보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3층 구경은 글렀다. 그치?"




2.

‘의정부 영감’의 별장이었던 2층 오른쪽 집의 수리는 그 후로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는 수도 없이 동명동집을 들락거렸고 그곳에 갈 때마다 매번 동명동집 사람들 중 누군가를 골목에서 만났다. 주로 골목에 나와 있는 사람은 1층 왼쪽 집의 할아버지였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건물 갓돌에 앉아 햇볕을 쬐고는 했는데, 1층 오른쪽 집의 유갑수 아저씨가 그 옆에 앉아 말동무를 했다. 유씨 아저씨는 직업이 없는지 주로 집에 있었다. 서너 시 무렵이면 2층 왼쪽 집에 혼자 사는 전달수 할아버지가 인력거를 끌고 골목에 들어섰고, 3층 임씨 역시 비슷한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했다. 동명동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지만 그들을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골목에 나와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3층 임씨의 오토바이가 골목에 들어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는 우리 옆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그것을 빨아들이며 동명동집을 올려 보았다. 그런 그를 따라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우리는 다 함께 말 없이 한동안 그 붉고 거대한 벽면을 올려다보았다. 짧은 침묵을 깨고 임씨가 말을 꺼냈다.


"근데 계약서 말인데요... 그걸 다시 썼으면 싶은데..."


그 걱정을 여태껏 하고 있었나 싶어 임차 계약을 우리가 그대로 승계한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계약서를 고쳐 쓰지 않아도 된다고 다시 이야기했다.  


"그게 아니라, 제 집사람이 몸이 좀 안 좋은데 말이에요, 시청에 알아보니까는, 집사람 이름으로 계약이 되어 있으면은, 시청에서 돈이 좀 나온다고 해요. 그래서 말인데, 정말 그 돈이 나온다고 하면은, 월세 계약서를 제 집사람 앞으로 새로 써 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자꾸 계약서 이야기를 했구나. 우리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시청에서 돈을 준다니 잘 됐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며칠 후 집에 있는데 임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번에 부탁 드렸던 것 있잖아요? 계약서 말이에요. 그거 새로 썼으면 하는데... 시청에 알아 보니까는 될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말이에요, 부동산에 가서 쓰면 돈을 내야 하니까 그냥 사장님하고 우리하고 쓰면 어떨까 싶은데..."


우리도 그리 할 생각이었다. 경험이 없으니 남들은 어떻게 하나 인터넷에서 좀 알아 보았고, 국토부 홈페이지에 있는 부동산임차계약서를 내려 받아 미리 예습해 둔 터였다. 다음날 10시에 3층 임씨네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남의 집에 처음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어 동네 빵집에 들러 상자에 든 만이천 원짜리 카스텔라를 하나 샀다. 상자에 든 빵은 누가 사다 주지 않는 한 먹을 기회가 없다. 그것은 우리나 그들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동명동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찻길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리며 집을 흘낏 보니 3층 옥상에 머리가 하나가 보였다. 차문을 닫으며 다시 보니 하나가 늘어 이제는 머리가 둘이 되었다. 우리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임씨 부부는 3층 계단참에서 우리를 맞았다. 3층 아줌마를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임씨보다 키가 컸고 유난히 얼굴이 검었으며 머리띠로 싹 쓸어 넘긴 짧은 생머리에 앞니가 하나 없었다. 어딘가 조금 모자란 사람들 특유의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 느릿느릿 불편해 보이는 몸짓의 그녀는 빠진 앞니와 주름 깊고 기미 낀 얼굴에도 불구하고 서글서글 예쁜 사람이었다. 


"여기 처음 올라와 보시겠어요."  


임씨가 말했다. 동명동집 중에서 가장 궁금했던 곳이 바로 3층이었다. 그곳에서라면 바다가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혹시나 강원도 동해안에 부동산을 구입할 계획이 있다면 기억해 두세요. 첫째도 바다, 둘째도 바다, 셋째도 바다. 바다가 보여야 합니다. 흔히들 부동산 전문가들이 부동산은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라고 하는데 속초에서는 그 입지가 바로 바다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실을 동명동집을 덜컥 사 버린 다음에야 알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3층은 흔한 옥탑의 모습이었다. 2층에서 연결된 계단 끝 문을 옥상 마당과 집이 있는 구조. 서너 평쯤 되는 부엌과 서너 평쯤 되는 방 하나,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화장실이 집안에 있었다. 채 열 평도 되지 않는 집안은 놀랍도록 휑했다. 부엌이라고 해 봤자 문 다섯 개짜리 싱크대와 이질적으로 거대한 냉장고 한 대가 전부였는데 싱크대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문짝이 내려앉은 것도 있고 짝이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 살던 임씨 부부가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불과 일 년 전의 일이라 했는데 노랭이 ‘의정부영감’은 새로 세입자를 들이면서 주저 앉은 싱크대 하나 새로 갈지 않은 모양이었다. 십 몇만 원이면 새것으로 갈 수 있는 작은 크기인데 말이다. 집의 유일한 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살림 없는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살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높고 길쭉한 선반과 그 위에 올라간 거대한 텔레비전, 그리고 60cm 높이의 세 칸짜리 작은 플라스틱 서랍이 전부였다. 텔레비전에서 YTN 뉴스가 큰 소리로 나오고 있었지만 임씨도 그 부인도 그것을 끄거나 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방 한가운데에는 여러 겹의 이불이 층층이 깔려 있었다. 부부가 우리에게 그 위에 올라 앉으라고 권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사양했다. 조심스레 집안을 둘러보며 '도대체 옷이며 이불이며 어디에 두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작은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뉴스 소리를 들으며 준비해 간 임차계약서를 꺼내 임씨와 함께 읽어 보았다. 그 사이 3층 아줌마가 식당에서나 쓸 법한 커다랗고 둥근 스테인리스 쟁반에 요구르트 세 병을 들고 들어왔다. 


