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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Jun 10. 2021

[사워도우]노예에서 해방되기_⑸신경 쓰이던 것들.

1. 왜 내 스타터는 남들 것보다 덜 부풀까?

→ 스타터는 수분율이 낮은 스타터가 높은 스타터보다 더 잘 자라요. 간단히 예를 들면 125%<100%<60% 이렇게요. 같은 수분율일 경우, 어떤 용기에 담느냐에 따라, 그 용기의 재질이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다른 성장 모습을 보인다고 해요. 넓은 병에 스타터를 담았을 때보다 좁은 병에 담았을 때 부피가 더 커지는데, 그것은 병의 '벽'이 스타터를 받쳐 주기 때문이에요. 좁은 병에 담겨 네 배로 부푼 스타터가 넓은 병에 담겨 두 배로 부푼 스타터보다 빵을 만들 때 유리할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그 의문은 스타터를 가능한 크게, 다른 사람들이 자랑하듯 다섯 배 여섯 배가 되도록 키워야만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그 의문은 다시 아래의 질문을 낳았지요.

동시에 만든 스타터들, 앞은 수분율 60%, 뒤는 100%의 스윗스타터.



2. 여섯 배로 부푼 스타터로 빵을 만들면 빵도 여섯 배로 부풀까?

→ 네 배로 부푼 스타터로 빵을 만든다 해서 제 빵이 네 배가 되어 나오지 않고, 냉장고 안에서 오히려 사그라들어 원래의 부피가 된 스타터로 빵을 만든다 해서 제 빵이 납작한 호떡이 되어 나오지 않거든요. 그러니 반죽에 들어가기 직전의 스타터 상태, 두 배, 네 배, 여섯 배... 이것들은 도대체 다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긴 거지요. 바보 같아 보일 거 뻔히 알면서도 페이스북 그룹에 위와 같은 질문을 올렸어요. 그 그룹의 주인장은 전직 셰프이자 현직 베이커로 미국 켄터키주에서 the grain wright라는 이름의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가 하는 말은 다음과 같아요.


"중요한 것은 스타터가 어느 지점을 넘어서 얼마나 높게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발효의 타이밍을 잘 아는 것, 글루텐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 내는 것, 반죽에 충분한 'tension'을 주는 것이다."


그에 앞서 답한 다른 멤버는 더 간단히 이렇게 정리해요.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그걸 네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3. 왜 내 스타터는 기포가 작을까?

→ 저는 사워도우를 구글 검색을 통해 배웠어요. '사워도우 101', '당신이 사워도우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류의 제목을 단 베이커들의 글을 통해서요. 그런 글들 속에 등장하는 사워도우 스타터들은 정말 멋졌어요. 유리병 옆면으로 보이는 기포는 뽀글뽀글 커다랗고, 간혹 박력 넘치게 스타터가 유리병 밖으로 흘러넘치기도 했지요. 그들의 스타터 사진을 보며, 왜 내 스타터는 저런 기포가 보이지 않지? 궁금했던 적이 있어요. 유리병 밖으로 흘러넘치는 거야 이것은 순전히 베이커의 계산 잘못으로 생겨난 일인데, 글에 활력을 주기 위한 혹은 스타터의 넘치는 생명력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연출로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렇다면 남는 건 기포... 왜 내 스타터는 저들의 스타터처럼 기포가 크게 보이지 않지? 그래서 내 빵이 저들 빵보다 덜 멋지게 나오는 걸까? 궁금했었지요.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의 꾸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저의 결론이에요.

(1) 포토제닉 기포!!


(2) 기포 없다, 오바!


(1)과 (2)의 차이가 확연하죠? (1)은 스타터를 리프레시 할 때 기존에 스타터가 담겨 있던 병에서 밥을 섞은 다음 그 스타터를 '깨끗한 새 병'에 옮겨 담은 것들이고, (2)는 기존 병에서 리프레시 한 것들이에요. 위에서 스타터는 어떤 용기에 담느냐에 따라, 그 용기의 재질이 무엇이냐에 따라서도 다른 성장 모습을 보인다고 했잖아요? 같은 맥락이에요. 깨끗한 유리병의 벽면이 저런 기공을 만들어 내는 거라 짐작해요. 하여 제가 내린 결론은 밖으로 보이는 기포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1)로 만든 빵과 (2)로 만든 빵 사이에 차이점이 없기 때문이에요. 기포가 없다고 해서 스타터가 건강하지 않은 게 아니니까요. 지난 몇 회에 걸쳐 주장한 바이지만, 우리의 목표는 '멋진 빵'을 굽는 것이지, '예쁜 스타터'를 키우는 게 아니니까요.



