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계의 전설,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2년 개봉했을 당시 센과 치히로의 환상적인 모험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이 애니메이션이 10여 년이 지난 2015년 2월 재개봉되며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꾸준한 인기를 얻어 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덕분에 대만의 필수 여행지로 자리 잡은 곳이 있다. 바로 대만의 작은 마을, ‘지우펀’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둘 사이에 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잠시 예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을 떠올려 보자. 신들의 음식을 먹은 부모님이 돼지로 변하는 모습에 놀라서 도망가는 센의 머리 위로 수많은 붉은 등이 스쳐 지나간다. 신들에게 온천의 영업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도 역시 이 붉은 등을 이용한다.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오지 않았을까 싶다. 애니메이션 속 배경과 소품으로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홍등’이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지우펀 사이의 연결 고리이다.
지우펀의 홍등은 과연 어떤 모습이기에 세계적인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일까? 홍등은 계속 달려있으니 낮에 방문해도 물론 볼 수 있지만 밤이 되어야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낮 동안은 타이베이와 근교를 여행하고, 해가 질 무렵 지우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지우펀의 붉은 매력을 두 눈 가득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대만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예진지, 예스진지 등 낯선 단어를 접하게 된다. 대표 도시인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앞글자를 따서 하루 일정을 알기 쉽게 줄여 부르는 것일 뿐, 정식 명칭은 아니다.
타이베이에서 일찍 출발하여 다른 근교 도시들을 둘러보고 지우펀으로 넘어갈 수도 있고, 타이베이 시내를 돌아보다가 천천히 지우펀으로 향해도 좋다. 일정이 여유롭다면 지우펀에서 하루 묵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와 타이베이의 밤을 즐겨보자. 취향에 따라, 일정에 따라 돌아볼 수 있는 추천 코스가 여기 있다.
九份, Jiufen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지우펀은 대만 북부 신베이 시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과거에는 단 아홉 집밖에 없었는데, 인근 마을에서 지원을 받거나 생필품을 살 때에 항상 똑같이 아홉 등분을 한 후 나눠 가졌다고 해서 ‘아홉으로 나누다’라는 뜻의 지우펀(九分)이라고 불렸으며 이후 공식 지명으로 채택되었다.
예전에는 금 채굴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20세기 후반 금이 고갈되기 시작하자 점점 위축되다가 폐광되었다. 진과스와 같은 탄광 유적이지만 진과스에 비해 탄광 유적임을 피부로 느끼긴 힘들다. 그러나 지우펀이 탄광 유적임을 미리 알고 간다면 곳곳에 남아있는 작은 조형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한 냄새를 지나치면, 먹거리와 생필품을 팔고 쇼핑 거리까지 이어지는 ‘지산제’가 이어진다. 대만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곳을 천천히 걸어보자.
거리를 가득 메운 발자국과 머리 위로 이어지는 홍등을 따라가다 보면 지우펀의 관광 명소인 ‘수치루’에 도착한다. 지우펀을 대표하는 사진 대부분이 이곳, 수치루의 사진이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전에 타이완의 한 가족사를 그린 중국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로 먼저 알려졌다. 수치루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보이는 성핑 극장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금 채광이 활발했던 1927년 세워졌을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극장이다.
한때 폐쇄되기도 했지만 리뉴얼 후 다시 문을 열었다. 당시 사용했던 영사기, 스크린, 좌석 등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하다. 입장료도 무료이니, 시간이 맞는다면 영화를 봐도 좋을 것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영화 한 편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수치루 부근에 ‘비정성시’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는데 이름만 비정성시일 뿐 영화 촬영 장소가 아니니 착각하지 말자.
비정성시의 촬영지인 동시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은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카페 ‘아메이차주관(阿妹茶酒館)’이다.
지우펀은 낮보다 밤이 매력적인 도시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홍등이 하나둘 켜지는데, 지우펀을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두 개가 아닌 홍등 전체에 불이 들어온 모습이 보고 싶을 것이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야경을 감상하고 한꺼번에 빠져나오다 보니, 저녁 무렵 버스 정류장은 그야말로 전쟁.
심지어 타이베이로 향하는 버스는 빨리 끊기기까지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우펀 일정을 여유롭게 짠 뒤 이곳에서 1박을 하는 것이다.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마음 편히 대만 표 맥주와 함께 지우펀의 밤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홍등이 어느 정도 켜지면 관광객들도 서서히 지우펀을 떠나므로 상점도 그에 맞춰 문을 닫는다. 숙박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미리 배를 채워두길 바란다.
지우펀이 아닌 타이베이에서 숙박할 예정이라면, 다음 일정에 주목하자. 지우펀에서 타이베이로 오는 버스를 타면 쭝샤오푸싱 역에 내리게 된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 슬슬 배가 고파올 것이다. 지우펀 지산제에서 파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대부분 가벼운 주전부리만 팔고 있어 끼니를 때우긴 힘들기 때문이다. 쭝샤오푸싱 역은 그야말로 맛집 천국이다. 이곳에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해보자.
