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취업 VS 교대 입학

생굴이 남기고 간 여파

by 티쳐맘

3주가 지나고 수능 결과가 나오는 날.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을 성적 확인 버튼만 쳐다봤다. 클릭하기 무서웠다.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클릭했다.

국어와 수학

어? 둘 다 9월 모의고사보다 더 잘 나왔잖아?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영어와 사탐...

점수를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능날 생굴과의 사투가 그대로 성적표에 새겨져 있었다. 교대에 갈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너무 아쉬웠고, 많이 슬펐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생굴만 아니었어도.. 생굴만 아니었어도..

계속 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돌이켜보면 나에게 큰 시련이 오면 항상 그 뒤에 좋은 일이 왔었다.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런 좌절이 온 거라 믿었다.

포기는 없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교대는 수능 성적만으로 선발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내신 20%와 면접 점수까지 합산하여 선발한다. 고등학교 성적이 크게 나쁘지 않았고 면접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에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교대는 일반대 이대 초등교육과를 제외하고 ‘나군’에 다 몰려있어서 단 한 곳에만 지원할 수 있다. 선생님이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가군, 다군은 아예 보지도 않고 나군에 교대 한 곳만 올인했다.


플랜 B의 필요성


교대에 당연히 들어가면 베스트지만,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 상황에선 교대에 떨어질 수도 있다.


수험생을 한번 더 한다?

더 이상 수능을 볼 여건도 안되고, 자신도 없었다. 벌써 이력서에 1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다. 이력에 공백이 더 길어지면 호텔 쪽 취업도 어려워질 것 같았다.


교대를 떨어지면 나는 일을 해야 했다.

다시 한국에 취직해서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전에 겪었던 것처럼 비슷한 상황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


그때 호주 리조트에서 근무했을 때가 떠올랐다. 영어는 존댓말이 없어서 상사에게 나의 의견을 쉽게 말할 수 있었고, 리조트여서도 있겠지만 한국과 비교해서 좀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그게 더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해외 근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과 너무 멀지 않으면서 한국인이 많이 찾는 나라... 그래서 한국인 채용 확률이 높은 곳을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컨시어지 채용공고였다.

어? 여기 티브이에서만 보던 그 호텔 아니야?

1차 서류, 2차, 3차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고 했다. 그래! 내가 교대에서 떨어져도 이곳에서 일한다면 다시 행복하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지원해 보자!


정장을 다시 꺼낸 날

오랜만에 resume(이력서)를 썼다. 얼마 전까지 수능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뭐든 해야 했다. 넋 놓고 교대 결과만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호텔리어가 됐다고 마인드셋을 하고 정성 들여 서류를 작성했다.

얼마 후 1차 서류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예!!!

2차는 면접이었다. 오랜만에 정장을 꺼내 입고 머리를 올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세팅을 마치고, 호텔에서 안내해 준 면접 장소에 갔다. 면접장에 도착하니 한국인 지원자들이 꽤 있었다. 오랜만이라 많이 떨렸다. 화상면접으로 진행되었는데 면접관 3분이 계셨다.

이건 특급 비밀인데, 내게는 면접 필승 전략이 있다. 바로 면접관들을 살짝 웃기는 것이다.

아무 데서나 사용하면 안 된다. 면접 분위기를 파악하고 적절한 순간에 사용해야 한다.


면접관을 웃긴다는 뜻은 나의 자신감과 위트를 한 번에 어필하는 것이다.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전략은 많은 면접자들 중 내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개그맨처럼 웃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장점 중 하나를 재밌게 어필하는 것이다. 나는 겨루기 준비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저의 장점 중 하나는 태권도 1단입니다. 호텔에 나쁜 사람들이 나타나면 제가 다 무찌르겠습니다!"


면접관분들이 미소를 지으셨다. 외국인 면접관분들에게도 먹혔다!! 성공!!

그 덕분이었는지 2차도 통과했다!!


2차는 실무에 대한 지식, 호텔 관련 경험, 그리고 이곳에서 잘 적응해서 일할 수 있는지가 면접의 주였다면, 3차 면접은 연봉이나 근무가능 시점 등 현실적인 부분을 묻는 것이 많았다. **"여기가 아니면 안 됩니다"**를 온몸으로 어필했다.


두 개의 면접, 두 개의 희망

마리나베이샌즈 3차 면접을 볼 때쯤 교대 면접도 있었다.

면접으로 뒤집자!!

고3 학생들보다는 면접 경험이 많으니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거로라도 만회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이런 면접에서는 웃기면 안 된다)


드디어 교대 합격자 발표날.

이번에도 도저히 결과를 볼 자신이 없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클릭했다.

예비 OO번

합격 대신 예비를 받았다. 아쉬웠다. 그래도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기도 했다. 이제 정말 운명에 달려있었다.

마리나베이샌즈든 교대든 한 곳만이라도 되라고 정말 빌고 또 빌었다.


마지막 추가 합격자 발표: 2월 17일 오후 6시까지 개별 유선 통보.

피가 바짝 말랐다. 전화기를 놓을 수가 없었다.

운명을 바꾼 두 통의 전화


2월 15일 오후.

따르르릉-

안녕하세요, 마리나베이샌즈 한국 채용 담당자입니다. 컨시어지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그곳에서 내가 일할 수 있다고?


'이제 교대가 안 되더라도 덜 슬퍼할 수 있겠다…‘

부모님도 언니도 좋아했다. 수능 결과를 보고 좌절해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가족들 모두 마음 아파했는데 내가 호텔에 합격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다들 기뻐했다.

이틀 뒤 2월 17일 점심시간.

혼자 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OO교육대학교입니다."

숟가락을 놓았다.

교대 추가 합격하셨는데, 등록하실 건가요?


"네!!!! 등록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바로 등록하시고 내일까지 등록금 납부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됐다아아아!!!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고 방방 뛰어다녔다. 내가 종교는 없지만,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진짜였다. 9개월간의 염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달콤한 딜레마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언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

마리나베이샌즈에 가는 게 어때?
거기 가면 내가 놀러 갈게!

정말 사람 마음이 묘하다. 막상 두 개 다 붙고 나니 마리나베이샌즈도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확고했다. 내가 미래에 어떤 결정을 했을 때 더 후회하지 않을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리나베이샌즈 한국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씀드렸다.

제가 다른 곳에 합격을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새로운 시작

그렇게 나는 25살, 다시 교대생이 되었다.


책상 앞에 붙여놓은 유준이 사진을 보며 말했다.

"유준아! 선생님 교대 합격했어.
그때 다짐했던 것처럼 많은 아이들의 수호천사가 돼줄게.

호텔에서의 상처, 수능 공부의 고통, 생굴 사건까지...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과정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나에게는 값지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좀 더 단단해졌다. 이젠 어떤 어려움이 와도 무섭지 않았다.


이제 진짜 내 꿈을 향해 달려갈 시간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