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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스닷컴 Dec 27. 2018

안데스 산맥의 중턱, 라파스 여행

순수한 사람들로 가득한 남미 여행.

무사히 라파스에 안착했다. 비로소 볼리비아에 입성했다는 뜻이다. 볼리비아는 안데스 산맥 언저리에 걸친 고산지대인데, 그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한다. 그 때문일까, 쿠스코에서부터 조금씩 호소하던 엄마의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하루빨리 고산병에 좋다는 ‘소로체’를 입수해야 한다는 미션이 생겼다. (글, 사진 : 윤뉴)


한적한 라파스 거리의 모습


터덜터덜, 가벼운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첫날은 아무 낯선 골목을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되기에. 사실 아직 라파스에서의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탓도 있다. 야속하게도 여행자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이미 남미의 중심부란다.



시장 한편에서 탐스럽게 익은 열대 과일들을 팔고 있다.


어제 종일 이어진 투어의 피로는 하루 밤잠으로 떨쳐냈다. 숙소 뒤편으로 돌아 나오니 언덕 너머 멀리, 한눈에도 복잡스러운 골목이 보인다. 시장인 것 같다. 좁은 골목 사이로 작은 천막을 친 가판대가 줄줄이 이어지는 풍경은 어째 낯설지가 않다.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골목.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 냄새가 정답다.



그리고 마주친 과일주스 노점의 세뇨라
갓 짜내 상큼한 과일 주스 한 잔, 이런 게 바로 시장 산책의 묘미


이왕 시장으로 들어선 김에 현지 식당에서 동네 사람들과 뒤엉켜 식사도 해 보았는데, 현지식으로 꽤나 정갈하게 차려지는 식당의 음식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저렴했다.



라파스의 중심,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시장 골목은 자연스럽게 라파스 센트로의 마요르 광장과 연결된다. 라파스의 메인 광장답게 역시나 사람이 많다. 광장 중앙엔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덕분에 산 프란시스코 광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기념품샵이 즐비해서 쇼핑을 즐기기엔 좋다.


마요르 광장 뒤편이야말로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는데, 아까 지나온 작은 골목들과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겨우 고작 이만큼 걸어왔는데, 어쩜 이렇게 다를까. 뚜벅이 여행은 이런 점이 참 매력적이다. 근데 줄줄이 늘어선 상점들은 어째 죄다 기념품점들이다. 물론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라파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낄리낄리 전망대(Mirador Killi-Killi)


시내 구경을 마치고 얼른 택시를 잡아탔다. 그냥 뚜벅뚜벅 걷기만 해도 좋긴 하지만, 라파스 전경이 두루 내려다 보인다는 무료 전망대가 있다고 해서 해가 지기 전에 가볼 요량이다. 택시를 타고 머지않아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전망대라고 적혀있긴 한데, 막상 와 보니 작은 공원이다.



해 질 녘의 노오란 하늘은 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산맥을 따라 움푹 팬 듯한 공간에 다소곳이 자리한 도시 풍경이 다소 인상적이다. 사방을 타고 오르는 언덕까지 끝없이 다닥다닥 지어진 집들은 다시금 이곳이 고산도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상기시켜준다. 오죽했으면 저 산 너머 마을로 가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할까.



안데스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만년설이 다소곳이 앉았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의 눈을 발견하고 어쩌면 ‘앗-‘ 하고 소리를 질렀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드넓은 언덕과 수많은 마을, 이 큰 도시를 넘어 봉우리가 솟아있을 텐데, 어쩜 이렇게 코앞에서 보는 듯 선명할까. 해가 질수록 점점 서늘해지는 날씨에 추위를 느끼며 이래서 만년설이 녹지 않았나 보다-고 실없는 소릴 나누고는, 하이얗게 소복이 내려앉은 눈 더미를 그렇게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다가, 결국 해가 다 지고서야 언덕을 내려왔다.



오늘도 해는 진다.


볼리비아는 남미의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최빈국에 속한다는데, 그 어느 교통수단보다 유지비가 비쌀 것만 같은 케이블카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한다. 비용도 편도 500원 수준이니 아이러니하다 느낄 법도 하지만, 최고도에 위치한 고산지대의 숙명으로, 어쩌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저지대와 고지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텔레파리코


우리나라에서는 케이블 카라고 부르는 이 녀석을 이곳에서는 텔레파리코(teleferico)라고 한다. 케이블 카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택시 기사와 한참을 씨름하다 알아낸 이름이다. (도움을 준 지나가던 행인에게 감사)


남미인들은 대개 친절하다. 언젠가 남미 사람들은 맑은 영혼을 가진 것 같다고도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대부분 착하다. 다만 그 친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은 우리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일 테다. 왜냐하면, 남미인들은 전 세계 어느 지역의 사람들보다 영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국어가 스페인어인 까닭에, 그들은 영어의 필요성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어찌 보면 부럽기도.



케이블카 안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


남미에서는 스페인어를 모르면 스스로가 답답해지기 때문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마음먹고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커져만 간다. 다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떠돌이 여행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여행 도중 필요한 단어와 간단한 문장 정도를 알음알음 익히는 것뿐이다. 덕분에 케이블카를 합석한 현지 주민과 간단한 단어 몇 개로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정말 짧은 대화였지만.



저렴한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윗동네는 대개 달동네로 빈민층 거주 지역이기 때문에, 치안을 생각해서라도 관광객에게 굳이 권하는 지역은 아니다. 때문에, 전망을 둘러보기 위해 왕복으로 짧게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이 남는 하루,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으로 향했다. 남미 여행객에게 달의 계곡이라 묻는다면 대개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의 달의 계곡을 가장 먼저 떠올릴 테지만, 크게 내세울 만한 관광지가 얼마 없는 라파스에서는 손에 꼽을 만한 곳 중 하나다.



달의 계곡 입구 전경, 모처럼 만난 태극기가 반갑다.


달의 계곡은 사실은 진짜 계곡은 아니고 흙으로 된 계곡인데, 붉고 뾰족한 바위 첨탑들이 우수수 솟아있어 붙은 별명인 듯하다. 혹자는 달의 표면과 비슷한 형상을 빗대어 명명한 것이라고도 한다.



뾰족한 바위가 모여 달의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달의 계곡을 구성하고 있는 바위 절벽들은 사실은 점토 재질이다. 애초에 산이었던 것이 침식으로 깎여 지금의 형상을 이룬 셈이다. 기괴한 형상으로 제멋대로 깎여버린 절벽은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이 되어버렸다.



독특한 형상으로 깎인 작은 동상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내에서 마야싸(Mallasa)행 이라 적힌 버스를 타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깎아지른듯한 절벽으로 데려다준다. 도시에서 30분이면 닿는 언저리에 이런 대자연의 산물이 온전히 방치되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모처럼 교외로 나온 때문일까. 나들이를 나온 듯 마음이 산뜻하다. 맑고 청명한 날씨도 한몫 거들었다.



그야말로 자연자연한 대자연의 품 속


이렇게 온전한 관광은 오랜만이다. 여행 시작 후 처음으로 엄마와 야간 버스를 타야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 하루 일정은 이것뿐이지만, 알차게 마무리한 것 같아 만족스럽게 마침표를 찍는다. 오늘도 주섬주섬 짐을 싸는 여행객의 시계는 차근차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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