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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Oct 16. 2018

화폐와 통화

미국 패권의 실질적인 동력

근대  화폐의 등장


자본주의는 모든 경제적 가치를 화폐의 단위로 표현한다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근대적인 화폐가 탄생한 초창기에는 그 자체로서 소비 대상의 가치를 지닌 금속 화폐가 보편적으로 사용됐었습니다. 그러나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금속 화폐들은 오늘의 화폐처럼 직접적으로 사용되기보다 금세공인들의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신 상업혁명 시기의 금세공인들은 금속 화폐를 맡긴 이들에게 보관증을 발행했는데 이 보관증이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화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 금세공인들의 탐욕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행한 보관증이 화폐의 기능을 대체해가면서 실제로 맡긴 금속 화폐를 되찾으러 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금세공인들은 보관하고 있는 금속 화폐를 다른 이들에게 빌려주며 이자를 받기도 했고 보관하고 있는 금속 화폐의 가치를 초과하여 보관증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이 맡긴 금속 화폐로 엉뚱한 금세공인이 부를 축적해가자 금속 화폐를 맡긴 이들의 항의가 있기는 했지만 벌어들인 이자를 나누기로 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되었습니다.



통화와 기축통화


금세공인들은 본업보다 금속 화폐를 기반으로 한 보관증의 유통에 주력했고 이는 은행으로 제도화되었습니다. 그러자 각지에서 크고 작은 은행들이 수없이 생겨났고 수많은 종류의 보관증이 화폐로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은행들 간에 경쟁이 발생했고 무분별하게 발행된 화폐의 가치는 떨어졌으며 파산하는 은행들도 생겨났습니다. 즉 민간 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신뢰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고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대한 일률적인 규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입니다.


1844년 영국에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얻게 되면서 실질적인 중앙은행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슷한 형태의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화폐의 발행과 유통을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축통화는 단연 산업혁명의 진원지로 세계 경제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영국의 파운드였습니다. 당시 영란은행은 1파운드당 123.27그램의 금화인 1 소버린으로의 교환을 보장하는 금본위제를 표방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의 환율이 금을 기준으로 고정되었고 국가 간의 교역이 활발해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영국은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폐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붙잡은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미 영국을 앞지른 산업 생산력으로 군수물자의 공급을 실질적으로 독점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영란은행의 금을 연방준비은행으로 옮겨 담기 시작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영국과 미국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금의 3분의 2를 보유하고 있었고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는 파운드를 앞서고 있었습니다. 결국 1944년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협정을 통해 각국의 통화가 금본위제의 미국 달러에 고정되었고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의 왕관을 이어받았습니다.


미국의 달러 패권


한편, 미국 달러 또한 비슷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1950년대의 한국전쟁과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건설 사업, 그리고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 지출을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선택은 금의 보유량을 초과하여 화폐를 새로 발행하는 양적완화였고 국제사회에 유통되는 달러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달러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졌습니다. 이 문제를 인지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금 태환을 요청했고 유럽 여러 국가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주인공인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무렵에는 미국의 금 보유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국 닉슨은 1971년 미국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금본위제에 공식적인 사망 선고를 내렸습니다. 사실 닉슨의 선언은 미국이 주도했던 브레턴우즈 협정의 일방적인 파기였습니다. 그러나 금 대신 미국 달러를 사들였던 여러 국가들은 달러가 기축통화로 남기를 원했고 미국의 일방적인 선언은 별다른 소동 없이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시기부터 화폐는 금과 같은 실질적 가치에 기반을 두지 않는 신용 화폐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명목상 신용 화폐인 미국 달러는 사실 석유의 결제 통화로서 기축통화의 자리를 오랜 기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1973년의 오일쇼크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경제적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석유의 수출을 제한하는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석유를 미국 달러로만 결제해 수출한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즉 미국 달러가 금이 아닌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통화가 된 셈인데 석유가 '검은 황금'으로 불리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유가의 결정권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넘어가면서 힘을 잃는 듯 보이더니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하며 미국 달러 패권의 건재함을 과시합니다.


인플레이션의 수출


오늘날 미국의 통화 체계는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에서 시작됩니다. 시중 은행들은 이 국채를 연방준비은행이 발행한 화폐와 교환하여 재무부에 대금으로 지불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국채의 발행을 통해 확보한 화폐로 공무원의 임금과 공공사업이나 복지 정책에 대한 재원을 확보합니다. 한편, 이러한 정부의 지출은 다시 시중의 은행들에 예금의 형태로 돌아오는데 은행들은 10% 내외의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다른 은행, 기업, 개인에게 대출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마법과 같은 자본의 증식이 일어납니다. 은행은 실제로 맡겨진 예금의 9배에 이르는 금액을 대출해줄 수 있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이 10배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국가가 화폐를 새로 발행하고 은행이 이를 기반으로 유통되는 화폐를 늘리면 화폐의 가치는 하락하게 됩니다. 화폐의 가치 하락은 재화나 자산의 실질적인 가치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물가상승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를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2016년 서울시의 자장면 평균 가격은 4,710원으로 20년 전인 1996년의 2배에 육박하며 이 기간 동안 가격은 매년 평균 3.3%씩 올랐습니다. 그렇다고 2016년의 자장면이 20년 전에 비해 2배로 맛있어졌거나 양이 많아진 건 아닙니다. 단순히 화폐의 가치가 2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을 뿐입니다.


기축통화는 국가 간 분업 체계와 자유무역의 생명력을 갖는 데 있어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혈액의 순환이 시작되는 미국은 전 세계 경제의 심장과 같습니다. 국가 간 분업과 자유무역은 그동안 산업화의 물결에서 소외되었던 여러 국가들이 산업화와 그에 따른 고성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에 의한 고성장 뒤에는 필연적으로 성장의 정체가 뒤따르게 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기축통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고성장의 열매를 흡수하는 동시에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그들과 나눌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전 세계 경제 체제가 미국에 종속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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