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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May 05. 2018

캐슈, 콩 그리고 나.

채식을 위한 우리의 자세.

불현듯 피자가 먹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고충이 뒤따른다. 우선 채식 모짜렐라가 필요하다.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병아리콩을 하룻밤 불린다. 다음날 삶는다. 삶은 콩은 삶은 물과 함께 담아 하룻밤 냉장고에 둔다. 캐슈도 물에 불린다. 다음날 콩 삶은 물과 밤새 불린 캐슈로 모짜렐라를 만든다. 모짜렐라를 만들기 하루 전 도우 반죽을 시작한다. 피자 소스를 만드는 것은 다행히 당일로 가능하다. 피자가 먹고 싶은지 삼 일이 지나 피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삼 일이 지나서도 피자가 먹고 싶다면 다행이지만 대개 그렇지 않다. 언젠가 불현듯 피자가 먹고 싶은 그날을 위해 채식모짜렐라 정도는 미리미리 만들어 냉동고에 보관해 두어야 한다.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하는 내가 좋다. 나는 나에게 꽤나 야박한 편이지만 채식하는 나는 좋다. 채식을 함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자유롭다. 계란 값이 치솟아도 남의 일이고, 암에 걸린 돼지가 유통되어 식탁에 올라도 남의 일이다. 변변한 스테이크 집 하나 없다는 속초에 아무런 불만이 없고, 어떤 맛인지 알지 못하는 분짜가 그리워 있지도 않은 베트남 식당 타령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비가 적게 든다. 백수들이여 채식을 할지어다.


한식단에서 아쉬운 것은 거의 없다. 밥, 김치, 나물이면 충분하고 거기에 구운 두부 한 점 있으면 더 좋다. 추운 날 찌개나 국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문제없다. 아침엔 빵을, 점심과 저녁엔 밥을 먹는다. 속초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밖에 나가 노느라 점심도 밖에서 먹는 날이 많아졌다. 이것은 밖에서 밥을 사먹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밖에서 '집밥'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점심 도시락은 별것 없다. 있는 반찬에 밥을 싼다. 아니면 샌드위치. 집에서 먹는 샌드위치는 정말이지 최고다. 빵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며, 채소는 차갑고 신선하다. 패티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헌데 이걸 밖에 들고 나가 먹으면 빵은 눅눅하고 채소는 미지근하며 패티는 차갑다. 남들 샌드위치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가 집에서 만든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으면 저리 된다.


도시락통에 담기 전 아름다운 샌드위치. 요렇게 예쁜 아이를 싸서 들고 나가면 빵 껍질은 눅눅하고...가 되는 것이다. 여튼 이것은 내가 만든 치아바타, 코올슬로, 패티, 모짜렐라, 버터, 스프레드를 넣고 만들었다. 네, 정말 몽땅 다 제가 만들었어요.


포장의 문제일까요?

눅눅하거나 말거나, 이런 것을 보며 먹었다.

우리 앞에는 토왕성 폭포.

혹은 이런 곳에서 먹었다.

아무래도 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1. 치아바타.

밀가루 400g, 소금 4g, 설탕 10g, 이스트 1g, 물 300g, 올리브유 20g. 몽땅 섞어 한 덩어리가 되면 30분 간격으로 사방 늘여접기를 4번 정도 한다. 저녁 7시에 반죽을 하고 아침 7시에 알람을 맞춘다. 알람이 울리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반죽의 가스를 빼고는 70분을 더 잔다. 다시 알람이 울리면 오븐을 켠다. 오븐이 230도에 도달하는 시간 20분. 오븐 예열이 완료되면 반죽을 쏟아 적당한 크기로 뚝뚝 떼어 팬에 올리고 15분간 굽는다. 아침 9시에 갓 구운 빵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 아침 9시에 아침밥을 먹는 것은 백수만 가능하긴 하지만. 쫄깃쫄깃 엄청 맛있어요.



2. 버거 패티.

채식 버거 관련 각종 레시피를 한참 보다가 패티라는 것은 아무거나 되는대로 넣고 납작하게 만들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고는 더이상 레시피를 찾아 보지 않게 되었다. 버섯을 물기 없이 볶아 찬밥을 넣고 뭉쳐 구워도 맛있고, 병아리콩과 허브를 넣고 팔라펠을 납작하게 만들어도 좋다. 사진의 것은 삶은 병아리콩, 삶은 고구마, 데친 표고버섯, 찬밥, 향신료를 넣고 믹서에 득득득 갈아 뭉쳐 납작하게 만든 후 겉에 기름을 바르고 오븐에 구웠다. 모양은 빵에 맞게 만들면 된다. 식빵이라면 사각으로, 번이라면 동그랗게...


이렇게 구워 놓으면 아무때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오른쪽은 문제의 모짜렐라.



