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식문화, 니들이 호커센터를 알아?

엄마표 집밥이 없어도 괜찮아.

by 티쳐맘

싱가포르는 사계절이 여름이다. 날씨가 덥다 보니 집에서 해 먹기보다는 밖에서 사 먹는 경우가 많다. 호커센터에 가면 한 끼에 3~8 싱가포르 달러(3천 원~8천 원) 면 먹을 수 있어서 사 먹는 게 훨씬 싸다.


하루는 집에서 요리를 한 번 해 먹어 볼까 해서 가스를 켰는데, 부엌에 가스가 아예 차단되어 있었다.

왜 차단되어 있지? 사람들이 아예 요리를 안 하나?

궁금해서 글렌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글렌의 대답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우리 집도 가스 차단돼 있어! 나는 엄마요리를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어.


한 번도 없다고??? 거짓말~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정말 몇 번을 다시 확인했다. 한 번도? 진짜 단 한 번도?

"응!!! 없어."


글렌의 경우가 조금 극단적인 거 같긴 한데, 싱가포르는 외식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집에서 요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고, 나가서 사 먹는 게 싸고 시간 절약도 돼서 자기와 비슷한 집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서 가족 저녁 식사를 생각하면, 밥, 국, 반찬을 30분, 1시간씩 걸려서 만드는데... (사실 나는 호주에서 생활할 때도 사람들이 스테이크랑 냉동야채를 오븐에 넣고 꺼내서 소스만 뿌려 정말 간단하게 요리해서 먹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받았었다. ) 많은 노동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나에겐 혁명이었다. ^^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호커센터에 가면 가격도 저렴하고,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문화가 공존하다 보니 음식의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싱가포르에 4개월 지내면서 한 번도 요리를 하지 않고 매번 사 먹었음에도, 질리지 않고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었다.

실내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식사를 해봤지만, 같은 음식일 경우 호커센터가 맛이 떨어지거나 퀄리티가 더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큰 차이는 실외 호커센터에서 땀샤워를 하며 먹느냐, 실내 에어컨이 빵빵한 레스토랑에서 먹느냐의 차이였다. 물론 가격 차이도 크고.

호커센터가 도대체 뭐지?

1960년대 이전, 싱가포르 거리에는 수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이들 "호커"(hawker)들은 포장마차로 음식을 판매했는데, 위생 문제와 교통 혼잡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1968년 싱가포르 정부는 체계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거리의 노점상들을 한 곳으로 모아 위생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커센터의 시작'이었다.


오늘날 싱가포르에는 100개 이상의 호커센터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중국, 말레이, 인도, 페라나칸 등 다양한 민족의 전통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정부가 시설을 소유하고 관리하며, 엄격한 위생 검사와 등급제를 통해 음식의 질과 안전을 관리하며, 각 상점마다 A, B, C, D등급이 부여한다. (등급이 크게 붙어있으니 호커센터에 가서 이 등급을 잘 확인하시길!)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내 호커센터 라이프

혼자 식사할 땐 100% 호커센터에서 먹었다. 내 식사의 90% 호커센터, 나머지 10%가 친구들과 함께 간 레스토랑이었다. 한국음식이 싱가포르에서 인기가 정말 많은데 한국보다 훨씬 비쌌다. 가끔 한국음식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어차피 한국 가면 많이 먹을 수 있다 생각하며 참았다.


보통 저녁에 캐주얼하게 친구들과 만나면 호커센터에서 밥을 먹고 카페나 바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100개가 넘는 호커센터 도장 깨기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개인적으로는 싱가포르 그린커리(태국에서도 먹어봤지만 맛이 조금 다르다. 싱가포르 그린커리가 좀 더 달고 내 입맛에 잘 맞았다.), 락사(한국인 입맛에 잘 맞음), 카야토스트, 치킨라이스, 사테, 시리얼 새우는 내 최애이다. 꼭 먹어보길 추천!


저녁이 되면 회사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직장인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커센터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집에 가는 것이다. 국물 요리건, 소스건, 심지어 음료수까지도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중, 고등학교 학생들도 학교를 마치고 호커 센터에서 저녁을 먹거나 음식을 포장해 와서 길거리에 둘러앉아 먹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비닐봉지에 음식을 포장하는 것과 길거리에서 식사하는 학생들이 모습들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것도 그들의 문화로 느껴졌다.

다만 환경 호르몬과 비닐로 인한 환경오염이 걱정되기도 했다.


러비쉬 슈트(Rubbish Chute)의 충격

쓰레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건 음식은 아니지만 재밌는 경험이 있었다. 줄리가 렌트한 집으로 이동하고 며칠 동안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도 쓰레기통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밥을 집에서 먹지 않아 쓰레기가 많이 없었지만 당황스러웠다.

싱가포르 친구에게 물어봤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 없는데 어디에 버려야 해?

아! 주방에 쓰레기 버리는 러비쉬 슈트가 있어. 거기에 버리면 돼.


"응? 그러면 분리수거는 어떻게 해?"

"안 해~!"

선진국에, 껌도 못 씹게 할 정도로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나라에서 분리수거를 안 한다고??

