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사람들: 젊은 미용사.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해 시엠립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묵었던 호텔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펍스트릿에서 꽤 떨어진 시바타 로드 초입에 있었다. 붙박이로 자리를 차지한 몇몇 뚝뚝 기사들 외에 너댓 곳의 노점만이 시원찮은 음료수나 봉지라면을 끓여 파는, 관광지답지 않게 꽤나 한산한 곳이었다. 하지만 매일 저녁 해 질 무렵이면 그 거리에 독보적인 존재가 등장했다. 태국식 숯불구이와 쏨땀으로 무장한 구루마가 빛나는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주인 여자가 수레와 연결된 오토바이의 의자에 앉아 쉬지 않고 쏨땀을 만드는 동안, 일꾼으로 보이는 다른 두 명의 여자들은 수레 옆 불판에서 꼬치에 꿴 고기를 구워댔다. 손님은 대개 현지인이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 가는 것처럼 보였다. 매일 저녁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작은 오토바이 수레를 이중 삼중으로 둘러싼 사람들과 그들 사이로 올라오는 뽀얗고 달콤한 연기에 마음이 빼앗긴 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뚫고 주문할 자신이 없어 며칠 저녁을 망설이다 결국엔 참지 못하고 드디어 어느 저녁 그들 뒤에 서서 기웃거리게 되었다. 말 없이 주인 여자의 절구질만 구경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은 이내 나에게로 쏠렸지만, 온 동네 돈을 다 긁고 있던 주인장은 한눈 팔 시간은 고사하고 목을 축일 시간 조차 없어 보였다. 나는 손님들을 쭉 훑어본 다음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하나를 찾아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순전히 경험에서 나왔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동남아시아에서 살색이 밝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영어를 할 확률이 높았다. 반면, 살색이 진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험한 일에 종사하는 듯 보였다. 이는 내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의문 중 하나이다.) 그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였고, 키가 컸고 살집이 좋았다. 그리고 피부색이 유난히 허옜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거야?"
"응."
"얼마나 기다렸어?"
"글쎄, 한참 됐어."
"있잖아, 나 대신 주문 좀 해 줄 수 있어?"
"어머, 너 저게 뭔줄이나 알아?"
"응."
"진짜? 엄청 매울텐데, 진짜?"
"응, 좋아하는 거야."
맨 바깥 둘레에 서 있던 그는 즐거운 얼굴로 주인 여자의 등에다 대고 캄보디아말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에 주인 여자가 드디어 뒤를 돌아 나를 보았고, 손님들의 웃음 소리가 이어졌다. 나의 부탁을 받은 그는 주인 여자의 등과 나의 얼굴을 향해 번갈아 고개를 돌리며, 게를 넣을 것인지, 고추는 몇 개 넣을 것인지, 밥은 몇 봉지가 필요한지를 묻고 전했다. 그동안 관중들의 시선은 핑퐁처럼 주인 여자와 나 사이를 오갔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라고 내가 물었을 때 그는 또 다시 주인 여자의 등에 소리쳤다. 그녀는 절구질을 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캄보디아말로 이야기했다. 짐작컨대 손님이 이렇게 많으니 많이 기다려야 할 거라는 것 같았다.
"짜아.(네에.)"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관중들이 다시 한번 커다랗게 웃었다.
"아마 삼십 분은 넘게 기다려야 할 거야. 너는 내 바로 다음 순서니까 알고 있으라고."
그는 미용사라고 했다. 뒷골목의 미용실에서 하루 종일 서양 남자들의 머리를 잘랐다는 그에게 머리를 자르는데 얼마인지 물으니 3달라라고 대답했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은 다음이라 공기는 더없이 축축했다. 그 밀도 높은 공기 속에서 우리 모두는 세 여자의 바쁜 동작을 무슨 의식이나 되는 것처럼 지켜보았다. 딱히 다른 할일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근데 한국에는 파파야 없지?"
그가 물었다. 응? 나는 그에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한국사람인거 어떻게 알았어?"
그가 말했다.
"머리 보고."
"내 머리 모양을 보고?"
"응. 한국이나 태국의 헤어 스타일을 보고 틈틈히 공부하거든."
'아...'
고수는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달콤한 연기를 하늘로 올리는 저 수레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