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의자와 맥시멀리스트 사이, 어느 경계인의 고백
나는 완벽한 환경주의자가 아니다. 환경 보호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사람도 아니다. 환경에 대한 무관심과 관심 그 경계 어딘가에 서있는 사람이랄까? 다만, 늘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반드시 챙겨서 다니는 '환경 경계인'일 뿐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사용한다면서 수많은 텀블러를 수집하고, 텀블러를 담을 가방이 너무 많았던 모순적인 맥시멀리스트였다.
보통 사람들보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끊임없이 구입하고 쌓아두는 맥시멀리스트. 마음에 드는 구두가 있으면 똑같은 구두를 3켤레 정도 사놓는다거나, 목폴라도 색깔별로 구입해놓았다. 몇 년째 택조차 떼지 않은 새 블라우스는 옷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바빠서 집에서 요리 해먹을 시간도 없으면서 늦은 밤 퇴근 후 틀어놓은 홈쇼핑을 보며 냄비세트며 조리기구 등을 사들였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 뒷좌석에는 가방들과 스카프들이, 트렁크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물건을 끊임없이 구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결핍이나 불안으로 인해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생기기도 한다던데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서 결핍이나 불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늘 아빠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내 또래 친구들이 탐하는 나이키 운동화, 게스 청바지, 소니 워크맨을 사주셨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물건을 구입했다기보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물건을 샀다는 게 맞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다고, 아니 정확히는 '너무' 많다고 느낀 건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살아보겠다고 집에 있는 짐을 정리하면서였다. 택도 떼지 않은 신발과 옷들, 홈쇼핑에서 배달되어 포장도 뜯지 않았던 냄비들. 그리고 수많은 책들. 그때 처음으로 물건이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정말 필요한 책만 부모님의 집으로 보냈다.
남이 쓰던 물건은 절대 쓰지 않고, 책은 반드시 내 돈 주고 사서 읽어야지 어떻게 책 빌려보냐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책은 물건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책조차 짐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연히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10kg 정도 되는 배낭 안에 든 물건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니. 배낭이 가벼워질수록 내 마음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마치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욕심을 하나씩 버리며 걷는 것 같았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집착을 버리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나는 어느날 갑자기 제주로 이주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늘 입었던 옷, 신발, 가방들은 제주 시골에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에서는 치마보다는 움직임이 편한 바지를 주로 입게 되고, 신발도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더불어 스타킹 대신 양말이라는 물건이 내 삶에 들어왔다. 명품 가방 대신 에코백이나 백팩을 메고 다닌다.
거주 환경이 서울에서 제주로 바뀌면서 내 눈에는 명품백 대신 매일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바다가, 일년 내내 초록초록한 귤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한 향수 대신 은은한 자연의 향기를 뿜어내는 귤꽃과 치자꽃이, 귤밭으로 가는 농부의 뒷모습이, 창가 너머 바람에 흔들리는 귤나무의 그림자가, 이른 아침 유리창 틈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소비로 가득 채운 공간에 살 때는 파란 하늘조차 보지 못했다. 환경이 나에게 버리는 법을 알려주자, 비로소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가 보이기 시작한 거다. 소유하는 삶에서 존재하는 삶으로 건너왔달까?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자주 보아왔던 '환경보호', '자연보호', '아나바다 운동' 같은 단어는 늘 익숙했지만, 그것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난 후 제주로 이주한 이후부터인 듯하다.
나는 여전히 환경운동가도, 환경론자도 아닌 '환경주의자'와 환경에 무관심한 사람 사이 그 어딘가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경계에서 '맥시멀리즘의 과거'와 '미니멀리즘의 현재'를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 그리고 인간의 '욕심'을 성찰하는 기록을 남겨보고 싶어졌다.
이 연재 브런치북 <싱글 포레스트>는 한때 맥시멀리스트가 이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야기들로 이어가보려 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한 개인이 가지는 환경에 대한 작은 실천과 기록이 하나둘 모여 숲을 이루다 보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지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경계에 서 있어도 괜찮다. 그 경계에서 시작하는 작은 변화가, 결국 숲을 만드는 첫 번째 나무가 될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