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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Nov 11. 2015

바비와 로드_비톨라,마케도니아.

서쪽이고 싶은 동쪽, 발칸_[24]

비톨라의 여름 기온은 보통 35도이고, 심할 때는 40도까지 오르는데 올해처럼 이렇게 비가 잦고 해가 드문 여름도 없었다며 바비와 로드는 축축한 밤공기 속으로 연신 담배 연기를 날려보냈다.


악세서리를 만들어 파는 바비는 자신의 직업이 '게이의 영역'이라며 겸손을 떨었고, 비톨라에 있는 버티컬과 블라인드의 80%를 자기 손으로 설치했다는 로드는 '우와, 돈 많이 벌었겠다!' 라는 나의 감탄에, 항상 집에만 있는 그의 사장이 회사 수익의 90%를 가져간다며 이제는 그런 것에는 초월한 듯한 웃음을 보였다. 비톨라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비톨라 밖에서 살아 본 적 없는 이 둘은 나와 동갑으로 둘 다 자식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들은 한 달에 평균적으로 150유로를 번다고 했다. 악세서리 장사를 하는 바비가 스스로 버는 수입도, 집에만 있는 사장으로부터 받는 로드의 월급도 150유로 언저리. 귀를 의삼한 나는 마케도니아의 법정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물었고 바비에게서 142유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머릿속으로 연거푸 계산기를 돌리다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유고연방 해체 이후 마케도니아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때에 비해 얼마나 살기 힘들어 졌는지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하며, 자본화 이전 그들 부모님 세대의 생활에 대해 들려 주었다. 그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집과 일할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월급은 보통 800유로 정도였으며 여름이면 가족들이 다함께 크로아티아나 그리스로 휴가를 갈 수 있었다고 했다. 바비는, 아무런 변화없이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몇 년 후에는 나라가 구제불능의 꼴이 될 거라고 분개했다.

바비에게는 미국에, 구체적으로 뉴욕에 가는 꿈이 있다고 했다. 왜 하필 미국이냐고 물으니 그곳에는 어떤 다양성이,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한 가능성이 있다고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꿈꾸는 듯한 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 가면 엽서 한 장 보내줘."

나와 동갑, 한 아이의 아빠, 한 아내의 남편인 그가 아직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와 울컥하고 말았다.

단짝 친구 바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옆에서 맞장구를 치고 한마디씩 거들던 로드는, 비톨라와 마케도니아를 떠나 미국에 가고 싶다는 바비의 말에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으레 그 초월한 듯한 웃음만을 지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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