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veganize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마릴린 Oct 12. 2017

송편, 만두, 엄마

채식만두와 쑥찐빵.


"근데, 올해는 송편 안 하려고 하는데..."


남편과 나는 엄마의 송편을 정말로 좋아한다. 추석날 친정집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자마자 내가 하는 일이 송편을 찾아 부엌과 베란다로 가는 것이다. 저깄다! 소쿠리를 덮은 보자기를 싹 걷으면 흰 송편, 쑥을 넣은 초록색 송편, 단호박즙을 넣은 노란 송편, 자색 고구마를 넣은 보라색 송편이 반지르르 기름을 바르고 올망졸망 사이좋게 모여있다. 손도 안 씻고 한 개 집어 꿀떡. 엄마의 송편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우리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엄마의 송편을 먹게 된다면 우리 엄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두껍지 않은 말랑말랑한 떡살 안에 깨를 갈아 만든 달콤하고 고소한 떡소가 꽉꽉 차있다. 소를 그렇게 많이 넣어도 엄마의 송편은 터지는 법이 없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통화를 하는데, 그런 송편을 안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왜? 바빠?" 라고 물으니 

"그냥 귀찮아서." 라고 하셨다. 

"에엥. 해 주지..."


시댁에서 불편한 이틀을 보내고 친정에 갔다. 혹시나 하고 두리번 두리번 송편을 찾아보니, 옳거니! 저깄다! 보자기 싹! 송편 짠! 꿀떡! 귀찮아서 안 만들겠다고 하시더니 역시 우리 엄마다. 올해는 깨 소와 녹두 소 두 가지. 엄마는 명절이면 고기를 먹지 않는 우리 부부를 위해 두 가지 버젼의 요리를 준비하신다. 갈비찜이 있으면 해물찜이 있고, 고기만두가 있으면 채소만두가 있고, 고깃국물 떡국이 있으면 멸치국물 떡국도 있다. 올해는 갈비찜과 함께 꽃게탕이 끓고 있었다. 다함께 모여앉아 밥을 먹은 후, 아빠가 형부와 남편을 붙잡고 군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엄마를 도와 부엌 정리를 하는데 엄마가 그런다. 

"이젠 송편 안 할거야. 이게 안 펴져." 

그러면서 들어보이는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손가락이 구부러져 있다. 몇 해 전 겨울 빙판에서 찍 미끄러져 손목이 부러진 적이 있는데 그때 신경이 어찌 잘못 되었는지 후유증이 남았다. 손가락이 아프다거나 팔이 쑤신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가끔 하셨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던 것이다. 딸년.


엄마의 송편.


추석이 끝나고 남은 연휴에는 어디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고 집 앞 탄천을 산책하며 보냈다. 아침은 엄마의 송편으로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엄마가 싸 주신 더덕과 고사리와 도라지와 부침개들을 먹었다. 그것들을 먹는 내내, 연휴 내내, 엄마의 손가락이 생각났다. 

'다음 설날 만두 해 달라고 하지 말아야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늙었고, 나는 이제 엄마의 송편도 만두도 못 먹는다. 엄마의 김치도 못 먹는 날이 곧 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엄마도 떠날 것이다. 엄마, 송편, 만두, 김치. 엄마, 송편, 만두, 엄마, 송편, 만두, 만두, 만두, 만두.


그래서 만두를 만들었다.



*

엄청 쉽게 만드는 채식 만두.


1. 채소들을 대강 썰어,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단단한 순서로 볶는다. 다진 마늘을 넣고, 간장과 후추로 간을 한다.


채소는 아무거나 넣어도 상관없다. 키르키즈스탄에서는 감자와 배추가 들어 있었고, 러시아에서는 감자와 양배추가 들어 있었다. 여의도 중국집 신동양의 채식만두에는 감자와 버섯과 배추가 든 것 같았다. 엄마는 배추김치, 무말랭이, 당면, 두부, 숙주 등을 넣고 만드시는데,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채소를 몽땅 넣고 만들었다. 마침 장을 본 지 얼마 안 되어서 감자, 고구마, 양배추, 쥬키니, 새송이, 청경채, 방풍나물이 있었다. 두부는 단단한 두부가 있으면 넣고 없으면 넣지 않는 편이 좋다. 물 짜기 귀찮잖아요. 하여간 설명이 긴데, 그냥 '채소를 볶아요.'입니다.


2.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득.득.득. 끊어서 간다.


3. 만두소 완성.


한살림의 만두피는 서른 장이 들어있다.


4. 만두 완성. 위가 남편 것, 아래가 내 것.


통밥이 늘었다. 만두피와 만두소가 딱 맞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을 위한 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