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산업 가치사슬의 역주행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미군으로 참전했던 아버지와 ‘타임’지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일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네크(William Heinecke)는 1963년 14세의 나이로 부모를 따라 태국의 방콕에 자리 잡게 됩니다.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윌리엄은 방콕 국제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그는 ‘방콕 월드’라는 잡지에 매주 칼럼을 연재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원고료 대신 잡지의 광고면 일부를 할애받았습니다. 17세가 되던 해에 그는 방콕 월드의 광고 담당자 자리를 넘겨받고 그로부터 1년 뒤에 사무실 청소 용역 업체인 Inter-Asian Enterprise와 라디오 광고 대행사인 Inter-Asian Publicity를 창업하게 됩니다.
창업 후 3년째가 되던 해 그는 두 사업체를 매각하고 얻은 수익으로 마이너 홀딩스(Minor Holdings)를 세우고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을 태국에 들여와 요식 사업에 진출하여 꾸준히 확장해갔습니다. 1978년에는 파타야에 작은 규모의 로얄 가든 리조트(Royal Garden Resorts)를 개관하면서 호텔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호텔 사업에 있어서도 요식 사업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브랜드들을 적극적으로 들여와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해가게 되는데, 포시즌이나 매리엇과 같이 전 세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호텔 브랜드들에게 호텔의 운영을 위탁하면서 마이너는 투자자로서 호텔 포트폴리오를 늘려갑니다.
현재 마이너 인터내셔널(Minor International)은 110여 개의 호텔에 총 14,000여 실의 객실을 보유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호텔 회사들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규모의 호텔 포트폴리오는 상당 부분이 독자 브랜드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너는 2001년 후아힌에 건립한 리조트에 글로벌 브랜드를 도입하는 대신 아난타라(Anantara)라는 독자 브랜드로 개관했습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아난타라 브랜드는 현재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28개의 고급 리조트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아난타라는 스파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한 중소규모의 고급 리조트라는 상품의 포지셔닝과 동남아 리조트 시장을 주요 대상 시장으로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국내에 인지도가 높은 반얀트리(Banyan Tree)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 또는 가치사슬에 있어서도 굳이 호텔만을 고집하지 않고 스파와 같은 요소들을 독자적 상품으로 제공한다는 공통점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사업의 시작에 있어 반얀트리가 처음부터 외부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성장해온 반면, 아난타라는 글로벌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축적해온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마이너의 사업 모델이 진화해간 경로는 소유와 운영이 분리된 가치사슬로 시작하여 글로벌 브랜드들의 전문성을 흡수한 후, 결국에 가서는 소유와 운영이 일체화된 고전적 가치사슬로 진화해 갔습니다. 즉 일반적인 브랜드의 진화 과정과는 반대의 경로를 취한 셈입니다. 다만, 지역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요식 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애초에 국제적인 인지도가 있던 태국의 스파 산업은 이들이 처음부터 호텔 운영의 일부에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주저하는 입지의 리조트들은 어쩔 수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해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두 가치사슬에 동시에 기반한 사업 모델을 병행할 수밖에 없기도 했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애초에 호텔 운영 비즈니스를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소요되는 투자와 수고를 덜기 위해 글로벌 브랜드들을 도입했음에도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는 마이너의 입장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상당 부분 사라진 상황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이너는 자연스레 기존에 도입한 글로벌 브랜드들과 갈라서며 독자 브랜드를 론칭하기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