"시청에 알아보니까는, 이 사람이 몸이 안 좋아서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으니까는, 이 사람 앞으로 월세가 들어 있으면 얼마간 돈을 지원해 준다고 하대요. 그래서 이 사람 이름으로 계약서를 다시 쓰고 저는 이 집에서 완전히 빠지려는 거예요."


눈 밑이 어두운3층 아줌마는 가만히 있으면 화난 사람 같았지만 슬쩍 이라도 웃으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 같은 목소리와 말투 때문에 정말로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인가 싶다가도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임씨처럼 그녀도 우리를 경계하는 듯 보였는데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단지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계약서의 임차인 칸에 볼펜을 꾹꾹 눌러 본인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었다. 66년생. 서류 작성이 끝나자 우리는 시청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니 잘 된 일이라고 다시 한 번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배운 건 없어도 티비며 뭐며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좀 있는데 말이에요, 이런 게 시청에 알려지면 우리 사장님이 세금을 많이 내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인데..."


변변한 세간이라고는 냉장고와 텔레비전 한 대가 전부인 그가 혹여나 집주인인 우리가 월세를 받는 것이 시청에 알려져서 세금을 많이 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것은 월세를 많이 받는 부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니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줌마가 내 온 요구르트를 뜯어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줌마가 말했다.


"OO 아빠, 나는 이제 시장에 갈래요."


뉴스 소리가 하도 커서 누구 아빠인지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들에게 자식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줌마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임씨가 우리에게 소리쳤다.


"오신 김에 좀 둘러보실래요? 집도 못 보고 사셨을 텐데."


우리는 다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서쪽으로 향한 마당에서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저 멀리 울산바위가 흐릿하게 보였다. 남편은 임씨와 함께 태양광 판넬이 설치되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고, 그 옥상으로 오르는 다 썩어빠진 사다리를 오를 자신이 없던 나는 마당에 남아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앞에 서서 말똥말똥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어디가 안 좋으시냐 물었다. 그녀는 신장이 나쁘다고 대답했다. 


"그럼 투석을 하세요?"

"아니에요. 그냥 약만 먹고 있어요."

"시청에서 약값도 지원해 주나요?"

"네. 약값은 그리 많이 안 들어요."

"시장에는 뭐 사러 가시게요?"

"뭘 사러 가는 게 아니고 섭 팔러 가요."

"섭? 홍합이요?"

"네. 우리 아저씨가 새벽에 나가 따 왔어요."

"어디서요?"

"몰라요. 저는 몸이 불편해서 힘든 일은 못해요. 우리 아저씨가 따 와요."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요?"

"네. 바닷물에 들어가서 딴대요."

"날이 이렇게 추운데."

"네. 춥대요. 겨울에는 진짜 춥대요."


그러고 보니 그녀 뒤로 빨랫줄에 널린 축 쳐진 작업복과 남자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새벽에 바다에 들어가 섭을 따면 아픈 아내가 그걸 장에 내다 판다. 그들이 내는 한 달 이십이만 원의 월세는 그렇게 나오는 것이다. 옥상에 올랐던 남편이 내려왔다. 바다가 보이냐 물으니 보인다고 대답했다. 몹시 기뻤지만, 곧 있으면 그 앞으로 삼십 몇 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다. 우리는 집 구경을 시켜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건물을 내려와 차를 세워 둔 언덕으로 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집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그 동안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3층의 다 찢어진 방충망이 눈에 들어왔다.


"2층 방충망 하면서 저기도 같이 해야겠다."

"응, 그러자."


한심할 정도로 너덜너덜 너풀거리는 방충망을 올려 보고 있을 때 임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가셨더래요? 집 앞으로 잠깐 오실래요?"


전화를 끊고 뭐 빠뜨린 것이 있나 급하게 가 보니 임씨가 골목에 세워 둔 오토바이 바구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이것 좀 가져가세요."


섭이었다. 커다란 섭이 물과 함께 투명한 비닐 봉지에 빵빵 하게 담겨 있었다.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따 왔다는 이야기를 막 들은 참이었고 이것은 그들이 내다 팔 물건이었다.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사양했다. 임씨는 우리 말엔 아랑곳없이 검정 비닐봉지를 뜯어 섭 두 봉지를 넣었다. 


"먹을 줄도 몰라요 저희는."


말려도 소용이 없어 그럼 한 봉지만 주십사 하고 남편이 말했다.


"둘 다 가져가서리 하나는 죽 끓여 먹고, 하나는 국 끓여 드세요."


묵직한 섭 봉지를 억지로 받아 들고 차가 세워진 언덕으로 향하는데 가슴에서 왈칵 뭔가가 올라왔다. 한 시간 남짓 그들과 보낸 시간이, 앞니 없는 아줌마의 웃음이, 그 빈곤한 살림이, 낡고 이끼 낀 그 마당이, 다 찢어진 방충망이, 화나고 슬펐다. 

4월 11일.



3.

계약서를 새로 작성한 것은 사월 중순의 일로, 그 후 무슨 영문인지 3층 임씨의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았다. 2층 오른쪽 집의 방충망을 새로 하면서 3층도 함께 하려고 임씨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동명동집의 수도계량기에 문제가 생겨(툭하면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 수도국 직원과 그걸 들여다보고 있을 때 1층 유갑수 아저씨가 밖으로 나왔다. 잘됐다 싶어 3층의 소식을 물으니 그는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어우, 저는 몰라요. 하여간 애로가 있어요. 제가 자세히 말은 할 수 없는데 하여간 3층에 애로가 좀 있어요."