3. 모짜렐라.

밤새 불린 캐슈 1/4컵, 콩 삶은 물(aquafaba라고 불러요) 1컵을 넣고 간다. 전분 2T, 아가아가 파우더 2t, 레몬즙 1T, 뉴트리셔널이스트 1t, 소금 3/4t, 녹인 코코넛오일 6T을 넣고 블렌더에 웽 간다. 간 것을 냄비에 담고 중약불에 올려 천천히 저으며 풀(!)을 쑨다. 적당한 농도가 되면 틀에 넣고 굳힌다. 굳으면 원하는 모양으로 썰거나 갈거나 부셔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냉동고에 있으면 든든합니다.



4. 코올슬로 드레싱. - 아름다운 맛이예요. 만인이 함께 먹어야 하는 맛.

캐슈 1컵(혹은 병아리콩 1/4컵 + 캐슈 3/4컵), 물 1/4컵, 식초 30g, 소금 5g, 후추 약간, 엄지 손가락 크기의 말린 과일(망고, 대추야자, 대추, 체리, 건포도, 크랜베리 등등 아무거나)를 넣고 웽. 마요네즈보다 된 농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맛있어요. 꼭 만들어 보세요.


양배추와 당근만 넣으면 물이 나오지 않아 도시락용으로 좋고, 양파를 넣으면 물이 나오지만 시원하고 상큼하다. 저녁에 비벼 다음날 드세요. 하루 묵혀야 더 맛있어요.


5. 병아리콩 스프레드.

삶은 병아리콩은 껍질을 벗기고 통에 담아 냉동고에 보관한다. 필요한 만큼 냉장실에 내렸다 쓰면 된다. 껍질을 벗기는 것과 벗기지 않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크니 꼭 벗기는 것을 추천한다. 벗겨야 훨씬 크리미하다. 삶아 껍질 벗긴 병아리콩에 소금 한 꼬집, 메이플시럽이나 아가베 시럽 약간, 물, 트러플오일 아주 조금을 넣고 스프레드 농도로 갈면 끝. 끝내주게 맛있다. 트러플오일 대신 향이 진한 코코넛 오일을 넣어도 좋다. 아침밥상에 언제나 오른다. 헌데 사진이 없네요. 지금 있는 것 거의 다 먹어가니 곧 사진을 찍어 추가하겠어요.



집에서 놀지만 맨날 바쁜게 다 이런 것들 때문이다. 무언가 먹고 싶으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들고야 만다. 남편은 평생 무엇이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무언가 먹고 싶다. 먹고 싶은 것은 많은데 밖에서 팔지를 않으니(채식 이야기입니다) 직접 만드는 수 밖에. 어느날은 버터크림빵이 먹고 싶었다. 저녁 늦은 시간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딱히 방법이 없지만 이날은 환한 대낮에 이게 먹고 싶었다. 하여 이것은 무려 버터크림빵. 접시가 하나라 죄송합니다.



1. 무반죽 단빵.

미지근한 두유 190ml에 이스트 3g을 넣고 저어 10분간 가만히 둔다. 위에 오일 25g 넣고 섞어 2분간 둔다. 밀가루 220g, 설탕 28g 넣고 섞어 3배가 될 때까지 1차 발효를 시킨다. 반죽이 부풀면 밀가루 65g과 소금 3g을 넣고 한 덩어리로 만든 다음 20분 둔다. 성형 후 2차 발효를 시킨 다음 굽는다. 원하는 빵으로.

식빵틀에 넣고 구우면 식빵이 된다.



2. 채식버터크림.

채식버터로도 충분히 버터크림을 만들 수 있다. 두유로 만든 버터든 캐슈로 만든 버터든 모두 다 가능하다. 실온에 꺼내 놓은 버터에 슈가파우더(집에 있는 그라인더로 설탕을 갈면 돼요)와 소금 한 꼬집, 바닐라 에센스를 넣고 핸드블랜더로 열라게 크림을 만들어 주세요.



3. 채식버터 - 캐슈

캐슈가 비싸서 그동안은 그냥 먹는 것으로 만족하며 버터를 만들 때는 두유를 사용했는데, 남편 또한 백수가 되고 나니 인생 뭐 있어 캐슈 값을 아끼나 싶어 한꺼번에 몇 봉지씩 주문해 식품 창고에 쌓아 놓고 먹고 있다. 두유버터에서 한 단계 레벨 업한 맛으로 아침마다 이걸 먹고 있으면 오늘은 또 어디 가서 신나게 놀아볼까 하는 기대감 또한 상승한다. 문제는 지금 쓰고 있는 필립스 미니믹서인데 십 년 가까이 썼더니 영 시원치가 않아 버터를 만들 때마다 블링블링 바이타믹스가 갖고 싶다.


