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veganize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마릴린 Sep 20. 2017

아침을 위한 수고.

채식빵과 채식버터

한남동 시절까지 근 십여 년 동안 제대로 된 밥을 해 먹지 않았다. 회사를 다녔고, 살던 집들의 부엌은 좁거나, 낡거나, 더럽거나, 녹물이 나왔다. 신사동, 서현동, 이태원, 한남동. 남들은 멀리서 차 타고 먹으러 오는 동네에 살았으니 신용카드 한 장 들고 맨발에 쓰레빠를 꿰 신고 나가 적당히 사먹으면 그만이었다. 금호동으로 이사하며 많은 것이 변했다. 새집이었고 나는 백수, 금호동 맛집들은 죄다 보쌈, 족발이었다. 부엌일을 시작했다. 면행주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행주 삶는 법은 인터넷을 찾아 보고 배웠다. 병을 소독하는 법과 냄비를 깨끗이 닦는 법도 인터넷에서 배웠다. 빵을 만들기 시작했고 빵을 먹는데 필요한 쨈과 버터도 만들게 되었다. 몰랐는데 나는 부엌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치즈라고 대답할 것이다. 치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먹을거리. 그런 치즈를 끊은지 2년이 되어 간다. 아쉬운 마음에 채식치즈 만드는 법을 찾아 만들어 보았는데, 그것을 '치즈'라고 부른 놈을 잡아다 혼구멍을 내주고 싶은 맛이었다. 치즈가 없으니 밥도 빵도 샐러드도 덜 맛있다. 치즈가 없으니 세상이 전보다 덜 빛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아침빵을 먹을 때 치즈의 빈자리를 달래고자 버터를 만들게 되었다. 먹어 본 최고의 버터는 루마니아 북부 수체아바의 팬션에서 아침밥에 나온 버터이다. 그 다음으로 맛있게 먹은 버터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다른 버터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수체아바의 버터는 대단했다) 수체아바의 버터는 다른 버터와 비교 불가한 존재였다. 두부 한 모 크기의 버터를 그날 아침 둘이서 모조리 먹어버렸다. 얼마나 맛이 풍부하고 깊고 고소한지 보통명사 '버터'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았다. 롯데 홈버터도 버터이고 수체아바의 버터도 버터라면 이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남편과 나는 놀러갈 궁리를 할 때마다 루마니아 북부를 리스트에 올리는지라 언젠가 다시 먹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안녕하기를. 집에서 만든 채식버터는 감히 수체아바 버터의 근처에도 못 가지만, 롯데 홈버터나 서울우유 프레쉬버터에 비교하면 손색없다. 버터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든 재료를 넣고 윙 갈아 냉장고에서 굳히면 끝. 재료의 조합이 중요한데, 이런 저런 방법으로 꾸준히 만들어 본 결과 가장 잘 만들어지는 레시피 두 개를 소개한다.  


<보이나요 두부만한 아름다운 버터가. 버터가 유난히 하얀색이었다.>



1. 채식버터_두유


코코넛 오일 80g - 정제 오일을 써도 되고, 정제와 비정제를 섞어도 좋다.

올리브 오일 20g- 아보카도 오일, 포도씨 오일, 카놀라 오일, 현미 오일 등등 아무것으로나 대체 가능

두유 40g - 연세 무첨가 유기농 두유를 쓰고 있다. 당이 섞이지 않고 찐한 두유라면 아무거나 OK

애플 사이다 비네거 2.5g - 없으면 사과 식초 또는 보통 식초로도 대체 가능, 레몬즙을 넣어도 된다.

소금 1.5g - 선택 사항, 안 넣어도 된다

렉시틴 그내놀라 20g - 유기농 해바라기씨로 만든 렉시틴. 오플, 아이허브에 판다. 파우더를 사용해도 된다. 리퀴드를 사용할 경우 1Tbls


블랜더에 재료를 몽땅 넣고 2분 정도 간다. 마요네즈와 비슷한 점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서 굳힌다. 바로 먹을 것은 냉장 보관하고 천천히 먹을 것은 냉동 보관한다.


구글이나 유튜브에 소개된 이런 저런 방법으로 만들어 보았는데,

1. 잔탄검.은 필요없다.