아주머니가 아프신 거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하고, 아저씨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냐, 혹시 오토바이 사고라도 났냐 물어도 아니라고 하며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하여간 3층에 애로가 좀 있어요."


유갑수 아저씨의 석연찮은 대답에 어쩌면 3층 아저씨와 아줌마가 함께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완전히 빠지고...' 계약서를 쓰던 날, 3층 아저씨의 저 말이 나는 아무래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단지 월세계약서의 명의만 본인에서 부인의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 '완전히 빠지고'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새로 쓴 계약서에 있는 3층 아줌마의 번호로 전화를 해 보자고 했지만 나는 일단 좀 기다려 보자고 그를 말렸다. 



4.

오월이 되었다. 2층 오른쪽 집의 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기에 우리의 출근 횟수는 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오월의 설악산은 비명을 지를 만큼 아름다웠고 오월의 바다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사로웠다. 우리는 도시락을 싸 들고 해가 좋은 날은 바다에 나가 햇볕을 쬐었고 바람이 상쾌한 날에는 설악산에 올라 하루가 다르게 잎이 커지고 꽃이 맺히는 나무들을 구경했다. 남편은 나뭇가지가 유난히 검고 매끈한 쪽동백나무를 특히 좋아했는데, 남편이 좋다고 하니 나도 그 나무가 좋았다. 설악산은 매일 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신흥사에서 삥 뜯어가는 통행세 명목의 주차요금이 얄미워 일주일에 한 번만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니면 주차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스쿠터를 한 대 사던가. 하여간 즐거운 나날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다고 동명동집의 일거리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라서 한편으로는 그래도 뭔가 '할일'이 있다는 안도와 그 할일이 바로 '지출'로 직결된다는 슬픈 사실이 공존했다.      


어느 날, 2층 오른쪽 집의 고장 난 현관 문고리를 고치고 있는데 건물 현관문이 열리더니 3층 아줌마가 들어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셨냐고, 잘 계셨냐고 인사를 건넸다. 헌데 그녀의 대답은 "누구세요?"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저는 집주인입니다,' 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을 때라 신분을 밝히기 위해 복잡한 설명을 해야만 했다.


"왜... 지난 달에 댁에서 월세계약서 다시 썼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녀는 계단을 올랐고 두 계단 아래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우리를 올려 보았다. 우리를 알아보는지 어쩐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내가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냐 물으니 그녀는


"고기 사 갔고 왔어요."


라고 답하고는 묵직한 검은 비닐 봉지를 계단에 툭 내려놓았다. 선선한 날이었지만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어디 가셨었냐고, 아저씨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통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했다고 안부를 물었다. 


"그 새끼 나갔어요."


아줌마가 답했다.


"그 새끼 나갔어요. 이혼하고 짐 빼서 나갔어요."

"아..."

"돈도 다 가지고 갔어요. 이혼이요? 이혼은 진작에 했어요."

"아.."

"그 새끼 개똘아이예요. 아주 무식해요. 학교도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어요. 그 사람 엄마가 아들 넷 두고 도망갔대요. 어렸을 때 짐 싸 들고 도망갔대요."

"아아..."

"아주 나쁜 새끼예요. 술만 먹으면 사람을 때려요."

"아니 누구를 때려요?"

"나를 막 때려요."

"아아아...."


맙소사. 뭐가 이런가. 그럼 앞으로 여기서 혼자 사시는 거냐고, 시청에서 준다는 그 돈은 신청했냐고 물었다.


"네, 했어요. 한 달에 사십 몇만 원인가 준대요. 제가 장애인인데 그거를 접수하면 또 이십만 원인가 준대요. 그럼 육십 몇만 원이 되는 거예요. 근데 지금 안 주고 한 달 반 있다가 준대요. 그때까지 제가 생활비 벌래요. 어제 내가 시장에 나가 섭 판 돈까지 그 새끼가 다 가지고 갔어요. 오늘 한 푸대 던져 주면서 그거 팔아 저 보고 생활비 쓰래요."


섭 한 부대를 팔면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모르지만 그걸로 생활이 되려나 싶었다. 나쁜 아저씨. 아니지, 아저씨는 무슨. 여자 때리는 나쁜 놈. 아줌마는 욕을 섞어 거칠게 말을 뱉었지만 밖으로 표출된 그녀의 화라는 것은 내가 보기에 몹시 약한 수준의 것으로 느껴졌다. 가끔은 웃으며, 가끔은 얼굴을 찡그리며, 대개는 무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시간이 괜찮으면 방충망 하는 사람을 불러도 되겠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가 사는 집의 다 찢어진 방충망을 떼어 내고 새것으로 갈아 버리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네. 방충망 없어요. 우리 이사올 때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모기장 쳤어요."


'방충망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3층과 연락이 닿았다고, 지금 함께 있으니 와 줄 수 있냐고. '방충망사장'은 곧 오마 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3층 아줌마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 3층 현관 앞에 이르자 그녀는 허리춤 전대에서 고무줄에 매달린 열쇠를 쭉 잡아 빼 열쇠 구멍에 밀어 넣으려 했다. 하지만 고무줄의 탄력이 그녀의 팔 힘보다 센지 열쇠가 자꾸만 전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결국엔 내가 거들고 나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 강아지 두 마리가 정신 없이 꼬리를 흔들며 방방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전에는 없던 놈들이었다. 그녀는 강아지 두 마리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는 어린 아기를 달래듯 쓰다듬고 흔들었다. 누렁이 똥개 두 마리.


