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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 한 소쿠리, 귤 한 컨테이너

[영화]고양이와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잔잔한 일본 영화를 좋아한다. 고양이도 좋아한다. 그러다 우연히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제목만 봐도 내 취향 저격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와 '어떻게 나이 들면 좋을까' 하는 내 고민과 맞닿은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이웃집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완두콩을 들고 옆집 할아버지 댁에 찾아온다. "혼자 다 못 먹으니까 나눠주려고." 그렇게 건네는 완두콩 한 소쿠리.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제주도 똑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살다보면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식재료들이 있다. 텃밭에서 키운 고추, 가지, 오이, 호박. 나무에서 딴 귤, 키위, 감.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채소와 과일을 주고받게 된다.


나는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혼자사는 삶이 익숙하고, 혼자 밥을 챙겨 먹는 날도 많다. 하지만 가끔 귤밭에 가서 삼춘들과 함께 먹는 밥은 항상 즐겁다.


서울에서는 이웃과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이웃이 이웃이 아니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나는 귤을 나누고, 호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오늘도 옆집 삼춘이 돌담위에 귤을 한 컨테이너나 가져다 주셨다. 자신들이 직접 농사지은 귤이다. 어제 삼춘네 욕실에 샤워기를 교체해 드렸거든. 고맙다고 주신 거다. 얼마 전에는 감나무에서 딴 홍시도 맛보라고 주셨었다.


나 역시도 집에 뭔가 먹을 게 있으면 옆집 삼춘네 가져다 드린다. 일본 여행 가서 사 온 일본 과자나, 이번에 오일장에서 사 온 대파 모종이 많아서 삼춘네 텃밭에 심으라고 가져다 드렸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게 내가 삼춘들과 엄청 친한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표면적으로는 우리는 다들 혼자 산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으로 연결된 것 같다. 그 실이 음식이 아닐까? 음식을 나눈다는 건 먹는 걸 나누는 거다. 먹는다는 건 산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삶을 나누는 게 아닐까?


영화 속 할머니의 완두콩 한 소쿠리와, 옆집 삼춘이 주신 귤 한 컨테이너는 같은 것이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삶. 음식으로 이어진 제주의 평범한 일상이자 삶의 한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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