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찾은 삶의 풍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동네 꼬마와 매일 아침 6시 산책을 했다. 가끔 날씨가 흐리거나 몸이 정말 피곤할 때는 산책 가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이와 한 약속이기에 안 지킬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이는 늘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 우리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와 산책하다가 내가 꽃이 흐트러진 돌담을 보고 감탄했다. "우와, 저 돌담 좀 봐. 진짜 예쁘다!" 그런데 아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모! 저 흔한 돌담이 뭐가 그리 예쁜데요? 저는 서울의 높은 빌딩들이 훨씬 신기하고 좋아 보여요."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늘 있는 익숙하고 흔한 것들이 얼마나 값지고 멋진지 잊고 산다는 것을. 나 역시 서울에서 그 흔한 빌딩이 신기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경계인이다. 관광객도 아닌 그렇다고 현지인도 아닌 제주 이주민. 바로 이 지점, 이 경계에서 나는 제주를 보며 살고 있다.
관광객들은 제주의 '날씨'를 보며 여행을 한다. 나는 제주의 '계절'을 느끼며 살아간다. 하얀 눈이 내린 후 배추는 더 달다는 것. 진짜배기 토종 동백 꽃은 겨울이 끝나갈때쯤 활짝, 가득 핀다는 것을.
제주에 오면 관광객들은 갈치조림을 찾는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칼칼한 갈치조림보다 달큰한 호박넣은 갈치국을 먹는다. 나는 왜 제주 사람들이 갈치조림이 아닌 갈치국을 먹는지 안다.
관광객들은 제주 물회가 왜 육지처럼 새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아니냐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왜 제주 물회에 고추장 베이스가 아닌 된장 베이스 양념인지 안다. 그 지역의 음식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이곳에 살아봐야 더 잘 보이는 법이니까.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제주 삼춘들이 "아이고, 저 허서방" 하며 혀를 차길래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허서방'은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렌터카 번호판의 '하, 허, 호'를 따서 부르는 별명이었다. '아니, 제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렌트카를 유난히 싫어하는 거지?'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됐기에 허서방이라는 별명까지 붙여가며 렌트카를 싫어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나도 도로위에서 삼춘들과 똑같은 마음이 들곤 한다. 제주에서 운전해본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도로연수도 제대로 안 받고 제주에 와서 처음 운전대를 잡아보는 관광객. 깜빡이 안 켜는 건 기본, 갑자기 우회전으로 틀어버리거나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멈춰버리는 일. 나도 관광객이었을 때는 몰랐다. 이런 돌발행동들이 현지 사람들의 일상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이제 나도 '허서방'을 보면 삼춘들처럼 한숨을 쉰다. 하지만 동시에, 저 모습이 관광객으로 제주에 왔던 나의 서툰 모습이었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경계인이 되어 가면서 양쪽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책방 역시 경계의 지점이었다. 책과 책방 손님을 연결하는 그 중간에 내가 서 있었으니까. 나는 손님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책에게 손님을 소개하는 경계인. 그리고 음식 이야기 책방이었기에 제주 삼춘들이 평소에 먹는, 식당 메뉴에는 없는 제주 음식을 육지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아보카도를 까주며 "삼춘, 요즘 육지에서는 이런 음식을 먹어요" 하며 제주 삼춘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책방에서 나는 제주와 육지 사이에 서서 양쪽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갔다.
"제주 사람이에요?" "아니요, 육지사람이요." "아, 여행 오셨어요?" "아니요, 여기 살아요." "...아."
제주 살이 10년 차지만, 여전히 이 대화는 반복이다. 오래전, 발리에 살았을 때, 내가 '경계인'이라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었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뜨내기가 아니라 이곳에 일상을 사는 '생활자'라고 강력하게 어필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완전한 현지인이 될 수 없음을, 동시에 관광객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도 않음을 말이다. 내가 경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비로소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관광객처럼 여전히 소박한 돌담에 감탄할 수 있고, 제주 사람처럼 계절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관광객의 설렘과 현지인의 일상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특권. 양쪽을 모두 볼 수 있는 이 경계인의 시선 덕분에 내 삶은 한층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졌다.
경계에 선다는 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외로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양쪽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지인도 아니고 관광객도 아니지만, 어쩌면 그래서 제주를 좀 더 깊이,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