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상실은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불쑥 찾아옵니다. 그 상실에 직면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이 아닐 거야’하며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상실)을 부정합니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정하는 반응은 상실을 경험한 뒤 찾아오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심한 충격에 휩싸여 좀체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무너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뭐라고?”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혼란스러워합니다. 너무 당황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크나큰 상실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 “미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심리적 비상 상태에는 감정이나 행동이 평상시와 다르게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건망증이 많아지거나 매일 하던 일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정신을 보호하는 장치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해 중요한 감각은 여기에 사용하고, 나머지 감각을 무디게 해서 이런 증상이 일어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얼마 동안은 뒤로 미뤄두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판단이나 직관을 중시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이때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려는 노력보다 충분히 쉬면서 흩어진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실 후 혼란스러운 감정들
상실 후 혼란스러운 감정들
상실을 인식하는 순간,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슬픔이 나의 몸과 마음으로 파고듭니다.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것 같습니다.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후회와 자책의 감정도 한쪽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좀 더 잘해주었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하면서 ‘내가 만약에’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또 상실의 원인을 상대 탓으로 돌리면서 원망의 감정을 퍼부어대기도 합니다. 이런 후회와 원망의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극도로 혼란한 상태에 빠집니다.
이러한 감정이 좌충우돌 오가거나 널뛰기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상실은 이전과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끕니다.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존재론적 단절의 계기가 바로 상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을 바라고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상 이는 고통을 동반합니다.
확실한 것은 내게 다가온 고통을 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고통은 피하거나 외면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고통스럽더라도 피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과 솔직하게 만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실의 슬픔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정도가 깊으면 깊을수록 애도의 시간도 길어질 것이며, 반대로 그 정도가 깊지 않다면 애도의 시간은 그만큼 짧아질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억누르지 않고 충분히 슬퍼하면서 상실의 슬픔을 잘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 채정호,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중에서 https://c11.kr/mf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