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어느 날, 가까이 지내는 책방사장님들과 함께 우도 나들이를 떠났다. 이렇게 제주에 사는 우리도 가끔은 여행자의 자리에 서본다.
그때 우도 비양도에서 해녀삼춘들이 커다란 드럼통 숯불에 뿔소라를 굽는 것을 보았다. 해녀삼춘들이 바다에서 잡은 뿔소라를 직접 구워서 손님들에게 팔고 있었다. 아, 지금은 뿔소라가 제철이구나. 뿔소라를 직접 잡은 해녀삼춘이 구워서였을까? 갓 구운 뿔소라를 입에 넣었는데, 그동안 먹었던 뿔소라와 차원이 다른 맛이다. 정말 야들야들하고 쫄깃하다. 이 맛있는 기억을 가지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책방 옆동네인 토산리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횟집이 있다. 그곳 해산물이 신선해서 종종 방문한다. 그러다 그 횟집 사장님 동생이 해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에 해녀삼춘들은 있지만, 나보다도 어린 해녀 동생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그때 마침, 얼마 전 우도에서 해녀삼춘이 구워줬던 뿔소라가 생각났다. 이 해녀 동생과 책방에서 뿔소라구이를 함께 먹으며 해녀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그 자리에서 바로 해녀 동생분을 섭외하고 5월 책방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제목은 <막내해녀와 함께 뿔소라 굽굽!>
귤꽃이 진 자리에 아기 귤들이 몽글몽글 달리기 시작한 5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횟집 사장님의 도움으로 커다란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들을 책방 앞에 설치했다. 돌담 사이 이름 모를 잎들을 뜯어와 손님들의 네임택도 만들고, 테이블세팅도 예쁘게 해놨다. 숯불을 피워 뿔소라를 그릴 위에 올렸다. 사이사이에 고구마도 넣고, 제철음식인 초당옥수수도 가져다 놓았다.
하나둘 책방손님들이 오셨다. 지글지글 뿔소라가 익어가기 시작한다. 뿔소라를 삶아서만 먹어봤다는 손님, 아주 오랜만에 숯불에 구워 먹어본다는 손님.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왔다.
막내해녀가 뿔소라를 까서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뿔소라가 익으면 껍질에서 쉽게 빠진다. 껍질에서 잘 빠지지 않는 뿔소라는 다시 그릴 위로 올려 익힌다. 뿔소라 사이에 숨겨진 이빨도 뽑아서 제거한다. 다들 처음엔 막내해녀가 까주는 뿔소라를 우아하게 먹다가, 맛을 보곤 까주는 걸 못 기다려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열심히 뿔소라를 먹기 시작한다.
뿔소라를 먹으며 막내해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에서 해녀가 된 이야기. 엄마가 해녀였고, 어릴 때부터 바다가 좋아서 자연스레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바다 속에는 '여'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소라들이 붙어산다는 이야기. '여'가 많은 바다를 가진 마을엔 소라, 전복이 많이 있지만, '여'가 없는 바다는 소라와 전복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 해녀와 제주 바다 이야기들은 점점 더 깊어졌다.
나는 책방 행사엔 가능하면 제주 현지인들을 강사로 섭외하려고 한다. 유명한 사람들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현재의 제주 일상을 사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제주의 슈퍼스타니까. 그런 이들의 귀한 삶을 책방 손님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책방은 제주 사람과 육지 사람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참석한 막내해녀는 집과 바다만 오가는 일상을 보내다 책방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말했다. 다음 달 책방 행사에 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한 손님이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좋은 사람, 좋은 공간이 주는 힘을 느끼며, 좋은 시간을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