鼎泰豐, Dintaifung
처음으로 소개할 맛집은 딘타이펑. 전 세계 11개국 106개 매장이 운영 중인 딘타이펑이 한국에 지점을 연 후부터, 대만 현지에서 그 맛을 느끼려는 이들의 여행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본점은 융캉제에 있지만 대만의 딘타이펑은 지점에 상관없이 언제나 여행자들로 붐빈다.
인기 메뉴는 샤오마이, 샤오롱바오, 우육면. 한국어로 된 메뉴판이 따로 제공되므로 주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도 가능하니 참고하도록 하자.
高記, Kaochi
다음으로 소개할 맛집 또한 딤섬 전문점이다. 딘타이펑에 버금가는 맛집으로 관광객보다는 대만 현지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편이다. 딘타이펑은 전 세계적으로 가맹점이 있지만 까오지는 융캉제 본점을 비롯해 중산, 쭝샤오푸싱, 스쩡푸 역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딤섬을 좋아한다면 하루는 딘타이펑, 하루는 까오지를 방문해 비교하는 재미를 느껴봐도 좋을듯하다.
까오지 쭝샤오푸싱 지점은 지우펀에서 돌아오는 1062번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馬辣, Mala
만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훠궈를 먹어보자. 대만 대표 음식인 훠궈는 중국식 샤브샤브로 한국 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훠궈 맛집으로 손꼽히는 ‘마라’의 특징은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는 점! 한국어 메뉴판이 있으니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음료나 주류는 직접 가져와서 먹으면 된다. 디저트로 준비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또한 무한 리필이니 마음껏 즐기자. 단, 2시간의 시간 제한이 있으니 참고!
훠궈는 1인분 주문이 안되기 때문에 혼자 여행을 떠났다면 아쉬워 말고 여행 카페를 통해 일행을 구해보자. 많은 사람과 함께 하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훠궈가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마라 쭝샤오푸싱 지점에 가려면 1062번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빨간 간판을 찾아보자.
Ice Monster
쭝샤오푸싱 역과 국부기념관 역 사이의 거리를 동취라고 부르는데 이 근처에 맛집이 정말 많다. 모든 맛집을 언급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딱 한 군데만 고르자면, 대만에서 꼭 먹어야 할 망고 빙수의 지존, ‘아이스 몬스터’를 추천한다. 원래도 유명했지만, 특히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꽃보다 할배’에 나온 망고 빙수 전문점으로 더 인기를 끌고있다.
쭝샤오푸싱의 다음 역인 쭝샤오둔화 역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아이스 몬스터가 나온다. 망고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망고 ‘음료’를 싫어할 뿐이라면 꼭 가보길 바란다.
망고 음료와 생(生)망고는 비교가 안되기 때문에 망고 주스를 싫어한다 해도, 아이스 몬스터의 망고 빙수를 먹고 나면 망고 자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대표 메뉴는 ‘Fresh Mango Sensation’. 여름(NTD 220)과 겨울(NTD 250), 계절에 따라 가격이 다르며 1인 필수 주문 금액이 110NTD로 정해져 있다. 즉, 두 명이 한 개를 시킬 수는 있지만 셋이 하나는 먹을 수 없으니, 주문 시 참고하자.
佳德, Chia te
저녁과 디저트까지 든든하게 먹었다면, 소화도 시킬 겸 펑리수를 사러 가보자. 펑리수가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치아더’가 국부기념관 역 부근에 있다. 펑리수는 대만의 대표 디저트인 파인애플 빵인데, 여행 기념 선물로도 제격이다. 파인애플 빵이지만 크랜베리와 딸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기념품은 이제 그만. 대만 여행의 선물로는 펑리수가 단연 만족도 1위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두 손 가득한 선물까지 준비가 끝났지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대만 여행의 마지막 밤, 타이베이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台北國際金融大樓, Taipei 101 &
香山, Xiang shan
첫 번째로 소개할 야경 스팟은 101 타워. 정식 명칭은 타이베이 금융센터지만 타이베이 101 혹은 101 타워라 불린다. 대만의 명소로 89층 전망대, 90층 야외 전망대에서 타이베이 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 입장료는 조금 비싸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샹산. 발음이 강하면 비속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코끼리 산’이라는 뜻으로 타이베이 최고의 야경 스팟으로 손꼽힌다.
개인적으로 101 타워보다는 샹산에 올라 야경을 보길 추천한다. 타이베이101에서 야경을 보게 되면 정작 타이베이 101 타워는 볼 수가 없다. 파리 에펠탑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는 것과 같은 논리. 산이라고 겁먹지 말자.
높지 않고 중간중간 전망대가 있어 오르고 싶은 만큼만 올라간 뒤 야경을 즐기면 된다. 물 한 병 챙겨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샹산을 올라보자.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오르다 보면 힘든 것도 잠시,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약 대만 여행의 목적이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라면, 무조건 가길 추천한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낮에는 마오콩의 여유로운 찻집이 있다면 밤에는 이곳, 샹산이 있다. 복잡한 고민거리는 모두 떨쳐버리고,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며 하루를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