"성천에 갔는데 무료분양이라고 써 있었어요. 내가 주머니에 오천 원이 있어서 줬더니 차비가 없는지 차비만 달라고 했어요. 천 원만 달래요. 그래서 두 마리 천 원에 사왔어요." 


오백 원짜리 강아지 두 마리를 안은 아줌마의 얼굴이 함박꽃이다.


"이름 아직 없어요. 그냥 성진이 성영이라고 할래요."


성진이랑 성영이가 누구냐 물으니 그녀의 아들과 딸이라고 대답했다. 나이는 서른 둘, 서른.


"우리 딸은 간호조무사예요. 한 달에 이백만 원이나 벌어요."


그녀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근데 안 와요. 지 아빠 때문에 안 와요. 제가 아빠랑 이혼했다고 우리 딸한테 문자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어요."


자식의 이름을 붙인 똥개 두 마리를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래고 쓰다듬으며 밝게 웃고 있는 여자. 


“장에서 뭐 사오셨어요?”

"생선 샀어요. 심심해서 나가 보니 할머니가 아직까지 마수도 못했대요. 스무 마리에 만 원인데 스무 세 마리나 줬어요. 토요일에 달라고 외상으로 줬어요. 근데 통장에 만 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서 은행에 가 보려고 들어왔어요. 만 원이 있으면 지금 갖다 주고 싶어요."


오후 다섯 시가 넘도록 마수도 못한 생선 장수 할머니까지. 가난한 사람 주변에는 온통 가난한 사람들뿐이다. 좋다고 오줌을 지리며 정신 나간 놈들처럼 방방 뛰어대는 강아지들을 마당에 남겨두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지난번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둘이 살다 하나가 짐을 빼 나갔다는데도 말이다. 커다란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들고 갔다면 모를까 원체 가진 것이 없으니 빈 자리도 없었다. 아줌마는 이번에도 방에 들어가 이불 위에 올라앉으라고 권했지만 괜찮다 사양하고 창문을 살폈다. 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는데 둘 중 남쪽으로 난 창문은 못질을 해놨는지 아무리 힘을 써도 열리지 않았다.


"그 문은 안 써요. 전에 살던 사람이 그 문으로 옆집 복숭아를 다 따 먹었대요. 옆집 할아버지가 막 화를 내면서 우리한테 그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의심 받을까 봐 우리 아저씨가 아예 못 열게 만들었어요."


다른 창문을 열어 밖으로 고개를 빼서 보니 옆집 나무에 골프 공만한 초록색 열매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저까짓 것 때문에 집에서 유일하게 남쪽으로 난 창문을 막았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창문을 막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넝마처럼 뜯어져 너덜거리는 방충망을 당장 새것으로 갈아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집주인이 거절하면 내 돈으로 방충망을 갈고 다음달 월세에서 충당했을 것이다. 내가 그녀였다면 술 쳐먹을 때마다 나를 패대는 남편 놈과 진작에 헤어졌을 것이다. 영창에 집어넣던가. 내가 그들이었다면… 그들의 대응기제에 속이 상한 나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아 속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 후 '방충망사장'이 집으로 찾아왔다. 참, 만약에 속초에서 방충망이나 샷시를 새로 해야 한다면 영랑동에 있는 '광성인테리어'에게 맡기면 된다. 장군처럼 씩씩한 육십 대의 여자 사장님이 혼자서 일을 척척 한다. 나는 겁이 많고 툭하면 놀라 자빠지며 비명이나 꽥꽥 지르는 인간이라 나와는 정반대로 씩씩하고 당차고 용감한 여성을 사모하는데 그녀가 바로 딱 그런 여성이다. 게다가 말씀은 또 얼마나 점잖게 하시는지 하여간 반해 버렸다. 그녀는 네 살 짜리 손자를 안고 들어왔다. 아들 내외가 서울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서 아이를 봐 주고 있는데, 집에서 손자와 하루 종일 있으려니 죽을 맛이라 손자를 데리고 가게에 나와 앉아 있을 때 마침 내가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등에 커다란 꿀벌 날개가 달린 옷을 입은 아이의 통통한 손에는 큼지막한 바나나가 쥐여 있었다. 낯가림 없이 잘 웃는 예쁜 아이였다. '방충망사장'이 창문을 살피는 동안 3층 아줌마는 여사장의 손주를 이불 위에 앉혀놓고 방에 있던 방울토마토를 먹이고 바나나를 까 주었다. 아이에게 "몇 살이에요? 이름이 뭐예요?" 라고 묻는 아줌마의 목소리는 아이의 목소리처럼 느리고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까르르르릉 재미있는 소리를 내면 아이도 까르르르 웃었고 그 웃음소리에 아줌마도 따라 웃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성진이와 성영이가 생각났다. 아빠 때문에 오지 않는다는 그녀의 자식들. 


2층 오른쪽집도 그랬지만 3층의 방충망 틀 역시 어거지로 창틀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요리조리 살피던 '방충망사장'은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힘들겠지만 어떡하겠어요, 잘 해봐야지."


라고 말하고는 칫수를 재고 견적을 뽑았다. 큰 창문 두 개, 화장실 창문 하나. 도합 칠만오천 원. 칠만오천 원이라는 가격을 듣자 노랭이 의정부영감을 향한 분노가 다시 한 번 일었다. 한편으로는, 통장에 만 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던 아줌마에게 방충망은 사치가 아닌지, 차라리 칠만오천 원의 현금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일을 마친 '방충망사장'은 앞으로 며칠 동안 비 예보가 있는데 비가 오면 작업을 할 수 없으니 날씨 봐서 연락을 주겠다며 꿀벌 날개를 단 손주를 안고 돌아갔다. 



5.

