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여름이 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날이었다.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마음에 찾아 나선 북촌이었으나 들려오는 이야기론 볼 게 없다고 했다. 오다가다 잠깐 들르기 좋다는 말뿐이라, 여차하면 다른 곳으로 돌아설 마음이었다.
취미 삼아 시작한 사진이 벌써 3년째지만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둔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을 때보다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것에 매력을 느낀 후로 종종 필름 카메라를 집어 들게 되었다. 북촌은 오래된 동네라고 하였으니, 필름 카메라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안국역에 도착해 출구로 나오자 계동길과 인사동길이 마주 서 있었다. 인사동 쪽으로는 사람이 북적였다. 계동길의 초입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오래된 간판이 이끄는 대로 계동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완연한 여름의 초입이었다.
안국역 3번 출구로 난 길을 따라 걷다 첫 번째 코너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그곳에서 계동길이 시작된다. 가루약을 흰 종이에 접어 건네주던 유년의 소아과가 떠오르는 ‘최 소아과’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 제대로 길을 잡은 것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길에는 낡은 간판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우르르 골목길로 쏟아져 나왔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그네들은 참기름집 앞이 관광지나 되는 양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었다. 시골 같아, 신기하다, 세트장 같다는 학생들의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세트장’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계동길 한복판에 위치한 ‘대구 참기름 집’은 성업 중이었다. 힘겹게 밀릴 듯한 낡은 미닫이문에 끼워진 유리는 새것처럼 반짝반짝했다. 엄마의 부엌처럼, 깨끗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코끝이 뭉근해지는 기름 냄새가 풍겼다. 기름집 앞에서 기름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나는 느닷없이 두근거렸다.
참기름 냄새는 엄마나 할머니처럼, 나를 오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는 냄새였다.
계동길에는 젊은 디자이너의 숍이나 카페가 생각보다 많았다. 한옥의 기틀은 유지한 채 레이스 원피스를 파는 옷가게와 공방들이 오르막의 켠켠이 위치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러한 한옥들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나뭇결도 덜 말라 보이는 그곳들을 배경으로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들이 기억하게 될 한국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되어 보이는 목욕탕 간판에는 파스타라는 생경스러운 단어가 적혀 있었다. 어쩌면 이런 마케팅도 북촌만의 색깔이리라. 오래된 동네인 줄 알았던 북촌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통통 튀는 젊은 공간이기도 했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킨 그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락에 담겨 나온 파스타는 북촌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새롭고도 정겨운 모습이다.
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젠틀몬스터의 쇼룸 내부 기존 목욕탕의 특징은 살린 채 새롭게 거듭났다.
계동길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중앙 고등학교가 보였다. 학창시절엔 한없이 높고
크게만 보였던 학교 철문이 주말을 맞아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구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 보라는 듯이.
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오래된 본관은 철맞은 푸릇한 아이비로 뒤덮여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수돗물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가만히 멈춰 서게 되는 오래된 수돗가도 마찬가지다. 수돗가를 지나니 잔디가 깔린 진초록의 운동장이 펼쳐졌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에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알고보면 중앙 고등학교는 매우 오래된 학교다. 잘 관리되고 있는 시설을 보면 세월을 느끼기 어렵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근대사를 같이 한 역사적 공간이다. 1908년에 설립된 이곳이 3.1운동의 배태지라는 사실은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큰 자랑거리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6.10만세 운동을 주도한 곳이기도 하니, 학교 전체가 커다란 기념비적 가치를 지닌다. 지금은 학생들의 배움의 터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앙 고등학교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학교를 나오니 여태 올라온 계동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밀조밀한 골목길 주위로 오순도순 하게 얹혀 있는 그 모든 집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오른쪽으로는 다시 언덕길이었다. 숨이 가빴다. 그러나 힘들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를 때나 느끼는 기분 좋은 피곤함이었다.
북촌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 바로 아띠 인력거.
북촌의 새로운 모습을 가장 먼저 접하고 이를 손님들에게 전해주는 아날로그형 실시간 북촌 소식통이라 할 수 있겠다.
세발로 달리는 인력거를 타고 북촌 구석구석을 돌아보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게 될 것이다.
사람 냄새가 나기에 이 곳 북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계동길에서 빠져나와 좁은 건널목을 건너니 한옥이 즐비한 골목이 나타났다. 계동길을 올라오며 만난 새 한옥과는 다르게, 시간의 냄새가 났다. 이때다 싶은 마음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어쩐지 이곳의 기와와 벽돌은 할머니의 손처럼 반질반질하고 따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다 말고 손으로 벽돌을 가만히 짚어보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이 집의 심장박동이 느껴지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처마 끝이 하늘로 솟은 모양새는 우아하면서도 경쾌했다. 그 옛날 아무 기계도 없이 저런 곡선을 만들어낸 선조들이 새삼 놀라웠다. 너무나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것은 한옥의 곡선 말고도 많을 터였다. 그게 무엇일까.
어쩌면 북촌에서는 그런 것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을 거닐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러한 결핍과 상실감에 이끌려 이 오래된 동네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북촌은 최근 사람들에게 ‘핫’한 장소다. 사실 최근이라는 말은 좀 우습다. 2000년 무렵 북촌의 한옥마을이 재건축 및 보존정책을 통해 하나의 관광명소로 유명해지기 전에도 북촌은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의 거주지로서 그 지역적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한 번이라도 북촌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오래된 상권이 밀집되어 있는 계동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 북촌 전망대에 다다르면 등 뒤로는 북악산의 힘이, 눈앞으로는 서울 시내의 전경이 펼쳐진다. 지금의 빌딩숲이 아니라면 청계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을, 배산임수의 극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