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온도
변화무쌍한 매일이 계속되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뒤바뀌고 내일 또한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번지르르한 탕후루 같은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데 매번 실패다.
읽을만한 책이 없어 한동안 방황했는데 읽고 싶은 책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코를 박고 하루종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쿰쿰한 종이 냄새.
그럴 때 나는 행복해진다. 무료한 일상은 기대 가득한 내일이 된다.
주말 저녁, 수업이 끝난 H와 같이 양재천으로 향했다.
우울한 H는 걷는 내내 애써 떠들고 문득 시들해지고 간혹 과격해졌다.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감정이 물처럼 흐를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저번에 J와 걸으며 봐두었던 근사한 테라스 카페를 지나쳤다.
그곳을 낮에 가본 적은 있지만 내 생각에 이곳은 밤에 훨씬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어느 계절인가 “낮보다 밤에 더 보고 싶어” 사진을 찍어 보냈던 사랑이 문득 떠올랐다.
늘 생각 속에 파묻혀 살아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장면이 스칠 때면 잠시 행복해진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두고 가을밤을 걸었다.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뻗은 키 큰 나무들을 올려다볼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런 곳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H와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퇴근길 정체를 알면서도 목적지로 향했다.
평소보다 두 배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차 안에서 그간의 서사들을 생각하니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양재천 초입에 위치한 레스토랑이다.
간판이 없는 투박함에 비해 외관이 멋드러져 잠시 외국이 아닌가 착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이곳은 가깝지 않으면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가게 안 조명이 어둡다. 그 낮은 조도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공간의 모든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여서 그 순간이 마치 영화 같다고 느껴졌다.
아직도 난 호불호가 명확하고 감정 또한 극한에 다다를 때가 많다.
그 영화 같은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끝내는 슬픔의 감정까지 도달했다.
우린 실내와 연결되는 2인석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앉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따뜻한 가을밤이었고 한껏 멋을 내고 놓이게 된 곳이 테라스였고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였다.
테이블 옆쪽에 체어 높이의 기둥이 있고 그 기둥의 위쪽에 자그마한 조명이 달려있다.
테이블당 조명도 딱 고만한 것 하나씩이라 메뉴판의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음식의 메뉴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 없이 괜찮을거였다.
떠듬떠듬 간신히 주문을 마치고 대화의 물꼬를 J가 터주었다.
너무 많이 애썼다고.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과하게 잘 해냈다고.
가을밤에 놓여 있는 우리는 본격적으로 행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