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히 버티던 안나푸르나 봉도 결국 인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히말라야 정상 등반에 성공할 때마다 언론은 대대적인 보도를 합니다. 이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바로 ‘정복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하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루어낸 승리지, 자연과 싸워서 이기거나 정복해서 얻은 승리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승리를 내 밖의 어떤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여길까요? 더군다나 자연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자연과 사람을 꼭 싸워 이겨야 하는 경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이 이기적인 가치관은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이런 씁쓸한 표현 말고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던, 너무 높고 험한 곳에 존재해서 만날 수 없었던 봉우리를 드디어 만나러 갔다고요. 그 만남을 위해 모험을 했고, 드디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정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 때로는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정복에 실패한 낙오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같은 승리자입니다. 그들 역시 ‘산이 거기 있어서’ 만나러 갔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 매 순간 살아 있었던 분들입니다. 이런 도전은 이미 승리입니다. 만일 우리의 행동을 모두 결과로만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거나, 심하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지 모릅니다. 봉우리에 오르지 못하면 그동안의 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상에 도달한 어느 등정가의 소감이 “허무하다”였는지도 모릅니다.
저 높고 험한 산에 오르는 일이 결국엔 다시 내려오기 위함이듯 우리들의 모든 여행은 역설적이게도 결국 집으로 향하는 일입니다. 집으로 향하는 외출이 곧 여행입니다. 다만 집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예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어 있습니다. 힘겨운 여정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와 가까워지면서 한층 성숙한 ‘나’와 만나기 때문입니다.
결과만으로 나의 여행, 나의 사랑, 나의 꿈과 모험이 허망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어떤 과정도 무의미한 실패는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성실하고 묵묵히 나를 도전하며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해안가의 수많은 모래알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아내든 그것은 결국 언제나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https://c11.kr/xe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