4. 블링블링 쿠프 나이프가 없어서 토끼 귀가 안 나오나?

→ 인스타그램의 외국의 베이커들이 이런저런 예쁜 쿠프 나이프를 사용하는 걸 보며 부러워했던 적이 있어요. 손에 착 잡힐 것만 같고, 저런 쿠프 나이프가 있으면 어쩐지 제 빵도 저들의 빵처럼 발라당? 훌러덩? 벗겨져 예쁜 토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지요. 헌데 그렇지 않아요. 만약 반죽에 scoring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반죽이 밀리거나 칼에 반죽이 달라붙는다면, 그것은 칼이 문제가 아니라 반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에요. 잘 된 반죽은 예쁜 쿠프 나이프 없이도 문제없어요. 저는 사워도우 베이킹을 시작한 2018년에 속초 중앙시장에 있는 '모닝글로리' 문구점에서 열 개 묶음 '도루코 양날 면도날'을 천 원에 구입했는데, 처음 뜯은 것은 2018년 긴 겨울 여행을 앞두고 버렸고, 2019년 여행에서 돌아와 뜯은 걸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열 장에 천 원!                                



5. 그렇다면 '토끼 귀'는 꼭 있어야 할까?

→ 이렇게 반문할 수 있겠어요. "토끼 귀가 있다고 다 맛있는 빵일까?"

아마 각자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빵이 있을 거예요. 껍질은 어때야 하고 속은 어땠으면 좋겠고 맛은 또... 저의 목표는, 얇고 질기지 않은 껍질, 너무 쫄깃하지 않은 보드라운 속살, 그리고 신맛이 없는 빵을 늘 한결같이, 들쭉날쭉 오락가락하지 않고, 굽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들 중에서 달성한 것은 제일 마지막, 신맛이 없는.. 뿐이에요. 어떤 날은 껍질이 질기고, 어떤 날은 기공이 조밀하고, 어떤 날은 속살이 너무 쫄깃해요. 하물며 어떤 날은 이 모두가 한방에 나타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이상향 빵에 '토끼 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아요. 왜냐하면 토끼 귀가 있다고 해서 빵이 맛있고, 없다고 해서 실패한 빵이냐, 그렇지 않기 때문인데, 예를 몇 가지만 보여드릴게요.

(1) 토끼 귀가 있으나..

껍질이 질기고 두꺼웠어요. 신기한 게 오븐에서 꺼낸 지 4시간 후 썰었는데, 벌써 껍질의 바삭함이 사라졌어요. 띠용.
껍질 얇고 바삭하고 속살이 포실했으나 기공이 조밀한 부분은 쫄깃했어요. 전체적으로 고르게 기공이 퍼지도록 연습이 필요해요.

예쁘죠? 겁나게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이었지만, 너무나 촉촉한 나머지 껍질이 금방 바삭함을 잃고 눅눅해졌어요.


길쭉한 기공을 가진 이런 내상은 대개 속이 너무 쫄깃해요. 껍질도 두껍고요.


예쁘기만 하지 껍질이 바삭하지 않았어요. 너무나 쫄깃;;;;


(2) 토끼 귀는 없지만..

너무 못생겼죠? 하지만 껍질이 무슨 바게트처럼 얇았어요. 속살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요.
오븐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빵이 이렇게 된다고들 해요. 그럼에도 껍질 얇고 바삭하고 속은 포슬했어요.넘 맛있었어요.
얘는 기공이 조밀해서 예쁘지는 않지만, 기공보다 제가 더 바라는 목표인 껍질 얇고 바삭, 속 포슬이었어요.
이하 동문!
이하 동문.



6. 빵 썰기 힘들어 죽겠다, 손목이 나갈 것 같다, 육절기를 사야 하나?

