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사람들: 꽁 이야기.
무수한 증언과 갖가지 낭설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첫 여행은 완벽에 가까웠다. 바가지와 여행사의 횡포, 투어 상품의 시시함에 대해 말하자면 물론 그것들은 진실로 밝혀졌지만, 이에 대해서는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분노가 없었다. 베트남은 그 길쭉한 땅 안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추위와 더위, 매연과 청풍, 소란과 고요, 일출과 일몰, 사막과 바다, 싸구려 여인숙과 부티끄 호텔... 극과 극을 오갔고 정신없이 즐거웠다. 배낭 여행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고작 다섯 시간을 가는데 침대에 고이 뉘여 데려다 주는 다른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어디보다 싸고 그 어디 못지 않게 볼 것 많으며 그 어디만큼 맛있다.
두번째 베트남 여행의 첫 목적지는 사파였다. 섬세한 수가 놓인 윤기 흐르는 검은 옷을 입고, 찰진 검은 머리에 무심한듯 빗을 꽂은 채, 자랑스런 금니를 뽑내며 자글자글 커랗게 웃는 흐몽족 여인들이 가득한 사파. 사파야말로 베트남 여행의 하이라이트여야 했다.
하노이를 떠난 버스는 몇 시간 동안 논밭 사이를 달리고서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등성을 돌돌 깎아 만든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기에 버스는 꽤나 불안해 보였지만 한 굽이 한 굽이 돌 때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목가적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가파른 비탈에 조각 조각 자리한 계단식 논과 그 사이사이에서 연기를 올리는 작은 집들, 마치 일부러 가져다 놓은 듯 우두커니 서 있는 커다란 소와 머리에 농을 쓴 농부까지. 그 조화에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오른 버스는 산허리에 걸린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공기는 급격히 차가워졌고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가슴은 더 빨리 뛰었다. 이제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햇살이 쏟아지는 천공의 섬 라퓨타, 사파가 나타날 터였다. 도시의 등장은 정말로 그러했다. 낡은 버스가 사파에 닿았을 때 도시에는 말 그대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그 햇빛 찬란한 도시를 검은 옷의 작은 여인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차곡차곡 쌓인 나의 기대는, 버스가 하차장 격인 자그마한 공터에 다다랐을 때 단번에 무너졌다. 그 작은 여인들이, 진작부터 우리를 기다렸을 그 작은 여인들이 버스를 향해 사방에서 몰려든 것이다. 일찍부터 준비해 좋은 자리를 잡은 여인들은 버스에 바싹 붙어 버스와 함께 달렸고, 저 멀리서 뒤늦게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달려오는 여인들의 등에 업힌 아기들의 머리통이 텅텅텅 함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드디어 버스가 공터에 들어서자 버스는 이내 그녀들에게 포위당했다. 미처 버스가 서기도 전이었으니 그 소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늘상 겪는 일인 듯 운전기사는 반복적으로 클락션을 울려댔고, 버스 밖 그녀들은 출입문 앞을 사수하려 서로 자리 싸움을 벌였다. 족히 오십 명은 될 듯 싶었고, 너댓 살로 보이는 아이에서부터 환갑은 훌쩍 넘은 듯한 이까지 연령대 또한 다양했다. 버스에 빼곡히 앉아 있던 관광객들은 그들을 내려다보다 각자의 언어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 기가 막힌 상황을 더 기가 막히게 만든 것은 단연 여인들의 복장이었는데, 여름철 방역차의 꽁무니를 신나게 뛰쫓는 사람이 러닝셔츠 차림의 어린 아이들이 아니라 점잖게 갓과 도포로 의관정제한 어르신들이라고 상상해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출입문을 열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은 안전한 버스에서 나가 그녀들과 대면할 전의를 가다듬기에 충분치 못했다. 