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의 여인들
"아이구, 말도 마. 경치는 정말 끝내주는데 가는 길이 험해서 경치고 나발이고 구경할 정신도 없더라구. 게다가 우릴 안내했던 흐몽족 여편네 걸음걸이가 어찌나 빠르고 날쌘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어. 내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그녀가 내 배낭을 대신 메주기까지 했다니까. 그런데 말야, 우끼는게 뭔지 알아? 그녀가 세상에 9개월 만삭 임산부였다는 거야!"
사파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진 도시 '박하'에서 일요일마다 서는 시장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섰다. 알싸한 냄새를 풍기며 짙은 안개가 도시 전체에 내려앉아 있었다. 지난밤 거리를 가득 메웠던 흐몽족 여인들은 거리를 말끔히 비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들이 목청껏 관광객을 불러 세우는 소리, 콧물이 허옇게 말라붙은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리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우리 뒤를 졸졸 따르던 어린 여자아이들의 슬리퍼 끄는 소리, 그런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던 오토바이 소리, 사방팔방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기계 소리, 이 모두가 사라진 거리는 어색하게 고요하고 불안하게 평화로웠다. 운동장을 에둘러 교회를 향해 걸었다. 모두가 잠든 이 도시에서 우리 둘 만이 깨어 있다고, 그러니 오늘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회 옆 버스정류장이 가까워지자 그것은 착각이었다. 버스정류장은 이미 분주했다. 다 썩어빠진 버스는 시원찮은 엔진 소리를 내며 푸른 매연을 힘겹게 뿜어내고 있었고, 뒷통수가 납짝하게 눌린 중년의 남자들은 땅바닥에 내려놓은 커다란 보따리 옆에 쭈구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 댔다. 눈썹을 가늘게 민 붉은 자오족 여인들은 정류장 앞 담벼락에 옹기종기 모여 좌판을 펼쳐 놓았고, 그녀들 옆에서 까치집 머리를 한 너댓 살 여자아이들이 하릴없이 몸을 베베 꼬거나 먹을 것을 쥔 주먹을 입으로 가져가며 멍한 눈빛으로 우리를 쫓았다.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서양인 여행자 하나 뿐이었지만 좋은 자리를 맡으려고 주민들이 의자에 내려놓은 짐들 때문에 나란히 앉아 갈 빈자리를 찾아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시간이 되자 승객들이 우르르 제자리를 잡았고, 만족스러울만큼 승객과 짐을 실은 버스는 빙글빙글 돌아 산을 내려갔다. 한창 산을 내려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아침 먹은 것을 게워 내는 소리가 들렸다. 한 시간 후 우리는 라오까이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박하행 버스를 찾아 배낭을 던져 놓았다. 버스는 말만 버스이지 실은 봉고차였는데, 최상석 그러니까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수석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자가 맡고 있었다. 사파에서 함께 버스를 탔던 그 서양인 여행자였다. 버스의 승객이 모이길 기다리며 우리는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다. 독일에서 왔다고 했고 열 여덟 살이라고 했다. 뭐? 그녀의 나이를 듣고 그 숫자를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재차 물었다. 뭐? 열 여덟 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혼자 배낭여행을 왔다는 아이는 흐몽족 여인의 집에서 닷새를 보내고 그 집에서 나와 곧장 버스를 탄 것이라고 했다. 방금 샤워를 한 듯 싱그러운 아이는 갓 태어난 듯 말간 얼굴과 투명한 눈동자를 하고서 지난 오 일 동안 그곳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지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어. 아줌마가 흐몽족 전통 의상을 입게 해 주셨는데 그걸 입고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어."
"치 아줌마의 아저씨는 나를 위해서 아침밥으로 팬케이크을 만들어 주셨어. 귀엽지 않아? 팬케이크라니!!"
"아줌마한테 바느질도 배우고 매듭 묶는 법도 배웠는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
지영과 나는 다음날 흐몽족 마을로 트래킹을 갈 생각이었다. 트래킹을 안내할 가이드야 길바닥에 말 그대로 널려 있으니, 박하의 일요 시장을 구경한 뒤 사파에 돌아가 알아 볼 작정이었다. 흐몽족 마을에서 하루 이틀 묵는 '뜻 깊은' 경험에 대해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기에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치 아줌마'에 대해 물어보았다. 돈은 얼마나 냈는지, 집은 어떤지, 잠자리는 어땠는지, 그녀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는지. 아이는 자신 역시도 다른 여행자로부터 소개를 받았다며 여행자들 사이에서 치 아줌마는 꽤 유명한 것 같다고 했다.
"전통가옥이고, 나에게 이층 전체를 내주셨어. 아줌마네 식구는 일층에서 지냈고. 돈은 밥 세 끼 모두 포함해서 하루에 10불. 밥이 아주 맛있었어."
그러면서 기쁜 얼굴로 자신의 다이어리를 펼쳐 보였다.
