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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Aug 01. 2016

엄마와 석박지.

아마도 제일 쉬운 김치.

엄마는 젊어서 고생이 많았다. 고생한 세월이 워낙 길어 '젊어서'라고 하면 마치 오래전 한때의 일 같아 적절치 않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그저 그 고생이 다 지난 옛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은가 보다.


몇 해 전, 엄마와 아빠는 반평생을 산 경기도 북부를 떠나 내 언니가 사는 경기도 남부로 이사했다. 아빠로 말하자면 노는 데는 누구 못지 않아 어디든 '갈 데'가 있는 사람으로, 노는 데 있어서는 하루 200km 거리를 왕복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아빠와 달리 '일'과 '놀이'를 병행하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고 그저 일만 한 엄마는 '놀 줄' 모르는 사람으로, 일을 그만두고 낯선 도시로 이사하며 전업으로 '손주 돌보미'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무엇이 엄마의 마음을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아빠의 사업이 구렁텅에 빠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식구 중 유일하게 종교를 갖게 된 엄마는 세례를 받은 후로 어찌 된 일인지 성당에 제대로 나가지 않았는데, 엄마가 믿는 혹은 한때 믿었던 신의 존재와 상관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우리 집의 가세는 회복하지 못했고 더 큰 고난이 엄마를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가 다시 성당에 가게 된 것은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하면서이다. 성당에 나감으로써 새 동네에 적응도 하고 이웃도 사귀어 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오랜 고생으로 매사가 귀찮고 만사가 시큰둥한 엄마가 웬일로 "그럴까?" 하더니 정말 그리하셨다. 성당에 다니게 되면서 엄마는 엄마 인생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에 속하게 되었다. 소모임에 참석하고 여럿이 모여 공부를 한다. 초겨울이면 성당의 김장을 담그고, 부활절이면 달걀을 삶는다.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양로원이 있고 그곳 무대에 올라 연극을 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친구도 많이 사귀어 곗돈을 모아 함께 여행을 다니는 무리가 생겼다.


밑반찬이 아쉽고 신 김치에 진력나, 우리 집에 놀러 온다는 언니 편에 받을까 싶어 주말을 이틀 앞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식구끼리 모임을 가지려면 엄마의 스케줄부터 확인해야 될 정도로 바빠진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1박 2일 주말 봉사를 앞두고 있었다. 엄마네도 다 시어 꼬부라진 김장김치뿐이라며, 엄마가 시간이 있으면 김치를 새로 담가 줄 텐데 그럴 시간이 없으니 밑반찬 두어 가지만 만들어 보내마 하셨다. 김치를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였지만 나는, 엄마의 말, '시간이 없어서'라는 그 말에 은근히 녹아 있는 엄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싫지 않았다. '놀 줄' 몰랐던 엄마가 이제 노느라 바쁜 것이다. 엄마 나이 일흔에.  


신 김치 마저도 바닥이 났다. 통을 비우며 엄마의 시원한 깍두기 생각이 간절했지만 노는 엄마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 인터넷을 검색하며 만들기 쉬워 보이는 김치를 찾았다. 그리고 이것이 그 결과물.

아름답지요?


석박지 혹은 충무김밥의 무김치 만들기.


1. 무를 잘라 하루 동안 건조 시킨다. 햇빛에 말리지 않아도 돼요. 실내에 두어도 OK.

2. 소금, 설탕, 식초를 같은 비율로 섞어 무를 2시간 동안 절인다. (무 800그램이었고 밥숟가락 하나씩 넣었어요.)

3. 절여진 무를 물에 한 번 헹구고 물기를 뺀다.

4. 고추가루로 무를 물들인다. 색은 각자 알아서.

5. 다진 마늘1, 다진 파1, 매실청2, 액젓1.

6.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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