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의 역사라는 글에서 수학이 실생활, 특히 부동산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제를 조금 확장해, 인류가 왜 그토록 수학에 집착하며, 수학이 실생활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수학과 실생활
수학은 홍수로 나일강이 범람한 후 토지를 재분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습니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1차원적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의 법칙에서 수학적인 규칙을 찾아내 다가올 일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후, 인도 상인들이 ‘0’이라는 숫자를 쓰기 시작하고, 아라비아의 수학자가 숫자와 기호로 수학적 규칙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체계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면, 자연의 법칙을 왜 굳이 글이 아닌 숫자와 수식으로 표현해야 했을까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글과 달리 숫자나 수식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습니다. 즉, 비록 주제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에 있어 오해의 여지는 많지 않은 수단인 셈입니다. 그리고, 다가올 일을 예측하는 데 있어, 글은 글쓴이의 주관에 의존하는 바가 큰 반면, 수학은 이미 발생했던 사건에서 찾아낸 규칙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입증’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적 성과들은 고도로 발전한 수학적 기법들을 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린 스마트폰,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를 무너뜨린 인공지능, 사람의 손길 없이도 원하는 곳까지 데려가 주는 자율주행 등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이들이 더욱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데이터들을 분석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수익률을 최대화하는 로보 어드바이저를 활용하지 않는 증권사가 요즘에도 과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쏟아지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그 데이터들을 소화하거나 뱉어내야 하는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성인이 되면서 어린 시절 지겹도록 풀어댔던 수학 문제들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보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실생활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칼라와 벡터
어린 시절 수학 수업 시간에 벡터와 스칼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스칼라는 물리적 현상을 크기로 나타내는 개념인 반면, 벡터는 크기와 함께 방향까지 함께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속도(velocity)’와 ‘속력(speed)’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풀코스(42.195km) 마라톤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A라는 선수가 완주하는 데 2시간이 걸렸고, B라는 선수가 완주하는 데 3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A와 B의 평균 속력은 각각 시속 21.1km와 시속 14.1km가 됩니다. 그러나, 두 선수의 평균 속도는 동일하게 시속 0km가 됩니다.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 두 사람 모두 위치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속력은 스칼라, 속도는 벡터의 개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기하학, 조금 더 정확하게 유클리드 기하학은 스칼라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크기와 관련된 이론일 뿐, 움직임이나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삼각함수가 되기 전까지의 얘기이긴 합니다. 어쨌건, 부동산과 관련하여, 기하학의 발전은 아무리 복잡한 형태를 갖는 건물이라 하더라도 공간의 크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그 공간의 건설에 필요한 자재의 물량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한편, 시장은 촌각을 다투며 움직임이고, 그 방향에 많은 이들이 일희일비합니다. 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을 시각화한 대표적인 사례가 주식 차트일 것입니다. 주식 차트는 주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남기는 자취로, 일정한 크기를 갖는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취는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자취가 움직이는 방향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차트가 움직이는 방향은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거나 나가는 데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주식 차트는 벡터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통적으로 일정한 형태나 패턴을 수학적으로 나타내는 스칼라와 벡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칼라가 이미 완성된 형태나 패턴의 크기를 수학적으로 측량하는 것인 반면, 벡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형태나 패턴의 진행을 수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은 스칼라가 아닌 벡터입니다.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는 가장 큰 이유가 그 주식의 가격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주식 차트는 벡터일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좌표 공간과 함수