2. 뉴트리셔널 이스트.는 넣지 않는 것이 더 맛있다.

3. 코코넛 향이 나는 버터를 위해 정제 오일과 비정제 오일을 섞는다면 60:20 비율로 해 보세요.

렉시틴 그래놀라를 넣고 만들면 색이 노랗다.


기억나나요? 애플 정책에 등장하는 '망할 놈의' 실리콘 머핀틀. 굉장히 유용해요.


얼렸다가 틀에서 빼내면 예쁘게 싹 벗겨진다. 옆에 초록색은 밑에서 설명하겠어요.


리퀴르 렉시틴을 사용하면 색이 뽀얗다.



2. 채식버터_물


물 120g에 소금 2g을 녹여 놓는다.

블랜더에 코코넛 오일 130g, 올리브 오일 80g, 리퀴르 렉시틴 15g을 넣고 돌리다가

위의 소금물을 넣고 1~2분 동안 윙윙.


두유와 식초 없이 물과 오일로 만든 버터.

 

깻잎버터. 버터를 만들 때 깻잎을 갈아 넣었다. 나는 깻잎을 정말로 좋아한다. 바질보다 깻잎.



3. 채식 스프레드들.


채식 레시피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는 콩, 캐슈넛, 두부 등이다. 형체를 만들어 주는 무언가. 캐슈넛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먹을 것도 없는 비싼 캐슈넛이기에 패쓰. 두부나 콩을 사용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 외국에는 없고 우리에게는 있는 재료가 생각났다. 바로 콩비지. 콩비지를 사용하면 두부의 물기를 쥐어짤 필요도 없고 병아리콩을 밤새 불리지 않아도 된다. 견과류의 양을 줄이고 콩비지를 넣는다. 잣,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이 몸에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많이 먹으면 살찐다. 곱게 갈려 있고 비린 맛 하나 없이 고소한 한살림 콩비지 추천. 자세한 비율은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는게 그때 그때 있는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적어 놓은게 없다. 부족하면 더 넣고 넘치면 덜어내면 된다. 아이디어를 보태는 차원에서 몇 가지 소개해요.

페스토 - 잣, 콩비지, 바질/깻잎, 소금, 올리브유, 마늘.


버터와 함께 있던 그 초록색. 완두콩 스프레드 - 완두콩, 설탕, 소금, 물 조금. 반은 그냥 먹고 반은 갈아서 스프레드로 만들었다. 빵에 올려 먹으면 아주 맛있다.


깻잎 스프레드 - 내가 기른 깻잎. 견과류 넣지 않고, 올리브유, 콩비지, 마늘, 소금 넣어 갈았다. 마늘은 빼도 좋다.


씨앗의 양을 늘리고 콩비지의 양을 줄이면 이렇게 된다. 한여름 깻잎 바질 작황(;;)이 좋지 않아 풀이 부족한 상태.


남편이 호무스를 싫어해서 다른 버젼으로 만들었다. 병아리콩, 꿀, 소금, 바질, 오레가노.


병아리콩, 꿀, 소금. 구수하다. 빵 위에 잔뜩 올려 먹는다.


날씨가 좋아서 짱아찌와 쨈을 만들었다. 보통 쨈을 만들 때 과일과 설탕의 양을 1:1로 잡는데 집에서 그럼 안돼요. 살 쪄요. 1:1 비율의 쨈은 슈퍼에 가면 많이 있다. 그냥 사 먹으면 된다. 집에서 만들 때는 기왕 공을 들이는 것이니 좋은 과일로 설탕을 확 줄여서 만든다. 손뜨개로 무언가를 뜰 때 고급 실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과일과 설탕의 비율은 10:1로 잡는다. 부글부글 끓으면 간을 보고 영 맛이 없다면 그때 조금씩 늘려도 늦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넣어도 5:1을 넘기지 않도록 해요 우리. 여하간, 자두쨈을 만들었다. 식구가 둘이라 한 가지 맛을 대량으로 만들면 같은 맛을 오래 먹어야 해서 재미없다.


쨈 하나로 세 가지 버젼 -

1. 쨈이 되기 전 과육을 건져 콩포트로 한 병.

2. 쨈 두 병.

