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꽃향에 빠진 도새기, 시를 읊다

4월 말이 되면 책방 주변 귤밭에는 새하얀 귤꽃이 가득 핀다. 은은한 귤꽃향은 마치 아카시아 향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귤꽃은 빨리 진다. 며칠만 지나도 향을 맡을 수 없다. 내가 앞으로 제주에 얼마나 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귤꽃향을 앞으로 몇 번이나 맡을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귤꽃향을 아예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게도 4월 책방 행사를 할 때 쯤, 책방 앞 귤밭에 귤꽃이 활짝 필 것 같다. 언젠가 귤꽃이 가득할때 꼭 책방 행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이 기회인듯 싶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은 <귤꽃향에 빠진 도새기, 시를 읊다>. '도새기'는 제주사투리로 '돼지'를 말한다.


가끔 책방 마당에서 동네 이웃들이랑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책방이 귤밭 안에 있는지라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이만한 배경이 없다. 귤밭 바베큐. 거기에 귤꽃향이 가득한 곳에서 바베큐는 그야말로 금상첨화. 마찬가지로 나만 누렸던 것들을 책방손님들하고 이참에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는 이웃, 고마운 제주사람1이 귤농사를 짓는데 가끔 시도 쓰신다. '이분을 초대해서 함께 고기 구워 먹으며 귤꽃 이야기도 나누고, 시도 읽어야겠다!' 싶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행사 당일 비가 종일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건 참가인원을 적게 잡았다. 책방 앞 데크에 참석한 인원이 딱 맞게 자리할 수 있었다.


고마운 제주사람1은 화로뿐 아니라 밭에서 뜯어온 상추, 곰취, 뽕잎, 그리고 직접 만든 갓김치와 명이나물까지 챙겨오셨다. 그리고 "나, 잠깐 누구 좀 데려다주고 올게" 하고 가시더니만 시간이 늦어져서 못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 행사는 고마운 제주사람1을 위해 만든 건데, 너무 아쉬웠다.


귤꽃향을 맡으며, 빗소리를 들으며 참여한 분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다. 우리는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제주에 사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리고 시집을 하나씩 건넸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시를 돌아가면서 낭독해본다. 참석하신 분 중에 태어나서 시집을 처음 읽어본다는 동네분이 계셨다. "비 오는 날 시 읽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셨다.


시인이 어떤 의도로 시를 썼는지보다, 시를 읽는 이가 왜 이 시를 선택했는지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를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시를 읽는 이의 몫임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가 내렸지만 오히려 빗소리와 귤꽃향이 더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었다. "비 오는 날 시 읽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한 분이 말했다.


귤꽃향, 빗소리, 고기 굽는 연기, 그리고 시. 일 년에 딱 한 번, 며칠만 피었다 지는 귤꽃처럼, 그날의 시간도 특별했다. <귤꽃향에 빠진 도새기, 시를 읊다>는 그렇게 제주의 봄을 기억하는 방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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