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다 보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뭔가 배우고 체험할 수 있다. 어느 날 지인이 내게 옆 동네에서 진행하는 '보름달명상'을 추천해줬다. 그렇게 우연히 커다란 보름달이 뜨는 밤, 숲속 잔디밭에서 보름달 명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명상 선생님 D를 처음 만났다.
얼마 후 명상 선생님 D는 제주시에 자신의 명상 공간을 만드셨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식과 명상을 콜라보하여 '음식명상'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곧장 우리는 프로그램 준비에 들어갔다. 나는 '음식 선정'과 '명상 음식 쿠킹클래스 진행'을 담당하고, 명상 선생님은 선정된 음식의 식재료와 완성된 음식으로 '명상 수업 진행'을 하기로 했다.
내가 준비한 첫 번째 명상 음식은 '메밀죽'이었다. 몸과 마음이 아파서 힘들었던 날, 동네 삼춘집에 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에서 엄마처럼 토닥토닥 해줬던 단 한 사람이었다. 삼춘은 내게 밥은 먹었냐 묻더니, 부엌에 들어가셔서 메밀죽을 쑤어 아무것도 못 먹은 내게 주셨다. 빈속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메밀죽을 마농지(마늘장아찌를 이르는 제주말)에 곁들어 먹었다. 이 음식 한 그릇으로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따뜻해질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메밀죽을 음식명상 첫 번째 메뉴로 선정했다.
명상 선생님은 메밀 한 톨에 하늘, 바람, 땅, 시간과 공간, 농부의 정성 그리고 만물이 담겨져 있음을 명상으로 풀어내셨다. 온 우주를 품고 있는 한 줌의 메밀로 사랑과 마음을 다해 만든 메밀죽은 나와 친구, 가족에게 자양분과 보살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메밀 한 톨, 마늘 한 쪽을 호흡과 함께 깊이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맛을 보다 보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하나됨의 경이로움을 알아차리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음식명상'이라는 수업을 사람들과 함께 나눴다. 마지막에는 온전히 혼자서 음식을 먹는 '고요히 식사하기' 시간도 주어졌다. 행사가 끝나고 경험을 나누는 시간, 이런 수업을 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내게도 흥미로웠다. 내가 먹는 음식 안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구나. 아주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존 명상이나 쿠킹클래스와 달리 '음식과 명상의 만남'은 반응도 좋았고, 재밌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음식명상을 책방에서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사는 동네엔 귤이 흔하다 보니, 귤을 가지고 명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가능하면 귤농사를 직접 짓고 있는 동네 주민들이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귤이 주렁주렁 열리던 가을날, 책방 앞 잔디밭에서 귤밭을 배경으로 귤 명상 수업을 열었다.
이번에도 명상 선생님 D는 손에 담긴 귤 하나를 바라보기부터 시작하셨다. 귤껍질을 만져보고, 귤을 까보고, 귤 한 알을 입에 넣어보며 씹히는 식감까지. 귤 하나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느끼게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이 귤 한 알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자연과 농부의 기나긴 여정도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지만, 하필 귤명상하던 날이 한창 귤 따던 때라서 주민 대부분은 귤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컸다. 대신 참여했던 손님들이 말했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제주에서 흔한 이 귤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메밀 한 톨을 바라보고, 귤 한 알을 천천히 먹는 시간.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식은 그렇게 명상을 만났다. 호흡하고 바라보면서 그저 음식을 먹다 보면, 살아갈 힘과 기쁨과 감사가 저절로 생겨났다.
키라네 책부엌은 음식이야기를 읽는 것을 넘어, 음식을 온전히 경험하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