→ 일단 칼갈이를 사세요. 칼이란 당연히 갈아 쓰는 거 아니냐고, 그게 뭐 별거라고 그러냐는 분들이 다수겠지만, 여러분 저는 정말 몰랐어요. 결혼하면서 장만한 헹켈 별 다섯 개 부엌칼, 남편이 출장 가서 사 온 wmf 빵칼 이렇게 있는데, 십수 년 동안 단 한 번도 갈지 않았어요. 갈아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빵 써는 동영상들을 볼 때마다, 몇 번 왔다 갔다 스윽스윽 너무나 쉽게 써는 그 동영상들을 볼 때마다, 내 빵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군, 생각하며 좌절하고는 했지요. 헌데, 엄마네 집에 통으로 가져간 사워도우빵을 써는데, 세상에 빵으로 포를 떠도 될 만큼 쉽게 썰리지 뭐예요. 그래서 알았어요. 빵이 문제가 아니라 칼이 문제였다는 거. 여러분, 칼 안 갈아 보셨으면 일단 칼부터 가세요. 꼬옥이요. 칼갈이 강추!!!



7. 또 뭐가 있을까요? 함께 채워 봐요!!!

사워도우 호밀빵, 맨빵, 식빵.                                



+

사족: 베이킹 커뮤니티의 downside.

누군가 베이킹 카페에 이런 질문을 올린 적이 있어요.

"라미네이션하는 이유가 뭔가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죠.

"그거 쉽지 않아요. "안 쉽습니다. "잘못하면 글루텐 찢어지고 눌어붙습니다. "다 찢어집니다. "인스타 보고 따라 하다 버린 반죽이 수십 킬로입니다. "그분들은 수업하시는 분들인 듯요."

대답한 사람은 베이킹 카페에서 일명 잘나가는 사람이에요. 꾸준히 사워도우 빵 사진을 올리고, 사워도우 관련 질문 글에 열심히 답변을 하는 사람이지요. 사람들이 그의 빵을 보면 '역시!'라거나 '고수!'라거나 '금손!'이라고 칭찬해요. 그런 사람이 '라미네이션은 소위 전문가나 하는 것.'이라고 답을 했으니, 이제 이것은 진리 혹은 정답이 되었어요.

하여 질문자가 이렇게 대답하네요.

"아 그렇군요."

실은 그렇지 않아요. 라미네이션이라는 것을 동영상으로 처음 보고 따라 한 첫날부터 잘 되었어요. 이것은 무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리석 작업대나 스테인리스 작업대 등 거창한 환경도 필요치 않아요. 속초 월세집의 '세 놓는 집에 어울리는 제일 싼 싱크대'의 가짜 대리석 상판 위에서도, 지금 강릉집의 11년된, 그러니까 11년 세월 동안 수많은 세입자가 들락나락하며 사용한 역시나 가짜 대리석 위에서도 쭉쭉 잘만 늘어나요. 반죽의 글루텐은 라미네이션 이전 몇 단계에 걸쳐 이미 잘 형성되었고, 그러니 너덜너덜 찢어먹을 일도, 쩍쩍 바닥에 붙을 일도 없어요. 라미네이션을 시도했는데 만약 찢어졌다면, 그것은 라미네이션 이전 단계에서 글루텐이 덜 형성되었다는(반죽을 덜 만졌다는) 증거이지, 라미네이션 그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에요. 물론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고요. 하지만 '고수'처럼 보이는 카페 회원이 저렇게 단정 지었으니, 이제 라미네이션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고차원적인 것이 되어 버려요.

"와우, '@@님은 정말 모르시는 게 없어요!!"

만약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이런 칭찬이 올라오면, 이제 @@은 모르는 게 없는 사람, @@의 말만 믿으면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려요. 이것은 일종의 집단 최면이기도 하고 자기 최면이기도 해요. 모르는 거 투성이인데 누군가 내가 올린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 고맙고 의지하게 되겠지요. 그가 정말로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 기똥차게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목격했어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세상의 진리이자 진실이라고 믿는 인물들도 있었고요. "그럼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으라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믿을 사람은 본인 자신밖에 없어요. 해답은 결국 빵을 만드는 '나'에게 있다는 거!

오늘의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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