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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Jan 27. 2016

누군가의 성,펠레쉬_시나이아,루마니아.

서쪽이고 싶은 동쪽,발칸_[43]

남편이 왔다. 머쓱한 얼굴로 엄마에게 강아지를 맡겼을 것이고, 집안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웠을 것이다. 짐 가방을 꾸리며,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그 긴 비행 동안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느 길로 오냐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에서 부쿠레슈티까지 13시간이면 된다. 열세 시간. 터키에서는 다음 도시까지 야간 버스를 타고 보통 이 정도 간다.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해의 추석에는 외갓집이 있는 경산까지 이보다 네 시간이 더 걸렸다. 술에 진탕 취해 잠자리에 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여전히 어둑한 방안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침대에 들러붙어 스무 시간도 넘게 잤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던 경험도 있다. 열세 시간, 그 시간을 거슬러 오기 위해 남편은 꼬박 일 년을 일했고 일주일의 휴가를 얻었다. 남편이 느꼈을 이 시간과 이 공간과 이 상황의 차이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도착한 밤, 호스텔 발코니에 마주 앉아, 그동안의 사건 사고에 대해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편들을 두서도 조리도 앞뒤도 없이 정신없이 지껄여댄 나는,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배경과 소리와 냄새가 꿈과 현실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만 같아서, 팍삭 쉬어버린 내 목소리와 그런 목소리를 가진 나의 존재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남편의 도착과 함께 여행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발 냄새 퀴퀴한 도미토리도, 공동변소도, 무거운 배낭도, 안갯속 버스 시간도 이젠 안녕이었다. 아침을 먹은 우리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반질반질한 로비 한쪽에 자리한 렌터카 사무실에서 GPS와 함께 작은 차 한 대를 빌렸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뒷자리에 던져놓았고 군것질거리가 잔뜩 담긴 비닐봉지는 손이 잘 닿는 위치에 두었다. 조수석에 앉아 발뒤꿈치를 비벼 신발을 벗었고 의자의 등받이 각도를 조절해 눕듯이 자리를 잡았다. 차장 밖으로 혼자 걸었던 도시가 순식간에 지나가더니 이내 도시의 낯선 모습이 오랫동안 펼쳐졌다. 고개를 돌리면 비장한 표정의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어디가 더 좋았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두 나라 모두를 여행한 이들은 나의 유아적 질문에 하나같이 루마니아라고 대답했다. 턱이 빠지게 아름다운 불가리아를 여행하면서 나는 도대체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부쿠레슈티를 벗어나 루마니아를 동서로 가르는 거대한 카르파치아 산맥 안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카르파치아의 한 부분인 부체지 산맥의 계곡에 자리한 시나이아로 수도에서 150km 떨어진 곳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성으로 난 길을 걸으며 ‘잘 도착했다’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둘이 함께 서울에서 출발해 짧은 휴가를 보내러 그 멀리까지 간 줄로만 아시는 시어머니는 전화기 너머에서 한껏 목청을 높이셨다. "좋은 구경 많이 하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와"  



시나이아의 자랑은 단연 펠레쉬 성이다. 펠레쉬 성은 부쿠레슈티 국립대 도서관 건물 앞의 기마 동상의 주인공 카롤 1세의 여름 궁전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지어졌다. 공사를  지켜본 카롤 1세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이런 글을 남겼다. 


‘이탈리아인들은 석공이었고, 루마니아인들은 테라스를 만들었다. 집시들은 막노동을 했고, 알바니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채석장에서 일했으며, 독일인들과 헝가리인들이 목수였다. 터키인들은 벽돌을 구웠고, 엔지니어는 폴란드인, 체코인들은 돌에 조각을 새겼으며, 프랑스인들은 그림을 그렸고, 측량은 영국인들이 했다. 우리는 수많은 종류의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14개의 외국어와 여러 사투리와 다양한 톤으로 말하고 노래하고 욕하고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과 말과 달구지와 물소들이 만들어내는 그 활기찬 조화를.’

 


자고로 꿈은 크게 꾸라고 했는데 나는 어렸을 때 단 한 번도 동화 속에 등장하는 공주나 여왕이 되는 꿈을 꾼 적이 없었다. 툭하면 다른 사람으로 빙의하기 좋아하지만, 지금도 책이나 영화를 볼 때면 별 볼 일 없는 현실을 사는 주인공이 아닌 이상 주인공의 주변 인물에 더 마음이 닿는다. 이를테면 ‘초록 지붕의 빨간 머리 앤’에서는 앤이 아닌 다이애나였고, ‘위대한 게츠비’에서는 게츠비나 데이지가 아닌 닉이 나였다. 

 


거대한 건축물을 볼 때면 지어진 시대를 막론하고 그것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부당히 쓰였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것은 문물을 구경하는데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고정관념이자 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쓰잘머리 없는 꼰대 기질이지만 부에 의한 권력 집중과 신분의 분리가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마당에 이천 년 전의 것이든 불과 최근의 것이든 그것들을 올려보며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나의 변두리 신드롬에서 기인하는데,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성을 실제로 대면했을 때 떠올릴만한 어린 시절(공주나 여왕이 되는 상상으로 눈을 반짝이던)이 있었다면, 성의 화려한 내부를 감상하며, 드넓은 성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시녀들과 하인들을 괴롭히는 나의 모습을  꿈꾸듯 그려 보았을 어릴 적 그때를 회상하며 즐거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그림 같은 언덕 위에 '성'처럼 솟은 펠레쉬성은 그 자태가 워낙 출중하여 보는 내내 '아니 세상에 뭐 이런 데가 다 있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세상의 것이 아닌 그 무엇, 그 이물감은 성을 떠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펠레쉬성 옆에는 카롤 1세가 펠레쉬성을 싫어했던 그의 조카를 위해 지은 펠레쇼르성이 있었다. 펠레쉬성에 비하면 펠레쇼르성은 비로소 속세의 것이었다. 짙은 나무 빛의 소박한 성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성을 둘러싼 주변의 환경이었다. 수백 년은 됐음직한 나무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숲이 성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숲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을 쫓아 오솔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루마니아에 그렇게나 많다는 곰이 순식간에 수풀을 헤치고 달려 나오는 것을 아닐까 더럭 겁이 날 정도로 숲이 깊어서, 남편이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것의 반의반 만한 숲이 우리 동네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펠레쉬라는 이름은 성 주변을 흐르는 시냇물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 시냇물과 나란한 돌길을 따라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좌판을 펼쳐놓고 있었다.



1번 국도를 타고 브라쇼브를 향해 북쪽으로 달렸다. 제법 규모가 큰 몇 개의 휴양지들을 지나자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루마니아 시골 모습이 나타났다. 높은 산을 배경으로 만화 속 지붕을 얹은 조금은 썰렁한 촌락. 그것은 부체지산맥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쉬워 몇 번이나 차를 갓길에 세워야 했다.


그렇게 차에서 내렸더니, 낯선 이를 향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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