일기예보대로 그 후 며칠 동안 비가 왔다. 2층 오른쪽 집의 이삿날이 임박했기에 집 수리할 때 나온 쓰레기도 치울 겸, 그 사이 무슨 문제는 없었는지도 살필 겸 동명동집을 찾았다. 2층 계단에 놓인 쓰레기를 막 치우고 있을 때 3층에서 비옷을 입은 3층 아저씨가 내려왔다. '짐 싸서 나갔다더니...'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비 때문에 방충망 작업이 늦어져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얼마 후 짐을 잔뜩 들고 느린 걸음으로 3층 아줌마가 계단을 내려왔다. 이번에는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어디 가냐 물으니 장에 섭을 팔러 간다고 했다. 


"아저씨랑 화해하셨어요?"

"네, 화해했어요."

"그럼 다시 같이 사세요?"

"아니예요. 사는 건 따로 살기로 했어요."

"잘 하셨어요. 혼자 계시니 편하죠?"

"네. 너무너무 편해요. 밥도 저 먹고 싶을 때 먹고 너무너무 좋아요."


기분이 좋은지 내내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겨울 솜잠바에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월인데 이런 날 장에 앉아 있으면 많이 춥나 보구나 생각했다. 그녀는 녹슨 작은 손수레에 섭이 담긴 플라스틱 통과 어린 아이들이나 앉을 법한 작은 플라스틱 의자를 얹어 힘겹게 끈으로 묶었다. 나는 그녀를 거들어 수레를 잡고 끈을 당겼다. 신장이 나쁘다는 그녀는 걸음이 느리고 아랫배 부분이 불편해 보였는데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이 특히 어렵다고 했다. 한창 짐을 꾸리는데 멈춘 듯한 비가 다시 내렸다. 우산이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대답했지만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등에 대고 빨리 다 팔고 오시라고 소리를 질렀고, 그녀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하나 없는 앞니를 드러내고 커다랗게 웃고는 느릿느릿 동명동집을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걸음으로 걷는다면 오백여 미터 떨어진 시장까지 이십 분은 걸리지 싶었다. 



6.

오월의 마지막 화요일. 우리는 동명동집 골목에서 '방충망사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쳤고 그녀가 다른 곳에서 하던 작업도 끝나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된 것이었다. 마침 쓰레기를 들고 내려온 3층 아줌마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했다. 나도 그녀가 반가웠다. 언젠가부터 3층 아줌마는 동명동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장에 나갔다 왔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은 장에 안 가고 멍우했어요."

"멍우요?"

"네. 하루 종일 멍우했어요."

"멍우? 멍우가 뭐예요?"


멍우? 남편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즐겁다는 듯 접시꽃 같은 얼굴로 웃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멍우 몰라요? 멍우요. 기름에 볶아 먹는 멍우요."

"으으응? 멍우...멍우... 머위??"

"그렇게도 부르데요."

"아하. 강원도에선 머위를 멍우라고 불러요?"

"강원도에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경상도에서는 그렇게 불러요."


그녀의 고향은 경북 울진이라고 했다. 몇 해 전 울진에 여행 갔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울진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그곳에서 살 궁리를 했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 다시 갔는데 여행 마지막 날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저 멀리 원자력발전소를 발견하고 그 존재를 새삼 깨달은 다음 마음을 고이 접었다. 부모님이 그곳에 계시냐 물었다.


"다 돌아가셨어요. 제가 막낸데요."


그럼 형제자매가 그곳에 있냐 물었다.


"다 죽었어요. 큰 오빠는 옛날에 죽고, 넷째 오빠는 몇 년 전에 죽고, 셋째 오빠도 그 다음에 죽고. 몰라요 왜 그렇게들 빨리 죽었는지. 술 많이 먹고 그래서 죽었나 봐요." 


약속 시간에 맞춰 '방충망사장'이 도착했고 우리는 다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똥개들은 몰라보게 몸집이 늘어 있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못생겨도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시골에 흔히 있는 슬픈 얼굴의 누렁이 똥개였다. 개들은 목줄을 하고 난간에 묶여 있었는데 3층 아줌마 말이 우리가 온다 길래 아저씨가 묶어 놓았다고 했다. 3층 아저씨도 집에 있었다.


"밥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몰라요. 벌써 사료 한 푸대 다 먹었어요. 정말 잘 먹어요."


아줌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방충망 작업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기존에 있던 방충망 틀을 뜯어 그 틀에 망만 새것으로 갈아 끼운 다음 그걸 다시 가져와 창문에 설치하는 순서인데, 기존에 있던 방충망 틀을 뜯는 것도 어렵고, 뜯었다 해도 그걸 다시 달 방법 역시 마땅치 않았다. '방충망사장'은 무거운 나무 창문을 틀에서 빼내 척척 바닥으로 날랐고 망설임 하나 없이 창틀 위에 올라가 창의 바깥 면을 살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고 동해바다로 난 창으로는 더더욱 심한 바람이 불어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나의 심장만 오그라들 뿐이었다. 하여간 일일이 설명하기에 복잡하고 난감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한 시간여 만에 '방충망사장'이 방충망 틀 세 개를 당당히 떼어냈다. 정말이지 멋진 여성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에 와서 방충망을 다시 달기로 하고 가려는데 3층 아줌마가 나를 불렀다. 


"이거 가져 가요."


멍우. 머위였다. 그것도 너무나 많은 양의 머위. 너무 많아서 그걸 본 3층 아저씨마저도,


"이 사람아, 멍우만 먹으라는 거야? 아이고."

