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가 없어도 괜찮은 삶
어릴 적 할머니는 오일장이 돌아오면 뒤짐을 지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 제철 식재료를 사 오시곤 했다. 꽃게 철이면 통통하고 배가 새하얀 꽃게를 사 와서 그대로 찜통에 쪄서 꽃게찜을 해주셨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꽃게를 반으로 쪼개서 촉촉하고 부드러운 하얀 꽃게 속살을 내 입에 넣어주시곤 했다.
추운 겨울, 굴 철이 되면 알이 통통하게 오른 굴을 쪄서 굴찜을 해주셨는데, 양념도 소스도 없었다. 그냥 굴, 그 자체의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소스나 양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음식, 그 식재료가 가진 본래의 그 맛을 좋아한다.
얼마 전 말로 모건의 책 <무탄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책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신선함과 깨달음을 준다. 지난번에는 그리 와닿지 않았던 문장이 이번에는 유독 도드라지게 보이니까. 이번에 내가 꽂힌 내용은 '소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주 원주민과 주인공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원주민들은 소스라는 개념에 어리둥절해 한다.
“무엇 때문에 고기를 소스로 덮는단 말인가?”
이 문장이 '뿅' 하고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고기의 본래 맛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데, 왜 그걸 굳이 소스로 덮어버리느냐는 것이다.
책에서 원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무탄트들(문명인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대신, 소스로 고기를 덮는 것처럼 보편적인 법칙을 편리성이나 물질만능주의로 덮어버린다고. 수많은 문명인들이 인위적이고 가식적이고 달콤한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라는 사람도 소스로 덮는 그런 삶을 살았던 건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할머니 덕분에 소스가 필요 없는 그런 성향을 갖게 된 듯하다. 나는 뭔가를 포장해서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편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부를 부러워하고, 비교하고 경쟁한다. 돈은 수단일 뿐인데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소스로 자신을 덮고, 달달한 설탕 같은 삶만을 살고자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소박하지만 진짜 꽃게 맛 가득했던 꽃게찜처럼, 있는 그대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스 없이도, 포장 없이도 자신의 본질을 알아가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소스로 덮인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본래의 맛 그대로를 즐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