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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Sep 05. 2018

[24] 여름을 보낸 소감.

2부-강원도 속초

죽전 집엔 에어컨이 없었다. 딱 이 년만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에어컨 설치비라도 아끼자는 생각이었다. 죽전에서의 여름은 역사상 가장 더웠다는 2018년의 여름보다 내겐 더 더웠다. ‘이 또한 지나가리’ 주문을 외며 그냥 꾹 참았다. 무자비한 두 번의 여름을 지독히 보낸 나는 속초로 이사하며 창고에서 몇 년째 묵고 있는 에어컨을 꺼내 달까도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속초는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태백산맥 푄 현상의 수혜지 라는 믿음에서, 그리고 또 그 놈의 에어컨 설치비라도 아끼자는 생각에서 십여 년 전 구입한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은 죽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발코니 한쪽 끝 창고에 고이 모셔졌다. 


속초도 더웠다. 태백산맥 너머의 다른 도시들이 올해의 최고 기온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 속초 역시 그들과 4도에서 5도의 차이를 착실히 유지하며 사력을 다했고, 반대로 산 너머의 도시들이 '살 만한' 기온이 되었다는 팔월 초순의 며칠 동안은 38도에서 39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불 뺀 가마 안이 이러지 싶을 정도로 몹시 뜨거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공기는 습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속초의 습도 조절은 설악산이 책임지는 듯 보였는데 도심에서 직선 거리로 고작 7km 떨어져 있는 설악산의 날씨가 도시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설악산에는 늘 거대한 구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대청봉은 물론이고 도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울산바위와 달마봉조차 구름에 가려 볼 수 없는 날이 많았다. 도시가 맑고 청명한 어느 날 오랜만에 설악산에 간 적이 있는데 산으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하늘빛과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에는 물론 비가 내리고 있었고 산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도시에는 여전히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하여간 그랬다. 도시의 하늘마저 회색 빛이 되는 우중충한 날이면 설악산은 구름에 완전히 가려졌고, 배경에서 설악산이 말끔히 지워진 도시는 몰개성 그 자체여서 영락없이 그 쇠락함과 너절함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난개발에 난자 당한 여느 지방 소도시의 몰골이 되었다. 


칠월은 주로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자동차 트렁크에 파라솔과 돗자리가 실려 있으니 수영복을 입고 수건 한 장과 간식거리를 챙겨 집을 나서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즐겨 가는 바다는 옆 동네 고성의 청간해변이란 곳으로 유난히 모래가 굵고 주변에 변변한 가게가 없어 꽤나 한적한 곳이다. 집에서 십여 분 거리에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파란 하늘과 기분 좋은 비명이 터져 나오는 차가운 바다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니지. 축복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수동적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 때문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이곳으로 오지 않았던가. 우리는 모래밭에 돗자리를 펴고 파라솔을 꽂은 다음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짐을 부리고 자리를 펴느라 한껏 달궈진 몸을 식혔다. 그러면 이제 몸과 마음은 그 어느 것도 모자라지 않은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차가워진 몸으로 따뜻하고 푹신한 모래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돌돌 굴려가며 시원한 바닷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쬐고 있으면 세상에 어떤 중요한 일도 걱정거리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이 다시 불덩이가 되어 이 중용의 상태가 깨어진다 해도 문제없었다. 미끄러져 들어갈 차가운 바닷물이 내 발치에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히 두려웠다. 수평선을 향해 하늘과의 경계를 알 수 없을 만큼 짙고 푸른 저 바다 끝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가늠할 수 없는 바닥의 깊이와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나는 언제나 해변과 평행으로 헤엄쳤다. 그러니 그 기분 좋은 바닷물 속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라고는 곶 끄트머리에 자리한 페인트가 다 흘러내려 때가 잔뜩 묻은 어촌계 건물이거나 혹은 반대편 곶 끝자락에 세워진 거대한 콘크리트 팬션의 추한 모습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적하고 고요한 바다를 오롯이 누리고 있음에 행복했다. 물에서 나와 배가 고프면 복숭아를 베어 물었고 책을 읽다가 졸고 졸다가 읽기를 반복했다. 태양과 침묵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한낮의 괄괄한 태양이 기운을 잃고 청간해변에 나홀로 우뚝 서 있는 한 동 짜리 아파트 뒤로 넘어갈 때면 동네 할머니들이 하나 둘 경로당 앞 평상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면 우리도 모래를 털고 짐을 챙겼다. 집을 향해 7번 국도를 달리며 금강산 능선에 걸쳐 금빛으로 일렁이는 부드러운 석양과 서정적으로 빛나는 들판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이 생활 부디 영원하길.


