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새내기 교대 생활
나는 그렇게 스물다섯, 꿈에 그리던 교대생이 됐다.
합격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 새터(새내기 배움터) 참여 여부를 묻는 전화였다. 대학교가 시작하기 전 친목 도모를 위해 2박 3일 같은 과 동기들과 여행을 가는 것이다.
'나 빼고 다 어린 친구들일 텐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푸릇푸릇한 아이들과 2박 3일 여행이라니. 걱정이 많이 됐다.
어린 동기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후드티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멨다. 거울을 보니 좀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나 애 많이 쓴다 :)
떨리는 마음으로 안내받은 강의실로 갔다.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빼꼼히 안을 보는데, 한 학생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여기 와서 앉아~!!"
나??
그 아이의 엄청난 친화력에 나도 모르게 이끌린 듯 옆에 가서 앉았다. 그 아이를 포함해 주변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야? 어디에서 왔어? 아침에 어떻게 왔어? 아침 먹고 왔어? “
내가 몇 살인지 밝힐 틈도 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내심 동갑으로 봐줘서 고맙기도 했다. 나이가 많은 걸 지금 말해야 하나 고민하며 어버버 어색하게 대답을 하니 갑자기 한 명이 물었다.
"헉... 혹시 현역 아닌가? 언니예요???"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 미안해요!!" 하면서 다른 한 명을 소개해줬다.
"저기 언니 한 명 있어요! 같이 친하게 지내요."
그 친구는 재수생이었다. 바로 내 나이를 말하면 아이들과 거리감이 생길 것 같아서 조금 친해지면 말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했다.
새터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선배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그러면 우리 이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이름, 나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해주세요!"
결국 그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고,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오지 않길 바랐던 내 차례가 됐다. 내 옆에 앉은 동생이 너무 놀랄까 봐 살짝 미안함이 몰려왔다.
"안녕! 나는 서울에서 왔고, 나이는... 25살이야. 잘 부탁해!"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무슨 영화 한 장면처럼 정말 모두가 뒤를 돌아 나를 봤다. 나에게 "여기 앉아!"라고 말했던 친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재수생인 줄 알았었기에 모두 다 놀랐던 것 같다.
자리에 앉자 재수생 동생이 말했다.
"언니, 저는 저랑 동갑인 줄 알았는데, 너무 놀랐어요...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을 써야 할지..."
"괜찮아! 어차피 같은 과고 계속 봐야 하는데 아까처럼 편하게 반말해 줘!"
조금 어색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과의 모든 동생들에게 내가 무조건 반말로 해달라고 했고, 그 덕분에 좀 더 동생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직장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다시 대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그 꿈을 이뤘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첫 번째 호텔경영을 공부할 때는 이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교대에 들어가니 공부가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교대는 여러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면 즐겁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교대에서는 3, 4학년 때는 지도안을 짜고 수업시연, 임용으로 바쁘지만 1-2학년때는 주로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의 내용을 심화해서 배운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강낭콩 키우기가 나오면, 우리도 대학교에서 똑같이 강낭콩 씨앗부터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른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낭콩 뿌리 종류, 떡잎, 본잎 등등 식물의 특징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한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이런 질문을 해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로 말이다.
"선생님, 그런데 왜 강낭콩 잎이 처음에는 두 개 나왔는데, 왜 다음부터는 여러 개씩 나와요?"
심지어 체육도 농구, 뜀틀, 물구나무서기, 창작 무용까지 다 한다. 실기 평가를 위해 밤늦게까지 체육관에서 농구 골 넣는 연습, 리코더 연습, 동요 피아노 반주 연습, 동요 부르기 연습을 할 때면 가끔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다 재미있었다.
강의실에 가면 보통 뒤에서부터 채워서 앉는데 나는 항상 앞에 앉아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이래서 나이 들어서 대학에 가야 하나 싶었다. 재밌게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성적도 잘 나왔다.
