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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Sep 17. 2018

미국의 도시화

근대 부동산 패러다임의 배경

초창기 미국의 대부분은 시골 지역이었습니다. 179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95%가 시골 지역에 살았고, 도시 지역에 사는 미국인의 5% 또한 대부분 작은 마을에 살았었습니다. 오직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만이 15,000명 이상의 주민을 가지고 있었고 남부는 거의 대부분 시골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1830년 이후에는 도시 지역이 시골 지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산업화의 물결은 1890년까지 도시들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고 미국인의 35%가 미국 북부에 있는 도시 지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반면 남부는 뉴올리언스와 몇몇 작은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시골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수는 1920년까지도 시골 지역의 거주자를 초과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까지 미국인 4명 중 3명이 도시 지역에서 살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텍사스, 애리조나, 동부 해안을 따라 들어선 남부 지역이 점차 도시화되었습니다.



도시의 성장


19세기 중반까지 도심부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곳이었습니다. 상인들, 변호사들, 제조업자들은 그들이 일하는 부두, 창고, 사무실, 법원, 상점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타운하우스를 지었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은 주로 도심의 뒷골목을 차지했습니다. 도심부의 시장, 상점, 술집, 콘서트 홀은 이들에게 다양한 편의와 오락을 제공했습니다. 한편, 중산층은 도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 살았고 교외에는 주로 빈곤층이 거주했습니다. 이들은 경제와 행정 서비스, 시계탑, 물 펌프, 쓰레기 수거와 같은 편의 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이나 상점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에 살아야 했기 때문에 도시들은 높은 인구밀도를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가로는 보행자와 마차를 겨우 수용할 정도로 좁았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진행된 산업혁명은 도시 지역의 생활 방식을 변화시켰고 사람들에게 생활수준 향상에 대한 높은 기대를 심어주었습니다. 교통망과 주택 건설 기술의 혁신으로 늘어난 일자리는 도시로의 이동을 더욱 촉진시켰습니다. 특히 19세기 들어서 급격하게 발달한 교통망, 즉 철도와 전차는 도시의 경계를 확장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웃들과 가까운 곳에 살기를 원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이상 도심부에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창고, 공장, 부두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에 단독주택지를 형성했습니다. 대신 도심부에는 업무시설, 상점, 경공업 공장들이 채우게 되었습니다. 강과 철도를 따라서는 원자재 수입과 완제품 출하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는 중공업 공장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철도는 또한 완제품들을 도심부까지 들여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19세기 후반까지 상업지역, 업무지역, 산업지역, 주거지역 등 특화된 공간들이 도시의 풍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부자들은 도시의 변두리나 시골의 넓은 대지에 저택을 지어서 그들만의 독립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투기꾼에 의해 지어진 비슷하게 생긴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들이 도시의 외곽에 속속 들어섰습니다. 이러한 주거지역은 새로운 화이트 칼라 중산층에게도 퍼져나갔습니다. 집들은 더 넓은 길에 접했고 집 앞과 뒤에 더 넓은 정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 집은 넓었고 발코니, 현관 또는 기타 편의시설을 여유롭게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1900년까지 도시 거주자의 3분의 1 이상이 자가를 소유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중산층이 도심부의 부산함과 공해를 떠나 외곽으로 이주해가면서 빈곤층, 즉 시골에서 이주해온 이들과 이민자들이 도심의 낡은 주택지로 몰려들었습니다. 지주들은 도심의 주택을 아파트로 분할하거나 조악한 임대주택을 지어 이러한 주택 수요를 흡수했습니다. 이민자들은 값싼 주택과 도심부의 직장을 찾아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부자들은 교외의 주거지역에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도심부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1870년에서 1920년까지 50년 동안 도시의 미국인은 1천만 명에서 5천4백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도시의 인구가 더욱 성장하고 인근 지역들을 흡수하면서 지리적으로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1898년에 뉴욕시는 브루클린, 퀸즈, 브롱스를 County와 같은 개념의 자치구인 Borough로 편입했습니다. 시카고의 인구는 1870년 약 30만 명에서 1890년에는 100만 명 이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도시 주민의 4분의 3은 미국 밖에서 태어나 이주해온 이들로 일부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안락한 삶을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심각한 빈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빈곤층은 도시 외곽에 살고 있는 부자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했기 때문에 부자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도시는 지방 정부가 깨끗한 물, 쓰레기 수거, 하수 시스템을 더 넓은 지역으로 충분히 확장하기 전에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도시의 거주 환경은 급격하게 악화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도시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크고 혼잡하며 비인간적인 장소였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부패가 지방 정부와 공공 행정 서비스, 건설업, 그리고 집주인과 고용주 사이에 만연했습니다. 전례 없는 경제 성장의 한가운데서 높은 임대료, 낮은 임금, 형편없는 공공 서비스들이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냈습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진보주의 운동은 부분적으로나마 부패의 척결, 주택 법규 입안, 공공 의료 서비스 및 공공 행정 서비스 감독 기구를 설립하는 데 성공합니다. 1930년대의 뉴딜과 1960년대의 빈곤과의 전쟁 정책을 통해 도시 문제에 대한 정책적 해결이 시도되지만 1920, 1950, 1980년대의 재정 지원 감소는 이러한 노력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20세기 지역 개혁 운동의 결과로 투표를 통한 부패한 공직자들의 축출과 개혁자로의 교체가 가능해졌습니다.


