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방황하면 몸이 아픈 법

#5 하우스노마드의 시작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기억하시나요? 제가 '나이 들어 살 곳'을 찾아보겠다며 떠났던 4개월간의 여정을요. 떠날 때는 참 호기롭게 한국을 나섰던 것 같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 말고는 사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난 4개월이었죠. 그 여정은 이석증과 함께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제가 '나이 들어 살 곳'을 미리 찾아보기 위해 떠났던 곳에서 익숙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떠났고, 몸이 아프니 갑자기 집이 그리워져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집을 구하고, 예전 회사에도 복귀했어요. 새로운 브랜치 런칭을 맡게 되어 정말 바빴죠. 그렇게 저는 다시 화려한 도시의 불빛 사이에서 '점'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일은 분명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죠. 몸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마음은 계속 딴 곳을 헤매고 있는 거예요. 마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왜 한국에만 오면 매 순간 계획을 세우며 살게 될까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김없이 스트레스를 받고요. 발리에서는 정말 신기했습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생기는 일들이 재미있었고, 갑자기 계획이 바뀌어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오히려 즐겼으니까요. 이곳에서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게다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발리에서는 밤 10시도 되기 전에 곯아떨어지곤 했는데, 한국에서는 새벽까지 뒤척이기 일쑤였습니다. 혹시 여기가 저와 안 맞는 곳은 아닐까? 아니면 저는 여기서 살 수 없는 사람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누구에게나 '자신과 잘 맞는 곳'이 있다고 하잖아요. 과연 정말 그런 곳이 있는 걸까요?


그렇게 몸과 마음이 따로 놀더니 결국 1년 만에 병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평소에 바빠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거든요. 주중에는 대충 때우고, 주말이면 "이번 주 못 먹은 거 다 먹어야지!" 하며 폭식하는... 완전히 나쁜 식습관이었죠. 그래서 늘 소화제를 가지고 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날도 평소처럼 주말에 갈비를 실컷 먹고 소화가 안 되는 듯해서 소화제를 챙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을 먹어도 다음 날까지 낫지 않는 거예요. 그날 오후 식은땀을 흘리며 지방에서 서울까지 입석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약을 먹고 잠만 잤습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서 결국 출근 전에 병원에 들렀죠. 그런데 의사 선생님 표정이 심상치 않았어요. 초음파실은 이미 대기 중인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저를 긴급으로 들여보내시더군요.

결과: 급성 충수돌기염. 맹장염이었습니다.

"바로 수술해야 하니까 입원 수속하세요."


집에 가서 입원 준비물을 챙겨 '우아하게' 캐리어를 끌고 병실로 들어섰습니다. 나중에 같은 병실 환자분들이 "어디 아파서 왔어요?" 묻길래 "맹장이요" 했더니, "어? 너무 멀쩡하게 들어와서 맹장인 줄 몰랐어요" 하시더군요. 그렇게 갑자기 저는 입원을 하고 수술하며 병원에 머물게 되었고, 이제껏 외면해왔던 내면의 저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병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번 맹장염도 결국 스트레스 때문이었죠. 제게 맞지 않는 곳에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다 보니 몸이 저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해야 삶이 즐거운 건데, 저는 그렇게 살고 있지 못했어요. 며칠을 병원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세상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더군요. 이제 정말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몸이 마지막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병실에 계신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다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가 나왔어요. 아주머니는 퇴원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계획이라고 하셨죠. "아, 거기 저도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제게도 버킷리스트인 곳이라며 부러운 마음이 물결쳤습니다.


퇴원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짐을 쌌죠.

"일단 가보자. 어디든."

일단 발리에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디에 갈지… 그리고 어디를 가든 갔다가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까요.

그렇게 저는 또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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