캐슈 50g과 뉴트리셔널이스트 2g(생략해도 된다)을 넣고 블렌더(그라인더)로 곱게 갈아 가루를 만든다. 거기에 물 50g, 올리브유 20g, 소금 2g, 아가베시럽(메이플시럽 혹은 생략) 2g, 애플사이다비네거 2g을 넣고 간 다음, 정제 코코넛오일 100g을 넣고 갈면 끝. 마요네즈의 농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릇에 넣고 냉동고에서 굳힌다.  



채식버터로 파이크러스트도 만들 수 있다. 이런저런 실패를 거듭한 끝에 완성한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밀가루 150g, 차가운 버터 75g, 설탕 15g, 소금 2g, 얼음물 34g을 푸드프로세서에서 득득득 갈아 한 덩어리로 뭉친 후 비닐에 담아 냉장고에 넣은 다음 한 두시간 후 사용한다.



내일부터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튼 주말에는 우리도 주말 기분을 살려 가끔 다른 아침을 먹는다. 그중 하나가 팬케익. 후라이팬에 한 장 한 장 굽는 것은 사실 좀 귀찮아서 오븐팬에 쏟아붓고 한꺼번에 왕창 구웠다가 조각으로 잘라 냉동고에 보관하면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다. 반죽은 오방떡(아시나요)보다는 붕어빵에 가깝지만 꽤나 맛있다. 한번 해 보세요.

두유 2컵(아참, 계량에 대한 이야기를 깜빡 했는데 컵의 기준은 미국컵이다)에 식초 2T, 바닐라 에센스 2t를 섞어 5~7분쯤 가만히 둔다. 채식용 버터밀크라고나 할까. 볼에 밀가루 2컵, 설탕 2T, 베이킹파우더 2T, 소금 1/2t를 넣고 섞은 후 위의 두유를 넣고 반죽을 만들어 5분간 그대로 둔다. 오븐 팬에 쏟아붓고 원하는 재료를 얹은 다음 200도에서 15분에서 20분 정도 구우면 완성. 맛 가기 일보 직전의 오렌지 하나와 초콜렛칩, 호두를 넣었다. 호두 많이 넣으면 맛있어요.

헌데 저렇게 구워 놓고 보니 손으로 들고 먹을 때(식어도 맛있다) 손에 자꾸 초콜렛이 묻어 다음에는 호두와 초콜렛칩을 반죽에 넣고 섞었다. 이 방법이 더 낫습니다. 위에 뿌린 것은 너무 달아 먹다 만 그레놀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하루 이틀 안에 먹을 거면 실온에 두어도 문제없다.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지영이 이런 말을 했다. "언니가 고르는 과자는 실패가 없어요." 이르쿠추크에서 아르샨으로 가는 길 간이휴게소에서 지영과 나는 각자 두 가지씩 과자를 골랐다. 지영의 과자는 둘 다 맛이 없었고 내 과자는 둘 다 맛이 좋았다. 내가 고른 과자는 언제나 맛이 좋았다. 어렸을 때 많이 먹고 자란 덕.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 과자 하는 제가 추천하는 과자(어쩐지 쿠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이니 꼭 만들어 보시란 것이다. 오븐 필요없고 불도 필요없다.

미숫가루 100g, 기름 20g(포도씨유 등 향이 적은 것을 써도 좋고, 향이 진한 코코넛오일을 넣어도 좋다), 두유 60g, 설탕 20g, 소금 조금, 호두, 초콜렛칩 등등. 재료를 몽땅 섞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면 된다. 오븐에 구워도 되지만 굽지 않으면 더 맛있다. 냉동실에서 바로 꺼내 먹을 수도 있고(어금니로 깨물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앞니로 깨무세요) 냉장실에서도 물론이다. 상온에 있던 것을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을 것입니다. 잔뜩 만들어 두었다가 저녁 밥상을 물리고 각자 두 개씩 먹으면 식사 마무리로 아주 좋습니다.



덧.

냉장고에 마땅한 것이 없을 때 도시락 아이디어 하나. 당근을 곱게 다져 기름 넉넉히 두른 팬에 단맛이 나오도록 볶는다. 다 볶아졌으면 불을 끄고 밥을 넣고 섞는다. 소금 후추로 가볍게 간을 하고 통깨를 뿌려도 좋다. 이렇게만 해도 맛이 맛있서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맛있는 도시락이 된다. 반찬은 한 달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먹고 있는 코올슬로, 오이 밑에 쌈장, 백김치, 마늘, 마늘쫑, 고추 짱아찌. 참, 도시락통 샀다. 도시락통의 이름은 '직장인 도시락통'. 진짜다. 깔깔깔.



그리고 오늘의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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