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살아가면서 종종 들어본 말입니다. 실제로 부모로부터 이런 말을 별로 듣지 않고 자랐다면 다행히도 별 걱정 끼치지 않고 살아온 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하소연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듣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탄식입니다. 우리 부모들의 자식 사랑과 헌신이 비할 바 없이 크다는 증거겠지요.
우리의 부모님들은 가난도, 못 배운 한도 결코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젊음도 인생도 모두 내놓았습니다.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믿으며 온갖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공부시켜 대학을 보내고 취직도 시키고 결혼도 시킵니다. 그러도고 그들의 고단함은 끝나지 않습니다. 또 자식의 자식까지 키워야 하는 현실이니까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해주지 못해 고생시키는 것만 같아 그저 미안할 뿐이지요.
그런데 그 맞벌이가 정녕 누굴 위한 벌이인지 생각해보셨습니까? 그중에 부모를 위해 쓰는 돈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무리하게 얻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 대출금, 폼 나는 고급 자동차의 할부금, 아이들의 사교육비 등등이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부모들의 희생과 헌신을 모르는 자식은 없습니다. 말로는 다 안다고 합니다. 심지어 부모 말만 나와도 목이 멜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그 앞에만 서면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처럼 퉁명스럽게 구는 이유가 뭘까요?
오랜 경험과 인생살이를 바탕으로 충고라도 할라치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차디찬 한 마디로 일축하고 돌아섭니다. 한 달이면 몇 번씩 가는 영화관 한 번 데려가는 법이 없습니다. 외식도 자기들만 하고, 위험하다며 스키장도 워터파크도 자기들만 갑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아이에겐 끔찍하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잠시 빌려 써도 될 걸 굳이 명품 유모차를 사지 않나, 한 달에 몇 백씩 하는 영어유치원에 보내지를 않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한다지만, 기울어도 지나치게 기우는 사랑법입니다.
그래도 부모는 원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라 말이 안 통해서 그러나, 더 풍족하게 물려주지 못해 속상해서 그러나 하는 생각에 자책할 뿐이지요. 이제 와 더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도, 그럴 능력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얼마 전 모친상을 치른 제자가 찾아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급기야 소리까지 내며 우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른이라고, 남자라고 참고 참았던 모양입니다. 간신히 진정을 시키고 차 한 잔을 건네자 겨우 말을 잇더군요.
어머니 잔소리가 너무 그립습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면 당신도 부모가 되겠지요. 그때의 내 모습이 궁금하다면 지금의 부모님을 바라보세요. 그 모습이 바로 미래의 내 모습입니다.
이시형 박사의 <위로> https://c11.kr/9e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