 라고 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나는 먹을 줄도 모른다고 거절하다가 그럼 너무 많으니 조금만 달라고 했는데 아줌마는 대답도 않고 웃기만 했다. 옆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방충망사장'에게 둘이 나누자 했지만 그녀는 집에 먹을 사람이 없다며 냉동실에 얼려 놓아도 되니 그냥 가져가라 거들었다. 집에 돌아와 머위를 어떻게 요리해 먹어야 하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그제서야 왜 3층 아줌마가 '오늘은 멍우 했어요.'라고 말했는지 이해되었다. 아줌마가 준 것은 '머위대' 였는데, 커다란 잎을 떼 내고, 씻고, 삶고, 쓴 맛을 빼기 위해 물에 담그고, 그 물을 갈고, 물에서 건져 껍질을 벗겨야 내 손에 든 머위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원시적 생계 수단인 채집과 수렵. 가진 것 없는 그들은 그렇게 돈을 번다.




7. 

2층 오른쪽 집에는 방배동과 잠원동 등지에서 살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 이년 전 속초에 왔다는 가족이 이사 왔다. 집을 구할 때 부동산에 나온 이는 육십 대 후반의 아주머니였는데 계약서는 나와 동갑인 큰딸 이름으로 작성했다. 그 아래 작은딸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며 부부 포함 네 식구가 살 거라고 했다. 만약 동명동집이 '다세대'주택이었다면 그 안에서 누가 어떻게 사는지 호구조사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지만, 동명동집은 '다가구'주택으로 수도 하나를 다섯 가구가 나누어 쓰고 수도요금은 사람 수로 나누어 매달 각출하기 때문에 어느 집에 몇 명이 사는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남의 집 사정을 이렇게 듣게 되는 것이다. 이사한지 열흘이 조금 지났을 무렵 2층 오른쪽 집의 아줌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저기여, 3층 사는 여자 있잖아요. 그 여자 뭐 하는 여자예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그 여자 도대체 뭐 하는 여자예요? 계단에서 시팔족팔 욕을 막 해요. 큰소리로 시팔족팔 개새끼 막 욕하는데, 나는 맨날 낮에 집에 혼자 있는데 그 여자가 계단에서 그제도 욕하고 오늘도 욕하니 얼마나 무섭겠어요? 네?"


가슴이 철렁했다. 3층 아저씨가 또 때렸나. 아님 그냥 싸웠나. 큰소리로 욕을 했다는 걸 보니 그래도 그럴 기운은 있었다는 건데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무슨 일인지 걱정되었다. 한편으로는 나이를 드실 만큼 드신 2층 아줌마가 이런 일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뭘 어쩌라는 건지 야속했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었다.


"접때는 건물 앞에다 홍합껍데기를 죄 펼쳐 놔서 쇠파리가 얼마나 꼬였는지, 공동주택에서 말이야 그래서 쓰겠어요? 그쪽에서 좀 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새벽 서너 시에 쿵쾅거리고, 계단에서 시팔족팔 욕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집 계약 기간 많이 남았어요?"


남의 계약기간까지 묻는 건 또 뭔가.


"저… 3층 아줌마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 분 좋은 분이에요. 새벽에 쿵쾅거리는 거는 그 집 아저씨가 새벽에 바다에... 아니 아니, 하여간 3층 아줌마 좋은 분이세요. 게다가 아주머니한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뭐요? 나한테요? 나한테 욕했다가는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요? 어? 가만히 냅둘 줄 알아요?"

"그러니까요. 아주머니한테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랬다고 말하지 말고 하여간 그쪽에서 3층에 뭐라고 좀 해요!"


전화를 끊고 뭐라고 해야 하나 생각했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뭐라고 할 뭐가 아무것도 없었다.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하던 설거지를 마저 했다.




8. 

비 오는 어느 날 동명동집에 갔더니 계단실 꼭대기에서 물이 흘러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누수'는 동명동집을 산 이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되었는데 물이 전선으로 흐른다거나 벽체에 스며들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서 물이 들어오는지 찾아내기도 힘들고 그걸 해결하기는 더더욱 힘들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다. 비가 오지 않은 날 확인 차 다시 가보니 다행히 계단에 물기가 없었다. 하지만 누수는 아주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초짜들이 어떻다 저떻다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쪽의 전문가인 '방충망사장'에게 한번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3층의 계단실 옥상에 대어져 있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다리를 서슴없이 오르더니, 사람을 불러 일을 시킬 것 없이 우리가 의심했던 부위에 방수제를 사다 바르라고 조언하며 방수제는 철물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우리 같은 무지깽이들에게는 '어느 철물점에 가서, 어떤 제조사의, 어떤 제품을, 몇 개 사다가, 몇 번에 나누어, 몇 시간 간격으로 바를 것' 정도 되는 구체적인 지령이 필요했지만, 그림 그리는 밥 아저씨가 쓱싹쓱싹 붓질 몇 번으로 그림을 그리며 "보세요, 참 쉽죠?" 라고 했던 것처럼 '방충망사장' 또한 그러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특정 분야에 대해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간 우리는 속초 시내에 있는 거의 모든 철물점에 들르고 나서야 우리가 다룰 수 있고 용량도 적당한 방수제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방수제를 구했으니 3층에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할 차례였다. 


막 전화를 하려는데 마침 3층 아줌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청에서 나온 공무원이 지금 집에 와 있는데 집주인과 통화하고 싶어한다며 전화를 바꿔 주었다. 자신을 속초시청 주민생활지원실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힌 여자는 3층 아줌마가 신청한 거주비 지원이 거절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유는 아줌마의 아들이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인데 직장이 있어도 가진 돈이 얼마 없다면 문제될 것이 없어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나 알아보려고 시청에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신용정보조회에 대한 동의를 구했더니 아들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다른 자식인 딸은 현재 실업 상태라는 사족도 곁들였다. 그리하여 거주비 지원은 받을 수 없고, 긴급 지원 명목으로 석 달치의 월세만 받게 되었다며 필요한 서류를 3층에 놓고 갈 테니 시간이 될 때 와서 서류에 서명도 하고 우리의 통장 사본도 보내달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들의 소식을 듣고 아줌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돈도 못 받게 되었다.  


