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빈부격차, 삐까뻔쩍 뒤에 가려진 현실 (2)

위로 위로 부자들의 삶

by 티쳐맘

한 달 동안 1평 가사도우미방에서의 삶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차 헝가리 친구 쥴리가 제안했다.

우리 집 비어있는데 거기서 살래? 어차피 한국 가서 할 것도 없잖아. 가지 마~

좋아!! 덕분에 나는 운 좋게 싱가포르에 더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얼른 짐을 싸서 쥴리가 6개월 동안 렌트한 곳으로 이동했다.

가사도우미방.. 안녕!
우리 이제 다시는 보지 말자!!

쥴리가 렌트한 룸은 Bukit Timah(부킷티마)에 있었다. 부킷티마는 서울로 치면 한남동의 부의 상징성+ 성북동의 대저택 + 청담의 문화 + 대치동의 학군 이 결합된 곳이라고 보면 된다. 싱가포르한국국제학교(KISS)도 이 지역 바로 옆인 Bukit Tinggi에 위치하고 있다.

중계동 1평 방의 삶에서 한남동이라니… 어렸을 때 본 "비교체험 극과 극"을 하는 기분이었다.

Bukit Timah의 동네 분위기는 Toa Payoh와 또 달랐다. 저층 주택과 고급 콘도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용하면서 차분한 느낌의 동네였고, 자연공원이 많아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열대우림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또 이곳은 싱가포르 최고 명문학교들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졸업생 대다수가 싱가포르 명문대나 미국 아이비리그, 영국 옥스퍼드에 진학하는 ‘화총 국제학교’, ‘난양 여고’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한남동이라는 부킷티마의 집값은 얼마일까? 부킷티마의 고급 콘도 가격을 살펴보면

2-3 베드룸: 25~40억 원

4 베드룸 이상: 50~100억 원

정도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굿 클래스 방갈로(Good Class Bungalow)라 불리는 기생충에 나올 법한 대저택들도 많이 있다.

싱가포르 최고 부유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초고급 독립형 대저택인 GCB는 싱가포르에서도 극소수만 소유할 수 있는 진짜 부의 상징이다.

- 매매가: 최소 400억 원 이상

- 고급 매물: 1000억 이상

우리가 아는 ‘다이슨’의 제임스 다이슨도 Bukit Timah GBC에 집을 가지고 있다.


부킷티마에 쥴리가 렌트한 곳은 4 베드룸 고급 콘도의 방 한 칸이었는데, 1평에 묵었던 나에게는 그곳은 정말 궁궐처럼 느껴졌다. 콘도 내 공용 헬스장과 실외 수영장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흥미롭게도 주말을 제외하고는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그 넓은 수영장을 혼자 쓰는 호사를 누렸다.

집주인은 인도계 싱가포르인 의사 가족이었다. 4인 가족이 사는 이 집은 아마도 그들의 세컨드 하우스인 듯했다. 3개월 그곳에 머무는 동안 집주인 가족이 온 것은 딱 한 번,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뿐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그 큰 집에서 나 혼자 지냈다. 감사합니다 ^^

쥴리는 내 숙소에서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콘도에서 결혼을 약속한 중국계 싱가포르인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집이 가까워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글렌과 쥴리 남자친구와도 몇 번 같이 보기도 했다.

쥴리 남자친구는 민간 콘도와 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글랜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Got condo and car some more!
He damn rich lah!

우리나에서도 미혼인데 집과 차를 가지고 있으면 와!라고 하는데 싱가포르에서 미혼에 민간 고급 콘도 + 차를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는 인식이 있다. 기혼자의 경우 주택 보조금, 양육 공제, 세금 감면 혜택이 많은데 미혼자의 경우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싱가포르도 우리나라처럼 출산율이 낮아

부모가 되면 국가가 챙겨준다

는 기혼 중심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차는 '사치품'이다

현대 아반떼 같은 소(중)형차도 1.3억~1.5억이다!!

- 차 가격 : 3-4천

- COE : 1억

- 세금+등록비 : 1천

COE는 10년짜리 차량 등록권을 말하는데 차량 구매 시 꼭 사야 한다. (중고차도 무조건) 싱가포르는 서울의 1.2배 정도의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도로 혼잡을 막기 위해 COE로 차량 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매주 COE의 공급량을 제한하고, 수요자들이 입찰하는 방식이다. 바로 '경매'를 통해 차량 등록권을 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격이 유동적이다. (차의 등급별로 카테고리가 나눠지는데 1600cc 아래의 소중형 차는 category A에 해당한다. 카테고리 A의 가격은 2025년 5월에는 1억을 넘었다가 6월에는 9천2백 정도까지 내려왔다.)

COE만 해도 한국에서 외제차 1대를 살 수 있는 돈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10년 후에는 다시 새 COE를 경매로 구입해서 연장하거나, 차를 폐차시키거나 수출해야 한다.


싱가포르 친구들에게 내가 한국에서 차를 샀다고 했을 때 모두 우와!!! 라며 멋지다고 해주었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보다 훨씬 싼데^^)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올 때면 꼭 내 차를 태워줬다. 싱가포르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내 주변에 차 있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ㅎ

쥴리는 나에게 다양한 외국인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중국 친구들뿐만 아니라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유럽 친구들을 소개해줬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친구 중 한 명은 인도네시아 친구 찬다니다.

쥴리는 싱가포르 컨벤션 센터에서 이벤트 매니저로 근무했다. 쥴리가 싱가포르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중국어 학원을 다닐 때 친해진 친구가 바로 찬다니였다. 한 번은 쥴리, 나, 찬다니, 찬다니 남편 4명이서 만났었다.