3. 땅콩 버터 (가루로 된 것을 쓰고 있다)를 섞어 한 병.


오른쪽이 위의 3번이다. 왼쪽은 버터.


베트남에서 아침마다 베트남 커피를 마셨다. 찐하고 달고 시원하게 카페쑤어다. 하이퐁 빅씨에서 드리퍼 핀을 샀다. 그리고 순전히 이것 때문에


채식 연유 만듦. 두유:설탕=3:1.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2:1 비율이었는데 4:1로 해도 됐지 싶다. 충분히 달다. 두유, 설탕, 소금 한 꼬집을 냄비에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졸이다가 막판에 바닐라를 한두 방울 떨어트린다. 나는 너무 오래 졸여서 거의 밀크쨈이 되었는데 덜 졸여야 커피에 잘 녹는다. 하여간 여러분, 저 이런 것도 해 먹고 있어요. 맛있어요. 노니까 좋아요. 호호.



4. 빵 만들기.



1. 무반죽빵


밀가루 400g

물 320g

소금 4g

이스트 4g


물의 양을 조금씩 늘려 보았는데 320g이 최고치인 것 같다. 더 넣으면 반죽이 잘 부풀지 않아 빵 껍질이 두꺼워진다.


1. 볼에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술술 섞는다.

2. 1에 이스트를 넣고 술술 섞는다.

3. 물을 붓고 주걱으로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섞는다.


선택,

위의 사진은 쑥가루를 넣은 것이고

아래의 사진은 견과류(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마씨 등)를 60g 넣은 것이다.


4. 랲이나 면보를 덮고 두 배가 될 때까지 부풀린다. 사진이 다 부푼 거예요.


5. 볼에서 주걱으로 반죽을 돌돌돌 돌리듯이 접어 밀가루 뿌린 종이에 올리고 덧밀가루를 뿌린다.

6. 오븐을 켜고 최고 온도로 예열한다. 우리집 오븐의 최고 온도는 230도.

예열이 되는 동안 반죽은 그냥 실온에 두면 돼요. 저희집 오븐은 예열하는데 20분쯤 걸려요. 그러는 사이 반죽이 좀 커져 있지요?


7. 230도에 15분. 200~180도로 온도 낮춰서 10분~15분. 아름답지요?


쑥가루를 넣으면 색이 좀 칙칙하지만, 향은 끝내줘요.


이건 맨 빵.


설거지는 믹싱볼 하나, 주걱 하나.


견과류 넣은 것.


스테인레스통에 리넨을 깔고 담아 냉동고에 보관한다. 데울 때는 미리 꺼내 자연해동된 빵을 오븐 그릴 기능으로 12분. 갓 구운 빵처럼 맛있다.


못생겨도 걱정 말아요.


맛은 좋아요.


오븐이 작아서 한번에 많이 구울 수가 없어 4일에 한 번씩 굽습니다.



2. 무반죽빵 - 일명 디너롤.

1번의 빵에 비하면 좀 수고스럽지만, 똑같은 빵만 먹으면 재미없으니까 부들부들 빵이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보세요.


미지근한 물 190g

설탕 20g

이스트 4g

두유 50g

오일/버터 20g

밀가루 330g

소금 2g


1. 미지근한 물에 설탕과 이스트를 녹인다.

2. 두유와 오일을 섞어 1에 넣는다.

3. 1에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주걱으로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죽한다.

4. 볼을 랲이나 면보로 덮고 2배로 부풀린다.


이제부터 귀찮은 부분


5. 빵틀에 버터나 오일을 바른 다음 밀가루 뿌려 준비한다.

6. 손에 밀가루를 묻히고 반죽을 떼어내 모양을 만들어 빵틀에 앉힌다.

7. 빵틀을 랲이나 면보로 덮고 2차 발효. 40분쯤.

8. 2배로 부풀면 발효를 끝내고 반죽 표면에 두유나 오일/버터를 바른다.

9.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15~20분.

움하하. 아름답지요? 빵틀이 없어서 코펠세트에 있는 후라이팬을 사용했어요. 스테인레스 통삼중.


부들부들.


모양은 아무렇게나 하면 됩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나아지기 마련.


부들부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석박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