3층에는 못 보던 개가 한 마리 늘어 세 마리가 뱅뱅 돌고 방방 뛰어댔다. 장에서 천 원에 샀다는 아이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성진이와 성영이는 일주일 사이에 또 컸는데 그 일주일 사이에 사료 한 부대를 또 다 먹었다고 아줌마가 칭찬했다. 임씨가 말했다.


"왜 텔레비전을 보며는 집에 개 백 마리씩 데리고 개판으로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이 사람이 이제 그렇게 될 거래요. 두고 보세요. 딱 그렇게 될 거래요."


임씨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마당에 남은 아줌마는 개 한 마리를 들어올려 엉덩이를 받쳐 안고는 얼굴을 쓰다듬고 등을 어루만졌다. 강아지가 아줌마의 눈을 바라보며 낼름낼름 얼굴을 핥았다. 이날 나는 처음으로 옥상에 올랐다. 방수제 작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믿음이 가지 않는 사다리 위에 오르는 일이 고역이었지만, 첫 번째 옥상을 지나 두 번째 옥상에 이르자 남편이 말했던 대로, 그리고 3층 아줌마가 말했던 대로 하늘과 경계를 이룬 푸른 동해바다가 저 멀리 내려다 보였다. 멋진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가려질 바다, 지금도 계단을 오르고 몇 개의 사다리를 밟고 서야 보이는 바다. 


방수제 작업은 쉽지 않았지만 잘 됐는지 어땠는지는 비가 다시 와야 알게 될 것이었다. 어쨌거나 방수제 한 통을 다 썼다는 사실에 자위하며 우리는 옥상을 내려왔다. 


"하나님이 좋은 집주인을 내려 보내 주셨어요."


교회에 다니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왕국 회관 다녀요. 네. 여호와의 증인이요. 우리 하나님이 좋은 집주인을 내려 보내 주셨어요. 방충망도 갈아 주고 집도 고쳐 주고. 고마워요."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회관에 나간다고 했다.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전쟁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뿐이지만, 혹여 그녀가 교회에 갈 때마다 헌금을 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교회에 내는 헌금도, 개들을 먹이는데 드는 사료값도 지금 그녀의 형편에 적은 돈이 아닐 것이다. 반면 반려견은 물론이고 종교가 가진 순기능을 생각하면, 그녀 옆에 여호와와 똥개 세 마리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올 때 개 사료 한 부대 사다 줘야지. 


집 안으로 들어가니 임씨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라면을 냄비 채 먹고 있었다. 그는 멋쩍었는지 자신의 전 부인에게 애먼 소리를 했다.


"이 사람이 말이야. 내가 라면 하나 끓여 달래도 듣지도 않고 개새끼들만 보고.... 사장님도 와서 좀 같이 드실래요?"


시청의 서류는 달랑 한 장짜리로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서명을 하면 끝이었다. 나는 아줌마에게 돈을 다 못 받게 돼서 안됐다고 위로를 전했다. 내 옆에 가까이 앉아 있던 그녀는 웃는 얼굴로 내 눈을 깊이 들여다 보았다. 그녀의 눈은 햇빛에 빛나는 바닷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시청에서 신용 정보 조회인가를 해야 한다는데 우리 아들이 싫다고 했대요. 그래서 안 된대요. 우리 딸은 간호조무사예요. 한 달에 이백만 원이나 벌어요. 근데 지금은 일을 그만두었대요. 시청 사람이 그랬어요. 그래도 월세를 석 달 치나 주겠대요. 그게 어디예요. 그죠? 정말 잘 됐죠? 그죠?"


어떤 성정의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얼굴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몸을 기울여 나의 눈을 더 가까이서 들여다 보며 웃는 얼굴로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빛나는 눈동자를 하고서 말이다.


처음 3층 아줌마를 만났을 때, 처음 3층에 올라와 그녀의 살림을 보았을 때, 그때 이후로 나는 줄곧 어떤 상상을 하며 그녀를 어쩌면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3층 부부는 바다에서 멀찍이 떨어진 산골 마을에 마당 예쁜 아담한 집을 가지고 있다. 농사 짓는 기술이 없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섭을 따는 일뿐이다. 하여 바다와 시장이 가까운 동명동집에 월셋방 하나 얻어 놓고 평일에는 섭을 따서 팔고 주말이면 두 내외가 노란 바구니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산골 집에는 장롱도 있고 화장대도 있다. 거기에 다 있기 때문에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부질없는 짓인 거 나도 안다. 


"네, 정말 잘 됐어요. 맞아요, 그게 어디예요."


시청 직원에게 문자 메시지로 통장 사본을 보내는 것으로 할일이 끝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녀가 내 팔을 잡아당겨 자리에 다시 주저앉히더니 전에도 본 적 있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둥근 쟁반에 받쳐 수박 한 그릇을 내왔다. 숟가락으로 긁어 담은 듯한 수박이 꽃무늬 밥그릇에 담겨 있었다.


"먹고 가요. 시원해요. 그러지 말고 먹고 가요. 어서 먹어요." 


숟가락도 그릇도 모두 차가웠다. 옆구리까지 박박 알뜰히 긁은 수박은 맹탕이었다. 


"달아요."

"그죠? 달죠?"


수박을 먹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그녀가 그녀의 강아지들을 바라볼 때의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로 그녀는 우리가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참을성 있게 말없이 지켜보았다. 다음에 올 때 당도선별 수박 한 통 사다 줘야지.