기동력의 향상, 주택 보유 비율의 상승, 교육 기회의 확대, 물가의 안정은 19세기 도시 생활의 많은 단점을 완화시켰습니다. 비록 가난한 지역에 혜택이 적게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환경 미화 프로그램, 전력의 보급, 그리고 도서관, 공원, 놀이터, 수영장 등의 건설은 20세기에 도시 생활을 점차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와 20세기 도시의 빈곤, 특히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의 저임금이 사회적 문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착촌 운동과 같은 미국의 개혁 운동은 일반적으로 실업, 불완전 취업, 기술의 낮은 숙련도, 저임금 같은 빈곤의 원인보다 주택난, 열악한 공공보건, 부패 등 빈곤의 결과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1900년부터 1950년까지 많은 노동자들, 특히 숙련된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과 이익을 증대시키도록 했지만, 그 결과로 숙련된 공장 노동자들이 서비스 고용으로 대체되면서 임금 수준과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미국 노동부는 미국 노동자의 평균 연봉이 1979년의 31,317달러에서 1999년 33,244달러로, 물가인상률을 감안했을 때에는 실질적으로 떨어진 셈이라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살인은 19세기 후반까지 드문 일이었지만, 도심부에서는 발생률이 증가했습니다. 도심부에서 강도나 절도 같은 강력 범죄는 흔한 일이었고 매춘은 전보다 더 공공연하게 번성했습니다. 더군다나 천박한 신문들은 선정적인 기사로 범죄의 증가를 과대포장했습니다. 그러나 질서를 유지하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경찰이 공식적으로 편성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였습니다. 한편, 금주법이 시행되었던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도심의 범죄 집단들이 불법적인 주류의 제조, 수입, 판매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면서 조직범죄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 범죄 집단들은 도박, 매춘, 마약은 물론 합법적인 사업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갔습니다. 경찰과 판사는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연방 정부가 범죄자들의 소탕에 나서면서 조직범죄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급속도로 퍼져나간 마약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교외에 분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부의 강력 범죄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이는 중무장, 훈련 강화, 높은 교육 수준을 포함하여 도시 경찰의 전문화를 촉진시켰습니다. 한편, 범죄율은 1990년대 말 고용률이 높아지면서 줄어들게 됩니다.


도시 지역은 계속 팽창되어 갔지만 도시의 경계는 대부분 20세기 초에 확정된 이후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인구는 1950년대까지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공장들은 노동력이 더 싼 남부, 남미, 그리고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도시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도시는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지역은 오히려 교외 지역이었습니다.


교외의 확산


교외 지역은 18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부자들이 붐비고 무더운 도시의 여름을 벗어나기 위해 시골에 별장을 지으면서였습니다. 19세기 초에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별장을 지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차를 타고 시내로 통근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통근 철도가 개통되면서 거주지역이 더욱 넓게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교외 지역은 거의 전적으로 주거지역이었고 도심의 경제 활동에 의존하여 발전해갔습니다. 철도 요금이 비교적 높았기 때문에 산업 지역이나 항구 주변에 들어선 일부 교외 지역을 제외하면 이러한 교외 지역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부유한 미국인들의 전유물로 남아있었습니다.


미국은 갓 결혼한 참전용사들이 살 곳을 찾으면서 1940년대 말 주택난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들에게 실업과 교육 수당, 주택, 농장, 사업 융자를 제공했던 GI 법안이 발효되면서 주택 구입의 물결이 일어나게 됩니다. 몇몇 개발업자들은 주택에 대량 생산의 원칙을 적용해서 중간 규모의 부지에 거의 동일한 주택을 건설했습니다. 이러한 교외 개발은 광범위한 중산층의 일부 계층을 겨냥하여 다변화 되었습니다. 어떤 단지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중역들에게, 다른 단지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중산층에게, 또 다른 단지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단지들은 사회적 지위, 종교, 인종 등에 있어 실질적으로 균일한 커뮤니티를 형성했습니다.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른 면에서도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한 부부들은 이제 막 그들의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비붐은 교외에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곳의 여성들은 주부였고 남편들은 도시에서 일했습니다. 가족들은 사생활을 소중히 여겼고 도시에 남거나 다른 곳에서 살았던 다른 친척들과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안락하면서도 고립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종종 이웃 몇 명을 알고 지내며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자가용을 타고 쇼핑센터를 오갔습니다. 비록 자동차가 가장 보편적인 교통 수단이기는 했지만 이 새로운 교외에 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일하러 가기 위해 철도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연방 정부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에 보조금을 지급했고 도시와 교외 사이를 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건설함으로써 교외의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교외 지역이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중산층들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교외 지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력적이었는데, 우선 거주 환경이 깨끗했고 재정이 풍족한 학교가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도 동질적이어서 안정감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도시 거주자들이 오랫동안 찾고 있던 것, 즉 더 넓은 마당과 더 많은 프라이버시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교통 혼잡, 높은 세금, 높은 범죄, 빈곤 등 도시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교외 지역은 도심으로부터 행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료주의와 부패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교외로 이주함에 따라 상점들이 뒤를 따랐고 주민들은 쇼핑을 위해 도시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교외의 쇼핑몰이 보편화되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몇몇 대형 쇼핑몰들은 소비와 오락의 중심이 되었다. 다른 작은 쇼핑몰들에는 음식과 하드웨어 같은 기본 아이템을 판매하거나 드라이클리닝과 필름 가공과 같은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점들이 들어섰습니다.