치 아줌마 123-456-7890 ♥♥♥
동글동글 멋을 부린 글씨가 알록알록 여러 색으로 쓰여 있었다. 뿅뿅뿅 하트까지 달고서.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저런 식으로 적어 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 보았다. 없다. 전화번화를 받아 적을 일도 잘 없지만 있다 해도 신용카드 배달 부서의 번호라던가 관공서의 직통 번호 정도이다. 그런 번호들을 받아 적을 때면 책상에 굴러 다니는 어떤 종이든 문제없다. 아이가 쓴 치 아줌마의 전화번호를 보고 치의 집에서 며칠 묵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박하 시장을 구경하고 사파에 돌아와 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십 분쯤 뒤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로 치가 왔다. 사파의 여인들은 볼일이 있어도 호텔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트래킹을 안내하기로 한 손님과 손님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도 그들은 호텔 안으로 들어가 누구 좀 불러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약속 시간 한참 전부터 호텔 앞에 나타나 서성일 뿐이다. 길거리 세계와 호텔 세계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기념품가게, 식당, 하다못해 구멍가게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만약 사파의 거리를 걷다가 정신없이 말을 걸어오는 그녀들 때문에 성가신 기분을 넘어 짜증이 난다면 문이 달린 아무 건물로나 들어가면 될 것이다. 사파의 건물들은 흐몽족 여인들에게는 금단의 영역처럼 보였다. 그녀들은 사파 어디에든 있지만 멀쩡한 지붕과 문이 있는 곳에는 없다. 사파에서 식당에 앉아 밥을 사 먹는 소수민족 여인을 본 적이 있던가? 없다. 그녀들은 길에서 먹는다. 그녀들의 아기들도 길에서 애미의 젖을 빤다. 치는 호텔 유리문 너머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저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서서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손짓을 해 댔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로 그녀를 안내하려 하자 치는 쭈삣거리며 우리를 밖으로 잡아 끌었다. 그녀의 나이는 종잡을 수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사십 대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환갑을 훌쩍 넘긴 것도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모양인지 그녀의 머리에는 분홍색 헬멧이 쓰여 있었다. 이른 아침 남자들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실려 '출근'하는 여인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중 헬멧을 쓴 여인들을 본 기억이 없었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하더니 치는 형편이 넉넉한 편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그녀의 분홍 헬멧은 검은색 전통 의상과 꽤 잘 어울렸다. 우리는 다음날 교회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교회 앞 계단은 언제나 붐비는 곳이다. 비슷한 체구에 똑같은 의상을 입은 여자들 사이에서 지난밤 침침한 조명 아래에서 본 치를 알아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헌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치를 알아본 것은 지영과 내가 아닌 우리 뒤에 서 있던 키가 훤칠한 네 명의 서양인들이었다. 알고 보니 치는 우리 말고도 손님이 더 있었던 것이다. 단체로 네 명이나 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이중계약이라고나 할까? 하루 일거리를 찾아 몇날 며칠 거리를 걸으며 손님을 찾아 헤매는 흐몽족 여인들이 수백 명은 될 듯한 사파였으니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는 네 명의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내며 치에게 화를 냈기 때문에 우리까지 거들 필요가 없었다. 치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어쩐지 정말로 미안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동서양에서 온 여행자들이 위-아-더-월드 친구가 되어 즐거운 트래킹을 시작하기를? 나쁘지 않은 걸. 하지만 서양인들이 그 긴 다리를 꼬고 서서 팔짱을 낀 채 못마땅한 얼굴로 허공을 째려 보고 있었기 때문에 치는 사태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인들은 치와 함께 간다. 우리는 치의 큰 딸과 간다. 큰 딸은 지금 집에 있고 십오 분이면 도착한다. 서양인들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발치에 있던 가방을 등에 짊어지었다. 알았다는 뜻이렸다. 남겨진 지영과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치의 큰 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걔들 진짜 까칠하다, 그치?
"그러게, 그런 건 원래 우리 역할인데."
"참나. 시작이 뭐 이래."
치의 큰딸 '조'는 40분쯤 뒤에 나타나 곧장 우리를 알아보았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아주 예뻤다.
헌데 어쩐 일인지 잘 웃지 않았다. 임신 9개월.
짧지만 기절할 만큼 힘든 길을 오르자 작은 녹차밭이 나왔다.
녹차 아줌마가 말했다.
"한국 사람은 좋아. 미국 사람은 나빠. 갸들은 코가 이렇게 이렇게 크잖아. 봐봐, 네 코랑 내 코랑, 자고로 코는 이래야 돼. 하여간 코 큰 놈들은 다 나빠."
내가 시작부터 뒤쳐지자 조가 나의 배낭을 벗겨갔다.
조는 이런 풍경에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당연한가?
드럽게 힘들어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보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기억이 긴가민가 했을 것이다.
만삭 임산부에게 배낭을 맡긴 것이 마음이 불편해서 이제 살만하니 돌려 달라고 했다. 조는 배낭이 하나도 무겁지 않다며 돌려주지 않았다. 배낭이 안 무거울 수가 있나. 도대체 이 길이 뭐가 힘들다고, 내가 네 발로 기고 있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멍멍이.
나의 문제는 질 낮은 체력이었고, 조의 문제는 종아리의 토시였다. 사실 이 '토시 이슈'는 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흐몽족 여인들 전체의 문제인 듯 보였다. 흐몽족 전통 의상은 벨벳처럼 매끄럽고 윤기 있는 천으로 되어 있는데 그 매끄러운 천으로 된 토시는 시도때도 없이 줄줄 흘려내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묶여야 했다. 토시라고해서 고무줄이 양쪽에 달려 다리에 끼는 형태가 아니라, 사각의 천으로 종아리를 둘둘 감싼 다음 역시나 매끄러운 검은 끈으로 칭칭 묶는 것이다. 헌데 이것을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나 뿐인 듯 하다. 그것이 그들 역사의 '문제'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나은 방법을 찾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에게는 가던 길을 멈추고 흘러내리는 토시를 한 시간에 두 세번씩 다시 동여매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조의 고마운 토시 덕분에 나는 숨이 넘어갈 뻔 할 위기를 매번 모면했는데 오르막 한 번 길게 오르고 나면 그녀의 토시가 어김없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아름답지요.
망아지에게 말을 거는 나를 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무엇이 생기려고.
한 남자가 공사장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보이나요, 저 아래 밭일 하는 사람들이.
지영이가 그러는데 이날 우리는 산을 두 개 넘었다고 한다.
소와
염소.
전망 좋은 집.
아름답지요.
거의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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