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부터 전화 한 통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키라야, 잘 지내지?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3년 전, 내가 혼자 제주 여행을 갔을 때, 제주 서쪽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J언니였다. J언니는 몇 해 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육지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1박 2일 제주 여행을 왔고, J언니는 제주 남쪽에서 제주 서쪽으로 1박 2일 여행을 온 상태였다. 우리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고, 인근 카페에서 3시간이 넘도록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후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여서 가끔 서로의 근황을 엿보는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3년 만에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J언니는 내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과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다녀온 것을 보고는, 자신도 나와 똑같은 루트로 여행을 가고 싶다며 여행 정보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여행 정보를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 전화 한 통으로 3년 만에 우리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서울에 있는 나와 제주에 사는 J언니는 매일 전화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숙소 예약 방법, 가져가야 할 준비물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언니! 한 달 넘게 제주집을 비워도 괜찮아? 집에 강아지랑 고양이도 있다면서?"


J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게 문제야. 집을 봐주기로 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모두 취소했어. 유럽행 비행기는 이미 예매했는데…"


나는 무심코 농담처럼 영혼도 없이 툭 던졌다.

"그럼, 내가 갈까?"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이야. 다음 날, 나는 회사 퇴사를 결정하고 남은 연차를 몰아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J언니는 출발 전에 나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키라야, 우리 집은 시골 중에서도 아주 시골이야. 네가 살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일단 1주일 정도 지내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


그렇게 나는 1주일 동안 J언니의 집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해 J언니의 이웃과 함께 귤밭을 지나 J언니의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에잇, 설마 저 집은 아니겠지?'


그러나 바로 그 집이었다. 집인지 창고인지 모를 정도로 비닐로 둘러싸여 있어서 집 현관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열쇠조차 없는 집. 귤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어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외딴 곳.

집안에 들어가니 더 심란해졌다. 정말 어둡고 깜깜했다. 빛이라고는 집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의 집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J언니의 이웃이 돌아가고 귤밭에 이 집과 나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겁 많은 나는 해가 저물기 전에 집안에 들어가 집안에 있는 모든 문을 잠갔다. 제주 첫날밤은 낭만과 자유가 아닌 공포와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에 고양이가 한마리 있었는데 고양이랑 살아본 적이 없어서 고양이조차도 무서웠던 첫날 밤이었다. 과연 내가 혼자서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나는 1주일을 너무도 잘 살아냈다. 그렇게 무서웠던 어젯밤을 뒤로 하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 찬 마루에 홀딱 반한 거였다. 아침마다 새소리에 눈을 뜨고, 나무마루에서 커피를 내리고, 텃밭에서 야채를 따 샐러드를 만들고, 빵을 구워 먹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작은 <리틀 포레스트> 같았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J언니, 언니가 유럽에 가있는 3개월 동안 내가 이 집을 지킬게."


그렇게 1주일이 한달이 되고,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그럼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제주에 한 번 살아볼까?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전 02화회색빛 도시, 까만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