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똑같은 여행은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막상 지도를 앞에 두고 여행 계획을 짤 때면 그 ‘남들 다 가는 여행지’를 넣을까 말까 고민하기 마련이다. 대세를 따르자니 개성 없는 여행이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또 안 가면 왠지 후회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이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엔 고유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자석 같은 매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그곳을 다녀온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런던 시장 3부작의 마지막은 ‘사람'들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아마 런던 여행 책을 펴면 이들의 이름이 한 개 이상 소개되어 있을 곳이자, 이제껏 우리가 다녀온 시장들보다 규모도 월등하고 상인과 손님도 훨씬 많은, 그런 유명한 시장들 말이다.
하지만 흔하디 흔한 장소라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생각지 못했던 즐거움이 시장통을 꽉꽉 채운 사람들 수만큼 있을지도 모르니까. 백문이 불여일견! 망설이지 말고 어서 구경꾼들 틈에 합류해 보자.
개장 시간 :
금,토 11:00-18:00, 일 10:00-17:00 (빈티지 업마켓)
일 11:00-18:00(선데이 업마켓)
지하철역 :
알드게이트 이스트역
(Circle, District, Hammersmith & City 선)
어디를 가든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런던이지만, 관광객보다 주민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몇 안 되는 장소가 있다. 바로 '브릭 레인 시장'이 그 주인공이다. 옛날에 양조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이 시장은 특히 멋을 아는 런던 젊은이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다.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빈티지 의상들로 가득한 빈티지 업마켓이 열린다. 런던 사람들의 각별한 패션 사랑이 느껴지는 장터로, 매대마다 유행을 몇 바퀴 돌고 돈 듯한 특이한 의상들과 손때 묻은 액세서리 등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지나치기 힘든 물건들로 가득하다.
선데이 업마켓이라 불리는 시장은 이름 그대로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200개가 넘는 매대가 입점해 있는 이곳에는 빈티지 제품과 핸드메이드 제품이 많은데, 보통 디자이너들이 직접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파는 경우가 많다.
쇼핑을 하다 지치면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잠시 숨을 고르도록 하자. 시장에는 유기농 음식부터 다양한 국적의 음식들이 판매 중이다.
또 근처에는 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베이글 가게 ‘베이글 베이크’가 있다. 비록 긴 줄을 견뎌야 하긴 하지만, 바쁜 현지인들마저 기다림을 마다치 않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만약 일요일에 너무 일찍 길을 나섰다면, 브릭 레인 바로 옆의 콜롬비아 로드 꽃시장에 잠시 들러보자.
유서 깊은 화훼시장인 이곳 또한 일요일에만 장이 열리니 두 마리 토끼, 아니 두 시장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또한, 동선 절약을 위해 브릭 레인 시장부터 올드 스피탈필즈 시장을 연결해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런던 외곽의 쇼디치 지역은 한때 공장지대와 빈민촌이 들어서 있던 곳으로, 영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살고 싶지 않은 곳 1위’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노상에 범죄가 만연해 있는 ‘무서운 동네’였다.
1990년대 들어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게 되면서 비어버린 건물과 창고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2002년에는 낙후 지역에 대한 환경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현재의 트렌디한 모습으로 180도 변신하게 되었다.
지하철 혹스턴 역, 쇼디치 하이 스트리트 역, 그리고 올드 스트리트 역 사이 삼각형 모양의 지역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 런더너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삼각 지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혹스턴 스퀘어를 중심으로 세련된 카페와 갤러리, 바가 들어서 있어, 낮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밤에는 불같은 주말을 보내려는 이들이 거리를 메운다.
쇼디치는 런던의 그래피티 아트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 일대를 걷다 보면 건물 벽에 형형색색으로 그려진 그림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개성 있는 그림들로 거리를 특색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래피티를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공중 시설 또는 사유 재산에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쇼디치는 동네의 특성 상 예술적인 면을 조금 더 쳐주는 듯하지만, 건물주가 요청하거나 사회 질서에 반하는 내용의 그림은 시청에서 지운다고 한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도 쇼디치 지역에서 작품활동을 했지만, 현재는 작품 대부분이 지워지거나 훼손된 상태다. 온전하게 남아있는 그림 중 하나인 '경비견과 그 주인의 목소리’는 리빙턴 길에 있는 클럽 카고에서 볼 수 있다. 쇼디치의 그래피티 역사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그래피티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도 이 지역 곳곳에 묻어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편에 걸쳐 둘러본 런던의 시장들은 제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 모두 같았다. 위기를 이겨내고 오랜 시간 시장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전 세계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명소로 떠오르게 된 것도 모두 시장을 사랑하는 사람들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정형화되어있지 않을지라도, 오고 가는 정과 낭만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는 곳!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런던 시장은 그래서 더욱더 따뜻하고 유쾌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