불행히도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7월 14일 해수욕장이 문을 연 것이다. 작은 청간해변에도 그늘막이 세워졌다. ‘청간리 마을번영회’ 사람들은 뭘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하나 싶을 정도로 좋은 자리를 죄다 차지하며 그늘막을 설치했다. 흔한 커피 트럭 한 대 서지 않는 그곳까지 찾아오는 관광객은 많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바다라는 곳은 사람이 웬만히 많지 않고서야 붐빌 수 없는 곳이기에 한동안 별 불만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늘막 장사가 시원치 않아 그랬는지 아니면 매일같이 찾아와 가져온 파라솔을 꽂는 우리가 눈에 거슬렸는지, 어느 날 마을번영회 사람이 우리를 찾아와 거주지를 묻고는 (우리가 청간리에 살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나지막이 주의를 주었다. 


"사장님, 주말에는 저기 뒤쪽으로 가세요." 


번영회가 받는 그늘막의 가격은 사 만원이라고 했다. 주중 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청간해변은 붐비지 않았고 우리가 파라솔을 꽂는 곳 근처의 그늘막은 언제나 비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 후로 청간해변에 가는 것을 자제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핑계를 대자면야 '바다에 사람이 너무 많을까 봐' 혹은 '지금 가면 타 죽을지도 몰라서' 였지만, 진짜 이유는 그들로부터 경고인지 주의인지 부탁인지 간청인지를 듣고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바다에 가지 않으니 죽도록 더웠다. 우리는 도서관이나 커피집 등 에어컨 바람이 보장된 곳을 전전하며 칠월 마지막 주를 보냈다. 집안에서 움직일 때면 선풍기 코드를 뽑아 들고 선풍기와 함께 움직였다. 선풍기 한 대를 둘이서 나눠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누군가가 선풍기 바람 덕에 견딜만한 상태가 되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는 그 더위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둘이 각각 다른 공간에 있을 때에는 좀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선풍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어떤 합의였다. 밥을 하는 사람, 설거지를 하는 사람, 컴퓨터에 앉아 돈 계산을 하는 사람이,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 보거나 방바닥에 널브러져 책을 읽는 사람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고 그것은 곧 선풍기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선풍기 바람을 쐰다 해도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돈 계산을 하다 보면 열불이 났다. 누가 선풍기 바람을 더 많이 쐬는가와 함께 선풍기를 집안 어디에 두느냐 역시 중요한 사안이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왔을 때 선풍기를 어느 방향으로 틀어서 집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식히느냐, 잠을 잘 때 창문을 등지고 선풍기를 두느냐 아니면 방문을 등지고 두느냐 따위가 일생일대의 문제처럼 여겨졌다. 한편, 몸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지독한 무더위는 사실 나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너무 더워서 혹은 휴가기간이라서 온 국민이 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비된 듯 가만히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한 살인적인 폭염은 당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부여했고 면죄부를 손에 쥔 나의 마음은 한없이 느긋하고 평온했다.  


8월 19일 해수욕장이 문을 닫았다. 그날은 속초에서 열린 해양스포츠제전의 폐막일이기도 했다. 폐막식 행사의 일환으로 속초해수욕장에서 공군의 에어쇼가 펼쳐졌다. 폐막일 며칠 전 사전 예고 없이 진행된 연습 비행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지만, 가을 하늘처럼 높고 새파란 하늘에 불쑥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솟구치고 땅에 박힐 듯 낙하하며 하늘에 이런 저런 무늬를 그려내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폐막일 당일은 안타깝게도 에어쇼를 하기에 좋은 날씨가 아니었지만 북새통 같았던 그 여름의 무더위와 휴가철을 마감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닭강정 상자를 손에 들고 대거 시내를 누비던 관광객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태풍이 한반도를 훑고 지나간다며 한차례 소동이 있은 후 팔월 말의 어느 날 우리는 다시 청간해변을 찾았다. 한 달만이었다. 바다는 몰라보게 깨끗한 모습이었다. 파도에 해변으로 떠밀려 오던 해초들은 온데간데 없고 물에 둥둥 떠다니던 비닐봉지들도 모두 사라졌다. 햇볕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바람은 건조하고 시원했다. 해변에 자리를 잡은 이는 우리뿐이었다. 간혹 서너 명의 관광객들이 꺄악 비명을 지르며 해변으로 들어와 정성껏 사진을 찍고 사라졌지만 수영복을 입고 모래사장에 누워 햇볕을 쬐고 바다에 들어가 팔을 휘젓는 사람은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여름의 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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