주방에 갔더니 뚜껑을 열면 진짜 작은 미끄럼틀이 있었다. 러비쉬 슈트는 각 층 복도나 주방 근처에 작은 문이 있고, 그 안에 수직으로 연결된 관이 있어서 쓰레기를 넣으면 아래층 쓰레기 수거함으로 떨어지는 시스템이었다. 아무거나 분리 없이 버리면 된다!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한국사람으로서 정말 충격이었다. 요즘은 재활용을 분리하는 쓰레기통이 생기긴 했다지만, 여전히 그냥 러비쉬 슈트에 버리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여담으로 싱가포르 친구가 한국에서 6개월 살기를 했는데, 분리수거 때문에 몇 번을 나에게 사진을 찍어 물어봤다. 빨간 국물이 묻은 플라스틱통을 아무리 씻어도 빨간색이 지워지지 않아 며칠 동안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색이 변해도 플라스틱에 버려도 되는지,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등등 많은 질문을 했었다. :)


2만 원짜리 소주의 충격

호커센터에 이어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술이다.

싱가포르는 술을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 도수가 높을수록 비싼 술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싱가포르 친구에게 소주 맛을 보여주려고 마트에서 소주를 사려했는데 2만 원에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비싸도 2천 원이 안되는데 10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싼 술이지만 도수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40도 넘는 중국술은 도대체 얼마일까...?

술 가격이 비싸서 그런 건지 싱가포르에서 친구들은 보통 바에 가면 맥주 한 병을 시켜서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적이 다 싱가포르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소주와 맥주, 소맥을 열심히 마시는 한국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나라가 많이 마시는 건가 싶기도 하고. 바에서도 보통 칵테일 한잔에 2만 원 후반-4만 원이니까 여러 잔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워 한잔만 마시곤 했다.

싱가포르에 유명한 숨겨진 바(speakeasy bar)가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갔던 적이 있다. (싱가포르에 숨겨진 바를 찾아 한 번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클락키 주변에도 벽처럼 보이는 곳에 히든 바가 하나 있다.) 친구들과 내기로 진 사람이 독한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었는데, 내가 걸렸었다.

여러 술들이 섞인 칵테일이었는데 가격이 10만 원이었다. 내기에 진 덕분에 10만 원짜리 칵테일을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

오예! 벌칙 맞아?^^


51개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싱가포르는 미식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파인다이닝을 잘하는 식당이 많은 나라임에는 확실하다.

3 스타: 3개 (Les Amis, Odette, Zen)

2 스타: 6개 (Meta가 새롭게 2 스타로 승격)

1 스타: 42개

인구 대비 미슐랭 레스토랑 수에서 싱가포르는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610만 명에 53개의 미슐랭 등급 레스토랑이 있다. 인구 5100만의 한국이 40개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밀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싱가포르에 있으면서 쥴리와 가격이 조금 비싼 레스토랑,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도 몇 곳을 가보고, 고든 램지 레스토랑도 가봤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무슨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내가 최고의 레스토랑에 못 갔던 거 일수도 있고 내 입맛이 그 정도가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내 기억에 남고 또 싱가포르에 돌아가서 먹고 싶은 음식은 호커센터 음식들이었다. (미슐랭 1 스타 중 호커센터에 있는 지지완탕누들은 정말 맛있게 먹어서 기억난다! 내가 호커센터를 좋아하나 보다.)


한국에서는 '집밥'이 사랑과 정성의 상징이라면, 싱가포르에서는 '호커센터'가 그런 역할을 한다. 글렌처럼 엄마가 요리해 준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어도, 호커센터에서 자라며 다양한 문화의 음식을 접하고, 그것이 자신의 추억과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 문화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이해가 된다. 각 나라마다 고유한 음식 문화가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것 같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화려한 플레이팅보다, 호커센터에서 땀 흘리며 먹었던 5달러짜리 락사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는 나 혼자 바쿠테를 먹으러 갔는데, 싱가포르 노부부와 테이블을 셰어 했다. 부부는 나에게 관광객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바쿠테는 유타오(빵) 이랑 같이 먹어야 해~ 이거랑 같이 먹어봐

하시며 내 빵까지 주문해 주셨다.

결국 진짜 맛있는 음식은 별의 개수가 아니라, 그 음식과 함께한 사람들과 추억,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


싱가포르에 가면 꼭 호커센터에서 현지인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식사해 보길 추천! 그곳에서야 비로소 진짜 싱가포르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S 말레이시아 음식 탐험

아!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시간이 되면 버스 타고 말레이시아로 가서 말레이시아의 생선머리 커리나 말레이 음식도 한 번 도전해 보길. 나는 가끔 버스 타고 말레이시아로 가서 당일치기로 식도락 여행을 하곤 했다. 싱가포르 사람들도 그렇게 말레이시아에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시간이 더 있다면 비행기로 음식의 도시 말레이시아 **'페낭'**을 가보는 것도 강추! 거기도 맛있는 음식들이 많으니 한 번 도전해 봐도 좋을 듯. (첸돌 빙수 꼭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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