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우스노마드의 시작
반복되는 일상의 익숙함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저는 기어코 짐을 싸고야 말았습니다. 늘 그랬듯 거창한 계획 없이, 무작정 발리를 떠나 치앙마이로 향했죠. 예전부터 살아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좋아하는 일본 영화 <수영장>의 배경이기도 했거든요. 제 두 손에 쥔 건 치앙마이행 비행기표와 며칠 머물 숙소 바우처뿐이었습니다.
제가 머문 곳은 치앙마이 외곽의 작은 예술인 마을, 반캉왓(baan kang wat, บ้านข้างวัด)이었어요. '사원 옆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마을에는 도자기 공방, 국수집, 카페, 염색공방, 자카샵, 북카페 등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었답니다. 처음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답니다. 마치 태국의 과거에 멈춘 듯, 너무나 태국스러운 이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하루하루 숙소를 연장하며 이곳에 머물렀죠.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 저는 우연히 세 명의 유명 블로거를 만나게 되었어요. 파워블로거라기보다는 태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한국 분들이셨죠. 사진 속 그들은 늘 여유로워 보였고, 삶을 즐기며 사는 것 같았어요. 무엇을 먹어도 고급스러워 보였고, 어딜 가도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았답니다.
하지만 제가 본 현실의 그들은 결코 여유롭지 않았어요. 시간에 쫓기고 삶에 찌든 모습이었죠. 그들이 포스팅한 음식들은 아주 가끔 먹는 '특별식'일 뿐이었답니다. 특히 동남아는 어느 곳을 찍어도 그림이 되는 곳이잖아요. 우리가 살아온 자연환경과 다른 이국적인 배경이 만들어낸 착시였을 뿐이었죠.
이들 중 누군가 제게 "발리에 살면 좋으시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아니요, 방콕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결국 그것도 남이 머무는 곳, 제가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살지 않는 곳은 항상 더 좋아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아침, 체크아웃 전 숙소 앞 북카페에 들러보기로 했어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었답니다. 한국에도 흔한 북카페를 굳이 태국까지 와서 가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죠.
북카페에 앉아 있는데, 주인 땡모가 며칠 전부터 저를 봤다며 말을 걸어왔어요. 대화를 나누다 저는 불쑥 말했죠.
"이 마을, 정말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이야." 그러자 땡모가 대답했어요. "그래? 그럼 지금 살아보면 되지."
그 농담 같았던 한마디가 마법이 되는 순간, 저는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반캉왓 마하사뭇 라이브러리 2층은 키라의 집이 되었어요. 북카페는 땡모와 다른 태국 친구가 함께 운영했고, 저는 이곳에서 카페 일을 돕기 시작했죠. 태국 친구들과 지내며 그들의 음식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답니다. 아침 식사를 집에서 만들어 먹지 않고 근처에서 포장해 와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치앙마이에 머문 지 한 달이 가까워질 때쯤, 아침에 일어나는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웠어요. 알고 보니 이석증이었죠. 병원을 다녀와 약을 먹고 몸은 괜찮아졌지만, 마음은 이미 한국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집이 그리워지는 법이잖아요.
평소 워커홀릭이었던 제가 '나이 들어 살 곳'을 찾겠다고 일부러 평화로운 곳들을 찾아 떠나온 건데, 몸이 아프니 일에 대한 그리움이 생길 줄이야. 그제서야 알았죠. 저는 일에 중독된 게 아니라 진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거였죠. 마침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그렇게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답니다.
블로거들과의 만남, 땡모와의 인연, 그리고 반캉왓에서의 한 달을 통해 저는 깨달았어요. 결국 중요한 건 제가 있는 곳에서, 지금 제게 주어진 것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 제 것이 되고, 그렇게 살고 싶었던 곳이 제가 사는 곳이 되면, 긴장감은 사라지고 일상은 익숙해지죠. 익숙한 물건과 익숙한 공간이 식상해지지 않도록,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아야 했던거였어요.
왜 그렇게 뭔가 특별할 거라 생각했을까요? 익숙해지는 건 당연한데, 저는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더 특별해지길 바랐던 걸까요? 맞아요, 일상을 연애하듯 살아야 하는 거였어요.
치앙마이에서의 한 달은, 어쩌면 제가 외부의 화려함을 좇는 대신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신의 계획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나이 들어 살 곳'을 찾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은 분명했어요. 어디에 살든, 어디에 있든, 지금 이 순간과 연애하듯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