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는 귤이 하나둘 익어 노랗게 변해가는 계절이 왔다. 고마운 제주사람1이 전화를 했다. "키라, 내일 뭐해?" 이렇게 물어보는 건 귤밭에 올 수 있냐는 다른 표현이다. 고마운 제주사람1의 친구네 귤밭에 귤을 따달라고 부탁을 한다. 귤 따는 장소와 시간을 확인한다. 준비물은요? 따로 없지. 이 말은 점심 도시락은 싸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귤가위, 귤모자, 앞치마, 장갑, 팔토시, 라디오를 미리 꺼내 놓는다. 이런 개인 준비물은 알아서 챙겨가야 한다. 귤 따러 가는 사람이 연장 없이 갈 수는 없는 것.
그러고 보니, 올해 첫 귤따기다. 극조생 노지 귤밭.
날이 밝아질 무렵, 귤밭에 가니 동네 삼춘들은 이미 도착해서 잔치커피도 한 잔씩 하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제 처음 보는 삼춘들 봐도 쫄지 않는다.
오전 7시, 이제 귤바구니와 노란색 콘테이너를 하나씩 챙겨 귤 따러 귤밭으로 들어간다. 노란색 콘테이너는 뒤집어서 발판으로 쓰는 건데, 높은 곳에 있는 귤을 딸 때 요긴하다.
"어떤 거 따야 해요?" 물으니, "다 따불라!"(전부 따라!) 히힛, 난 이 말이 제일 좋다. 귤을 골라서 따는 건 여전히 내겐 어려운 일이다. 골라 따면 속도도 안 나고 이거 따는 게 맞는 건가 헷갈려서 귤 따는 재미가 없다. 크건 작건 귤은 다 따면 되니까 마음이 편하다.
오전 8시 반쯤 푹 끓인 어묵탕에 김밥으로 아침 간식을 챙겨 먹는다. 오늘 귤 따러 오신 삼춘들은 대부분 70대. 나이가 가장 많은 삼춘이 85세였다.
오후 12시, 제일 반가운 소리. "나옵써!" 점심 먹으러 나오라는 이야기다. 예약해 놓은 동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
밥 먹고 귤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귤밭에 들어가는 삼춘들, 반칙입니다! 보통 점심시간이 12시부터 1시까지인데 동네 삼춘들은 귤 하나라도 더 따주려고 쉬는 시간 이런 거 상관없이 그냥 귤밭에 들어가 귤을 딴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도 자동으로 귤밭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도 12시 34분에 모두 귤밭으로 들어갔으니 반칙인거다.
그런데 웃긴 게, 상인들이 운영하는 귤따기 팀에 가면 삼춘들은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 절대 일찍 귤밭에 들어가지 않고 늦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웃네 귤밭에서는 쉬는 시간도 안 지키고 더 따주려고 하면서 상인 귤밭에서는 정반대다. 신기하게 제주 사람들은 이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더라. 이거 차별이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 ^^ 돈으로 계산되는 노동과 정으로 주고받는 노동은 다른 귤따기 현장.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동네 삼춘들과 귤 따는 걸 꺼려한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 풍경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아직 나는 조금 더 따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나이는 아니지만 조금 더 따주고 싶은 삼춘들의 마음을 이해못하는 것 또한 아니니까.
오늘 귤밭은 귤따기의 최적의 조건이었다. 귤나무가 너무 키가 크지 않았고, 귤나무 사이 간격이 적당해서 귤나무를 헤집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오늘 날씨가 바람도 불지 않고 귤따기 딱 좋은 따뜻한 가을 날씨였다.
어느새 오후 5시, 집에 갈 시간이다. 점심 먹고 오후 간식 먹고 하면 시간은 왜 그리 잘도 가는지. 올해 첫 귤따기도 즐겁게 시작해본다. 귤밭에 오는 건 언제나 즐겁다.
키라! 제주에 귤밭 없었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