찬다니는 자신의 결혼 스토리를 이야기해 주었다. 찬다니는 인도네시아에서 굉장히 어렵게 자랐으며, 농촌에서 부모님은 물 기르는 일을 하셨다고 했다. 성인이 된 찬다니는 호텔에서 근무를 했는데, 싱가포르에서 출장 온 뱅커(Banker) 찬다니 남편이 그 호텔에서 묶게 되었다. 남편 분은 밝게 웃는 찬다니에게 반했고, 출장 이외에도 몇 번 더 그녀를 만나러 인도네시아에 날아왔다. 서로 사랑에 빠진 둘은 결국 결혼해 남편이 그녀를 싱가포르로 데리고 왔다고 했다. 마치 신데렐라 스토리 같았다.

여기서 찬다니 남편 분의 직업인 ‘뱅커’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

싱가포르의 뱅커는 한국의 은행원과는 조금 다르다. 싱가포르에서 뱅커는 부자 또는 고소득 전문적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싱가포르는 세계 4대 금융허브(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중 하나이다. 글로벌 IB(투자은행), PB(Private Bank), 헤지펀드가 모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골드만삭스, JP모건, UBS, Citi 등이 있다.


전 세계의 초고액자산가들이 돈을 맡기고 그 돈을 굴리는 게 '뱅커'이다. 탑티어 투자은행의 경우 보통 25~30대 초반에 억대 연봉이 가능하며, 성과급 비중이 높아 연말 보너스가 수억원인 경우도 많다. 뱅커는 싱가포르 청소년들의 선망하는 직업 탑 3 중 하나이다.

은행이 많이 모여있는 싱가포르의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중앙 비니지스 지구)에 가면 이런 스타일을 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쥴리의 일본인 친구도 뱅커였는데 정말 위에 올린 이미지랑 정말 비슷했다.

여담이지만 싱가포르에는 Ladies’ night이라는 문화가 있다. 클락키, 마리나베이, CBD 같은 번화가에 위치한 바에서 매주 수요일 밤만 특별히 여자에게 무료로 술을 제공하는 요일 이벤트이다. 싱가포르 친구가 알려줬는데, CBD의 바들에는 수요일 밤이 되면 ‘뱅커’들을 만나기 위해 예쁘게 꾸미고 오는 여자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



나랑 쥴리는 쥴리가 쉬는 날이면 같이 센토사에 자주 놀러 갔다.

4계절이 여름이다 보니 너무 더워 우리는 센토사 해변에서 수영을 많이 했다. 항상 갈 때마다 우리 둘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센토사 해변 바로 앞 수영장에 수영을 했다. 가끔 모르는 대형견, 쥴리, 나 셋이서만 해변에서 수영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한 싱가포르 친구에게 그걸 말했더니 화들짝 놀래며 말해줬다.

야! 거기 물 더러워서 보통 수영 안 해.
센토사 바다에 배들이 많이 다녀서 너희 피부병 걸릴 수도 있어!!


바보 같이 그것도 모르고... 둘 다 외국인인데 그걸 어떻게 아니.. ㅠㅠ

센토사에는 우리 같이 섬에 놀러 온 관광객도 많지만 부자들도 많았다. 센토사는 부자들이 직접 살거나 별장을 가지고 있는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Sentosa Cove는 외국인이 토지를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지역이어 전 세계 슈퍼리치들의 거주지 or 투자처로 인기가 높다.

왜 세계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몰릴까?

싱가포르는 '부의 피난처'이자 '자산 관리의 천국' 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없음****

자본 이득세: 없음

해외 소득: 비과세

법인세: 17%

개인 소득세 최고 세율: 22%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핀란드: 개인 소득세 최고 세율 57.3% (세계최고)

한국: 개인 소득세 최고 세율 45%

이러니 부자들이 안 올 수가 없다!


초고액 자산가들(보통 3천억 원 이상)은 재산을 세금 없이 후손에게 물려주고 운용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한다. 패밀리 오피스란 초부유층 가문이 가족 자산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만든 개인 전용 자산운용회사를 말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런 부유층을 유치하기 위해 패밀리 오피스에 대한 세금 감면은 물론 영주권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다.

영어 사용하지, 안전하지, 깨끗하지, 좋은 국제 학교 많지, 세금 엄청 낮지, 그러니 세계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모이는 것이다.


또한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도 싱가포르로 모인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 전략적 위치, 우수한 인프라, 그리고 글로벌 시장 접근성 덕분이다.

한 프랑스 친구는 싱가포르에서 테크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싱가포르에서는 신생기업 세금 감면 제도가 있어 3년간 소득의 50~75%까지 세금을 깎아주는 혜택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굳이 먼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하루는 프랑스 친구가 우리에게 프랑스로 한 번 놀러 오라며 휴대폰으로 자기 집(family house)을 보여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집 안에 게임장, 영화관, 사우나가 있었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있는 대저택이라 나는 엄청 놀랐는데 쥴리와 친구들은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유럽은 저택에 사는 경우가 많이 있고, 쥴리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다들 그 정도 집에 살아서 별로 놀랍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많이 놀랐는데.. 이 친구들 뭐지..? 갑지기 친구들과의 격차를 조금 느꼈다.


사실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며 싱가포르의 최고 부자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들의 문화를 속속들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HDB 1평 가사도우미방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로또 노리는 서민들, 1000억이 넘는 대저택에 사는 싱가포르 사람들과 외국인들까지


같은 나라, 같은 도시 안에서 이렇게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싱가포르는 정말 위로 위로 올라갈수록 상상 이상의 부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화려함 뒤에는 1편에서 본 현실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 부자들의 천국과 70대 할머니가 접시를 치우는 호커센터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싱가포르였다.



다음 주에는

싱가포르 교육, 개천에서 용이 날까?

싱가포르 교육에 대해 자세히 파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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