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섬, 기도의 시작은 감사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처음 제주에 와서 신기했던 단어 중 하나가 '신방'이었다. 제주 삼춘들과 귤 따러 다니던 초기, 삼춘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자주 등장하던 단어였다. "신방이 어쩌구 저쩌구~" "신방에 갔는데," 난 이 신방이라는 단어가 신혼방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뭔가 이상함을 느껴 삼춘들에게 물었다.


"삼춘, 신방이 뭐예요?"


난 '신방'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확한 표현은 '심방'이다. 제주에서는 무당이라 부르지 않고 '심방'이라고 부른다. "신들의 섬, 제주"답게, 집안과 마을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심방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 귤 따러 갔을 때 함께 귤 따던 언니가 자신의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동네 개에게 물렸는데, 그때 심방에 가서 넋을 드렸다고 했다. 나 같은 육지 사람들은 이해 못 하는 부분이다. '개에 물렸으면 병원에 가야지. 왜 심방?' 그런데 그게 제주의 문화다. 아이가 놀라서 넋이 나갈 수도 있으니 달래는 거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영혼까지도 치유하며 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전의 나는 이런 걸 미신이라 생각했다. 아주 가끔 나도 신점을 보러 가긴 하는데 그저 기분전환용일 뿐 그걸 믿지는 않는다.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개업을 할때 고사를 지낸다거나 하는 것 역시 미신이라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종교도 없기에 고사때 기도를 한다거나, 드라마에서 봤던 '비나이다, 비나이다' 같은 기도는 뭔가를 원하고, 갖고 싶고, 바라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이 미신 같은 걸 나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살아보고 싶던 오래된 초가집이 있었다. 남들은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허름한 돌집. 그 집으로 이사하던 날, 제주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집 주변에 막걸리를 뿌렸다. "이 집에서 잘 살게 해주세요." 뭐, 그런 바람이었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집에 살면 살수록 '이 집에 살게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 집과 대화를 했다. "집아, 따뜻하고 편안한 집에 살게 해줘서 고마워."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처음 뿌렸던 그 막걸리가 '이 집에 잘 살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 집에 살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맞아, 기도라는 것은 뭔가 바라는 게 아니라 감사함을 전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친한 동생이 제주 할머니댁에 욕실 공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집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동생 몸에 소금을 뿌렸다는 거다. 동생은 지금 뭐 하는 거냐며 당황했지만 할머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말로 뭐라고 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사는 제주 할머니들에게 이런 일들은 당연한 일상이다. 집의 변기 하나 교체하는데도 공사할 좋은 날을 따로 잡고, 공사하러 오는 사람 몸에 소금을 뿌리는 것도. 난 동생에게 너 다치지 말라고, 조심해서 공사하라고 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했다. 이후로 동생은 이제 할머니들이 소금을 뿌려도 그런가 보다 한다고 한다.


처음엔 비과학적이라고 요즘 누가 그런 걸 믿냐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감사함의 시작이었다.


2025년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는 집 근처 절에 갔다. "올 한 해도 무사하고 무탈하게 지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그 한마디만 하고 나왔다.


이제 기도는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감사를 전하는 것. 내가 제주에 살지 않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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