서양인들은 그들을 에워싼, 그들 키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여인들을 애써 무시하며 짐칸에서 서로의 짐을 끌어내기에 바빴고, 그때도 역시나 혼자였던 나는 얼이 쏙 빠질 정도로 한꺼번에 쏟아내는 질문ㅡ"hey hey, where you from?", "what's your name?", "you need some?", "you need guide?", "hey hey, what's your name?", "where you from?"ㅡ에 흠씬 두들겨 맞고는 마치 한꺼번에 달려든 새 떼에 머리카락이 잡아 뜯기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어떻게 해서든 빨리 나의 배낭을 찾아 그곳을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꽁'은 작은 여인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작았다. 으스러질 듯 가냘픈 몸통, 터실터실한 얼굴을 가득 메운 주근깨, 가늘게 찢어진 눈, 그 끝에 매달린 옅은 주름.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흐릿한 인상의 그녀의 등에는 어린 아이가 업혀 있었는데 그녀의 옷이나 아이의 옷이나 더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내가 언제 그녀만 했던가 생각해 보면 아마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일 것이다. 하여간 그녀는 정말로 작았다. 그럼에도 꽁은 그 누구에도 밀리지 않았다. 그 난장판에서 다른 이가 밀치면 그녀는 더 힘껏 밀쳐냈다. 그리고 나를 차지했다. 그 경쟁을 뚫고 꽁이 나를 독점하게 된 것이다.
꼬리에 꽁이 붙었다. 그녀는 종종 걸음으로 따라오며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니?"
"그러는 너는 어디서 왔어?"
들었는데 까먹은 마을 이름을 댔다.
"거긴 어디에 있는데?"
"여기서 30km."
"그렇게 멀리? 그럼 집에는 어떻게 가?"
일주일에 한 번 간다고 했다.
"그럼 잠은 어디서 자고?"
"길에서."
"아이랑 함께?"
"응."
등에 있는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다.
"8개월. 집에 두 살 짜리가 하나 더 있어."
"걔는 누가 보는데?"
"남편이."
버스 시간표를 물으러 여행사에 들어갔다 나오니 그녀가 문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호텔 저 호텔 보이는 대로 들어가 빈방이 있는지 묻고 나오면 역시나 꽁이 문간에 서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 자기만한 아이를 등에 업고 몸을 흔들어 아이를 달래면서 말이다. 그녀가 나에게 바란 것은 두 가지였다. 가방을 하나 사라는 것, 자기와 함께 트래킹을 가자는 것.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오늘 당장 잘 곳이 없다니까!"
무심결에 뱉어 놓고 보니 길에서 잔다는 그녀였다. 얼굴이 달아 올라 급하게 얼버무렸다.
"하여간 지금 말고, 나중에, 나중에."
간신히 구한 호텔에 짐을 풀고 내려오니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을 구했으니 내가 말한 그 '나중'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가방이라도 하나 팔아 주고 그녀를 보내려 했지만 주렁주렁 그녀의 목에 걸린 주머니들은 하나같이 더럽고 헤진 것이었다. 뭐 하나 돈을 주고 살 만한 것이 없었다. 이때 솔직히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또 다시 얼버무렸다.
"미안한데 나는 가방이 필요가 없어."
내가 남긴 여지 탓인지 그녀는 포기하기 않았다. 호텔 문을 나서면 그녀가 있었고, 호텔 앞에서 만나지 못하면 어느 거리를 걷다가도 그녀가 나타났다. 아침이든 낮이든 밤이든 언제나 그녀는 내 주위에 있었다. 하지만 꽁은 결국 그녀가 원하는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 가방은 교회 앞에서 지영이를 기다리고 있을 때 집요하게 말을 붙인 다른 여인에게 샀고ㅡ그녀는 계속해서. "my baby hungry."라고 말했다.ㅡ, 트래킹은 다른 여행자로부터 사파와 가까운 마을에 사는 다른 흐몽족 여인을 소개받았다. 어찌 알았는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꽁이 호텔 앞에서 기다렸다 나를 보고 말했다.
"You are liar! You are liar! I never happy!"
네버 해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네버 해피. 꽁의 이 말은 베트남을 여행하는 내내 나를 따라다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