교외 주택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변화를 겪었습니다. 개별 부지에 있는 단독주택 외에도 타운하우스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습니다. 은퇴한 부부들은 더 작은 장소가 필요했고 높은 이혼율은 가구 단위를 축소시켰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교외의 생활 방식이 갖는 이점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인구가 교외로 이주해가면서 고용주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직원들은 도시를 둘러싼 넓은 교외에 분포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심의 사업장이 항상 편리했습니다. 그러나 도심의 교통 체증, 교외의 법인세 인하 및 낮은 범죄율은 결국 기업들을 교외로 이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업무지역과 기업의 캠퍼스는 많은 근로자들이 사는 교외 지역에 화이트 칼라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창고, 경공업 공장, 그리고 다른 사업체들이 교외에 점점 더 많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장소들은 대중교통에 의한 접근성이 취약했고 근로자들은 자동차로 통근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 로스앤젤레스와 달라스처럼 급격하게 성장하는 대도시 인근에서 나타났으며 이후에는 북동부와 중서부의 오래된 대도시에까지 확산되었습니다.


교통 체증은 도시는 물론 교외에서 증가하기 시작했고 미국인들은 출퇴근 시간, 학교, 쇼핑, 사교 행사뿐만 아니라 교통 체증과 사고를 처리하는 데에도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는 아침에 도시로 유입되고 저녁에 도시에서 유출되는 단순하 교통의 패턴이 성립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외 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와 도시 사이의 모든 방향으로 교통량이 증가했습니다. 교외 사업장에는 직원들이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거대한 주차장이 필요했습니다. 버스, 기차, 전차 같은 대중교통은 넓게 분산된 근로자들을 직장으로 데려다 줄 수 없었습니다. 교외의 교통 혼잡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었고 교통 체증과 긴 출퇴근 시간은 일상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외의 확산이 미국인들의 생활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닙니다. 정부 기관, 법원, 대학, 연구 병원, 프로 스포츠 팀, 극장, 예술 집단을 포함한 몇몇 기능들은 여전히 도심에 남아있었습니다. 20세기 말 경제 호황으로 확대된 트렌디한 쇼핑, 고급 레스토랑, 유흥 문화가 많은 도시에서 인기를 끌면서 몇몇 도시 지역들을 활성화시켰습니다.


미국의 20대 대도시와 그밖에 도시화된 지역에서는 평균적으로 인구의 41%가 도시에 살고 있고 59%는 교외, 도시, 이와 연계된 시골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은 프라이버시, 더 많은 공간,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도시 지역의 경계를 주시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오래된 교외 지역이 새로운 교외 지역과 도시에 인접한 시골 지역에 인구를 잃고 있다는 것이 명확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교외 지역이 주요 도시의 외곽에 생겨나면서 오래된 교외 지역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젊고 부유한 사람들이 새로 개발된 주택을 찾아 이주하면서 도시와 오래된 교외 지역의 조세 기반이 무너진 것입니다. 노후화와 무관심으로 인해 주택 보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주택 가격이 하락하여 세수가 감소했습니다. 한정된 수입과 취약한 건강 상태를 가진 노인들만이 오래된 교외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는 세수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보장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풍부한 부동산 세금 기반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학교들은 질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이주하도록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빈곤층이 오래된 교외의 더 싼 주택으로 이주해오게 됩니다. 오래된 지역에서 빈곤율이 증가하면 범죄율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결국 경제적 기반이 다각화되지 못한 오래된 교외 지역들은 도심보다 더 절망적인 재정난에 처하게 됐습니다.


교외 거주자들이 원래 추구했던 안락함과 안전은 20세기 말경에 이르러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가 되었고 폐쇄적인 벽으로 둘러싸인 주택 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외부 위협에 대한 가장 명시적인 불안감의 표출이었습니다. 이제는 출퇴근의 번잡함을 피하고 더 많은 여가 시간과 더 강한 공동체 의식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이 더 작은 마을이나 시골로 이동해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휘발유 가격의 상승은 자동차를 이용한 통근을 부담스럽게 만들면서 이와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될 수 있지만, 인터넷과 이메일 같은 정보 기술은 아마도 더욱 더 도시 밖으로 인구를 분산시키게 될 것입니다.



* 본 글은 The USA Online의 'Urbanization of America'를 번역한 글입니다. 단순히 참고자료일 뿐이며, 이 글의 관점은 번역자의 관점과 무관합니다. 또한 원문의 작성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비교적 오래 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사회적 환경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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