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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속의집 Sep 18. 2020

가을 내음이 코끝에 스치는 순간

가을 하면 흔히 조락과 결실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가을일뿐, 진실로 깊은 가을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어쩌면 진짜 가을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가을 속에도 있지만 귀로 듣는 가을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저 느릿느릿 다가드는 황혼의 음률 속에서, 아니 가늘고도 신비한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는 낙엽들의 소리 속에서 우리는 전신으로 다가드는 가을의 소리를 진실로 듣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실 가을에만 들을 수 있는 신의 숨결 소리요, 신의 발자국 소리인 것이다. 가을의 문턱에 서면 그래서 우리는 잠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문득 생의 이치를 생각하는 순간, 전율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일까.
목숨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우리는 새삼 철학자처럼 숙연해지는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을 향해 사는 사람은 바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현재이니까요. 
유리잔이란 깨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에 비춰 번쩍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설혹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고 있을 망정...


가을의 내음이 코끝에 스쳐오는 순간마다 나는 다시 한번 제임스 크뢰스의 인용구를 떠올려 보며 그 의미심장한 목숨의 의미를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포도주에 비춰 어떻게 번쩍거리고 있는 것일까. 언젠가는 깨어질 것을 알기에 더욱 기쁘게 번쩍거리고 있는 것일까.




쉽게 산다는 건, 무서운 일


어느 날이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물먹은 풀솜처럼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로 이런 때 나는 바깥일에 대한 포기에의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 그저 이쯤에서 대강 때려치우고 현재를 편하게 살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나를 흔드는 것이었다. 적당히 체념할 것은 체념하고, 모험을 택해 힘들고 괴롭게 살기보다는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리며 살면 어떨까. 무거운 짐을 가득 진 한 인간이 되기보다, 영원한 여성으로서 적당히 매달려서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누리며 편히 살고 싶다는 충동이 강렬하게 솟는 것이었다. 이러한 포기에의 유혹이 여성을 영원히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가장 무서운 장애 요소이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충동을 그 순간 강하게 느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마침 우체국 앞을 지나 아파트 광장으로 막 돌아서려던 참이었다. 저쪽에서 나이 든 두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한 손에 비닐 가방을 하나씩 들고, 머리는 흠씬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에서 나온 길인 것 같았다. 그녀들이 내 가까이 왔을 때 나는 둘 다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여유 있는 중년 부인들의 한유한 모습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그녀들이 바로 내 곁을 스쳐갈 때였다. 


"어머나, 언니, 이게 몇 년 만이죠?"


그중 한 여자가 반색을 하며 내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순간 기가 막혔다. '저렇게 나이 든 늙은 여자가 날더러 언니라니.... 그렇다면 나는?' 낭패스럽고 어안이 벙벙해서 서 있는 내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언니, 얘도 기억나시죠? 글쎄 얘가 그때 왜 영어 잘하던 김종수 씨와 결혼했잖아요. 너무너무 잘 사는 거 있죠. 우리 둘 다 이 아파트에 살아요."


그리곤 다짜고짜 자기네 아파트로 차를 마시러 가자며 내 팔을 끄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들은 내 고등학교 한 학년 후배들로서 그 당시 꽤 진지했던 문학소녀들이었다. 


"언니는 사회활동을 계속해서 참 좋겠어요. 우리는 맨날 집에만 있으니 한심할 때가 많아요."


나는 나도 몰래 픽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인간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후회하는 것일까? 나는 그녀들을 따라가서 모처럼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차를 한잔 마시고도 싶었으나 그냥 적당히 얼버무리고는 돌아섰다. 우선 나이 든 여자들이 언니라고 불러주는 게 영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참혹하게도 바로 그녀들의 모습은 나의 선명한 거울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속으로 철학자 같은 의문 부호를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영원히 번쩍거릴 수 없음을 아는 까닭에 순간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나는 유리잔처럼, 우리는 어쨌든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나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나는 그동안 유리잔을 붉은색 포도주로 채우느냐, 푸른색 포도주로 채우느냐 하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 세우며 살았던 것이다. 너무 비교에만 열을 올리고 살면서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멋있느냐만 집요하게 따지곤 했던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창문을 여니 서늘한 가을바람이 전신을 흔든다. 
신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선가 결실이 익어가는 소리도 들려온다.


    


비로소, 인생을 위하여 문정희 시에세이 <살아 있다는 것은> https://c11.kr/99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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