9.

7월 6일. 그녀가 죽었다. 3층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열흘 동안 강릉아산병원 중환자실에 계셨고 오늘 병원으로부터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임씨가 전화로 우리에게 알렸다. 임씨의 전화는 남편이 받았다. 소파에 누워 통화하던 남편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나는 그녀의 죽음을 짐작했다. 동명동집 골목에서 그녀가 일찍 세상을 떠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죽음에 대해 혹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초월한 듯 평화로운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어쩌면 그녀 역시 그녀의 가족들처럼 세상을 일찍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이 죽자마자 임씨가 고작 임대인에 불과한 우리에게 부고를 전한 이유는 월세 보증금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던 월셋집을 부인의 이름으로 바꾸고 부부가 이혼을 했으니 일이 복잡하게 된 것이다. 장례도 문제였다. 자식들이 무슨 포기 각서를 쓰면 3층 아줌마가 무연고자가 되어 병원에서 장례를 치뤄 준다는데 그렇게 포기 각서를 쓰게 되면 나라에서 월세 보증금을 가져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 돈은 그의 전 재산이라고 그가 말했다. 이백만 원. 


2층 오른쪽 집의 현관문이 또 말썽이라는 연락을 받고 그녀가 죽은 뒤 열흘이 지났을 무렵 동명동집을 찾았다. 문을 진단한 '방충망사장'의 조언으로 현관문을 통째로 갈기로 했다. 동명동집 사람들 중 누군가는 3층 아줌마의 소식을 알고 있었고, 몇몇으로부터 3층 임씨를 봤다, 못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3층에서 개들이 하도 죽는 소리를 내고 짖어대서 살 수가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3층 임씨는 남편이 혼자 만났다. 나는 개들이 어떤 꼴을 하고 있을지 겁이 나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남편은 삼십여 분이 지나 내려왔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매우 슬퍼하는 듯 보였고 술에 취해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월세 보증금에 대해 남편과 내가 궁리한 방법은 그나마 돌아가신 아줌마와 연락하고 지냈던 딸이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속초에 내려오면 딸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았다는 영수증을 형식적으로 받고 임씨와 새로운 계약서를 쓰는 것이었다. 남편이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아줌마의 소식을 딸에게 전했냐고 임씨에게 물었더니 그가 남편을 한동안 무섭게 노려보더니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요? 당신도 여호와의 증인이요?”  


다행히 개들의 밥그릇과 물그릇은 채워져 있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개들 몸에 상처가 좀 있는데 임씨 말에 따르면 서열 싸움인지 뭐 그런 모양이었다. 동물보호소에 보내면 어떻겠냐고 임씨에게 물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아줌마의 장례는 아직 치르지 못했다.



10.

딸이 내려온다고, 내려오면 같이 납골당에 가려고 한다고, 그러니 딸이 내려왔을 때 계약서를 다시 써 줄 수 있냐고, 며칠 전 임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줌마는 무연고자 장례를 치르고 강릉 어디 납골당에 모셨다고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그가 말했다. 몇 년 동안 엄마를 보지 않은 딸, 그런 엄마를 잃은 딸. 처음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나, 그냥 꼭 안아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기온이 38도였다. 하필 딸 아이가 온 날 이렇게 더우니 에어컨 없는 단칸 옥탑 방에서 다 큰 딸이 좋아하지도 않는 아빠랑 함께 자려면 얼마나 불편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아침 8시에 와 줄 수 있냐고 그가 부탁했다. 


아줌마를 뵈러 가는 길에 예쁜 꽃 한 다발 사 가시라고 봉투에 십만 원을 담아 이른 아침 3층에 갔다. 임씨가 복숭아 세 개, 참외 한 개를 밥그릇에 담아 쟁반에 받쳐 내왔다. 딸 아이는 침착하고 순하게 생겨서 별 말도 않고 앉아 있었다. 섬망. 16년 세월을 함께한 집개가 죽기 마지막 몇 달 동안 섬망을 앓았다. 집개 역시 신장이 망가져 간과 심장에까지 병이 났었다. 집개는 아픈 몸으로 벌떡 일어나 몇 시간이고 집안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아무 곳에나 똥 오줌을 눴다.  3층 아줌마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시장에서 오는 길에 집을 못 찾아 헤매기도 하고 자다가 실수도 했다고 임씨가 말했다. 한번은 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 한복판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겠다며 있지도 않은 호루라기를 불고 수신호를 한 적도 있었다. 복숭아를 훔친다고 할까 봐 창문에 못질을 한 것이 아니라 바람이 심하면 창틀이 떨어 못질을 했다며 그는 죽은 아내가 있지도 않은 일을 진짜로 착각하고 살았다고 했다. 전에도 개 세 마리를 키운 적이 있는데 자기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개를 끌어안고 있어 임씨가 보내버렸다고 했다. 


“어디로 보내셨어요?” 

“보신탕 집이요.”


멋쩍게 웃으며 그가 대답했다. 계약서를 쓰고, 복숭아 한 알 깨물어 먹고, 잘 다녀오시라 인사하고 마당에 나와 보니 마당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그 사람 생각나서 다 치웠어요. 무섭고 힘든데 먹고 살려면 벌어야 하니까는 그래서 그 사람 생각나는 것들 싹 다 치웠어요.”


그가 말했다.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어요. 더 슬퍼하셔도 돼요, 아저씨.” 


이렇게 말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게 아니구나 싶어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가난한 사람들은 오래 슬퍼하지도 못한다. 먹고 살려면 오래 슬퍼할 수 없다.


아줌마가 준 멍우는 볶아 먹고 지져 먹고 그래도 남아 아직도 냉동실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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