상대적으로 계산이 쉬운* 스칼라를 벡터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좌표 공간이라는 무대가 필요합니다. 만약 어떠한 결과값이 단일한 변수의 영향에 따라 결정된다면, 이동 또는 변화의 원인인 독립변수를 나타내는 x축과 그로 인한 결과인 종속변수를 나타내는 y축이 필요한 셈입니다. 그리고 좌표 공간에서 일정한 형태나 패턴의 궤적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의 '함수(function)'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관적으로 전망이 좋아 보이지만 주기적으로 주가의 등락을 반복하는 주식을 매수하고자 할 때, 언제 얼마나 매수하는 것이 맞을까요? 단순히 주식 차트만 놓고 판단하자면, 주가의 궤적을 나타내는 함수에서 특정 시점의 기울기, 즉 미분 값이 (-)에서 0으로 바뀌는 변곡점이 저점일 것이므로 매수에 가장 좋은 시점일 것입니다. 또한, 이 주식을 매도하여 이익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그 함수의 미분 값이 (+)에서 0으로 바뀌는 변곡점이 고점일 것이므로 매도에 가장 좋은 시점이 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함수의 미분 값이 언제 0으로 바뀔 것이냐 하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주가와 같은 시장지표가 고점에 이를 때에는 성장세가 둔화되다가 점차 0으로 수렴해가는 패턴을 보입니다. 즉, 미분 값만 두고 보면, 밑이 1보다 작은 지수함수에 가깝습니다. 반면, 시장지표가 저점에 이를 때에는 하락세가 둔화되다가 점차 0으로 수렴해가는 패턴을 보입니다. 즉, 밑이 1보다 큰 로그함수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지수함수나 로그함수를 통해 미분 값을 추정하고, 그 미분 값을 통해 주가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위에 언급한 미분, 지수함수, 로그함수에 대한 얘기는 주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보일 경우에 한하여 적용됩니다. 즉, '시간' 외에 다른 독립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눈치 싸움을 하며 매수와 매도 시점을 결정해야 하는 주식 시장에서 이 지수함수와 로그함수는 급격하게 뒤집힐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패턴에도 일정한 규칙이 나타나고,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수학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주식을 비롯한 금융자산 투자자들의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채권금리와 거래물량으로 보입니다. 채권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서 채권 시장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건 거래물량이 단기간에 급증하면 '군중심리'에 휩쓸려 몰려들거나 빠져나가는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비효율적 시장
자본시장의 가격이 이용 가능한 정보를 충분히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어떤 투자자도 이용 가능한 정보를 기초로 한 거래에 의해 초과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고 합니다. 시카고대의 유진 파마 교수가 1970년에 주창한 이론입니다. 한편, 같은 해에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예일대의 로버트 쉴러 교수는 시장의 비효율성에 주목하여 닷컴 버블 붕괴를 예측한 바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시장은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조금 더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워런 버핏 또한 "시장이 효율적이었다면, 나는 길거리의 부랑자였을 것이다"라며 시장이 비효율적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사실, 워런 버핏 같은 투자의 대가라면 시장의 기회를 알아채기 위해 위에 말한 복잡한 수학적 방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직관을 따라 신속하게 행동에 옮기는 것만으로 적기에 기회를 붙잡는 데 충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투자를 통해 자산소득을 얻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워런 버핏 같은 직관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즉,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 대가들의 생각을 최대한 가깝게 흉내 내는 정도가 최선일 것입니다.
수학적인 접근 방법은 여기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수학적 해법은 명확한 정답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누구에게나 똑같은 문법으로 전달됩니다. 즉, 오해의 소지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가들의 생각에서 나타나는 규칙이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시장은 효율적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투자의 대가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말이나 글을 통한 것들이어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또한,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관은 삼각함수를 따라 움직이는데, 이를 1차함수로 풀어 설명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이에 해당됩니다. 즉, 아직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최근의 기술적 혁신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길었던 터널의 끝에 서광을 비추는 것 같습니다.
* 비슷한 형태나 패턴을 갖는 스칼라와 벡터가 있을 때, 형태나 패턴이 단순할수록 스칼라의 개념을 통해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쉽습니다. 아래의 예처럼, 반지름이 r인 원의 넓이를 구하는 것이라면 굳이 좌표 공간에서 적분을 할 필요가 없는 셈입니다. 그러나, 형태나 패턴이 복잡하고 불규칙적일수록, 벡터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는 측정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