매년 빠지지 않고 초등학교 수업실습도 했다. 3학년 1학기에는 전교생이 10명이 안 되는 시골 분교에서 2주 동안 숙박하며 실습을 했다. 몇 명 안 되는 아이들과 거의 1:1로 수업을 하며, 같이 산으로 들로 놀러 가고, 실습 같이 갔던 다른 과 사람들이랑 밤새 웃고 떠들며 수업 준비도 하고 놀고... 너무 정이 많이 들어 마지막날엔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다 같이 울었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교대는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성장시켜 주었다. 나는 교대 오기 전까지 항상 막내였다. 집에서도, 빠른 이다 보니 학교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할 때도, 직장에 다닐 때도 거의 항상 막내였다. 그러다 보니 언니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교대를 다니며 동생들보다 나이가 5살 많았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언니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생겼다. 항상 '나' 하나도 못 챙기는 덤벙이였는데, 교대 동생들이 이런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좀 더 책임감 있는 언니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동생들의 힘든 일이 있을 때 토닥여주고, 연애상담을 해주고, 다 같이 술을 마시러 가면 끝까지 정신 차리고 있다가 한 명씩 집에 잘 데려다주고 잘 갔는지 연락하고...
항상 받는 입장에서 남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과대도 해보면서 동생들을 리드하고 도움을 주는 포지션을 맡아보기도 했다. 점점 책임감 있는 언니,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부모님이 학비와 기숙사비를 내주시고 있어서 항상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들어올 때는 추가 합격으로 들어왔지만 그 이후로는 장학금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그렇게라도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용돈을 벌기 위해 과외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과외를 한 번 가면 왕복 2시간, 수업 2시간. 총 4시간이 들었다. 과제도 많고 해야 할 공부도 많은데 매일 과외를 갔다 오는 게 조금 스트레스였다.
어느 날 외국인 친구에게 내 스트레스를 털어놓았다. 그 친구가 말했다.
"너 한국어랑 영어 둘 다 할 수 있잖아. 너 선생님 될 거고. 그러면 온라인으로 한국어 가르쳐보면 어때? 요즘 K-POP도 인기 많고, 한국어 배우려는 사람들 많던데?"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렇게 나는 온라인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얼마 후에 바로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들이 생겼다. 그렇게 한, 두 명씩 늘려가며 수업을 했고, 가격도 애덤 스미스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똑같은 4시간을 하루에 써도, 1명이 아닌 시간당 한 명씩 4명을 가르칠 수 있어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방학에는 하루에 매일 6시간씩 수업을 했다.
나중에는 그 사이트에서 인기 한국어 강사가 돼서 나에게 따로 연락이 왔다. 각 나라 언어의 인기 강사 홍보영상을 찍고 있는데 내 홍보영상을 찍어주겠다고. 나는 그래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카메라맨이 와서 서울 이곳저곳을 돌며 내 홍보영상을 찍기도 했다. 영상 촬영부터 편집까지 멋지게 해 주셨다!
(이 정도가 되니 진심은 아니었지만 직업을 한국어 선생님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ㅎ)
파나마, 가나, 미국, 핀란드 등 20개국이 넘는 여러 나라 학생들을 가르치며, 용돈도 벌고 집에서도 해외에 나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1석 2조였다.
정말 교대 다닐 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수업 듣고, 팀 과제하고, 공부하고, 한국어 수업하고. 또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지금 생각해도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다시 교대에 갔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4년은 힘든 터널을 지나온 나에게 정말 활짝 피었던 꽃과 같았던 시간이었다.
호텔에서 상처받았던 나, 수능 공부로 힘들어했던 나, 생굴 때문에 절망했던 나...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이제는 정말 어른으로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 선생님이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요즘 선생님 직업이 힘드네, 3D 직업이네.
하지만 어떤 직업인들 안 힘들겠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니 후회하지 않는다.
유준이에게 수호천사가 되었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내 꿈이, 이제 현실이 돼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