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키우기와 호들갑 사이에서 균형 잡기
'대충 풀어놔도 잘 컸다'
육아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나의 경우에는 육아에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 같이 보이는 아빠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대충 풀어놔서' 키운다니 대체 언제 적 이야기인가. 말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형제들이 다섯여섯은 넘던 우리 부모님 때 이야기 아닐까. 그때는 대충 키운 만큼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나라가 발전하는 지표 중 하나가 영유아 사망률이다. 이제는 대충 풀어놔서 키울 시기는 지났다. 정말로 '대충 풀어놓고' 키웠다간 아동 학대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다만 표현에 표현상 과장된 면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의도만 보자. 맞는 말 인지도 모르겠다. 과보호보다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더 맡기고 자율적으로 배우고 자라도록 맡긴다는 말이라면 나는 그런 교육관에는 적극 찬성이다. 다만 이런 경우라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거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게 용기를 주고 기다려줘야 할 거다. 해주는 것이 속 편하고 쉽지, 할 수 있을 때까지 화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은 몇 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자라 온 환경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난 대충 풀어놔서 잘 크지 않았다. 엄마는 정보도 얻기 힘들고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도 않던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키웠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혼자 자란 줄 알았건 만, 그 뒤에는 부모님의 '노고'가 있었다. 새벽에 잠 못 자고, 사랑으로 업어 키운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알게 된 일이지만, 엄마는 제대로 써보지 못한 '보육교사' 자격증까지 땄다고 한다. 이 나이가 되어서 엄마를 다시 보게 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 부모님들이 어떤 노력을 했을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자신의 입으로 나는 '우리는 알아서 잘 컸어'라고 이야기하는 동년배 친구들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당신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아직 육아가 시작되지도 않은 내가 무엇을 알겠냐마는 밖에서 보는 입장에서 자칫 잘못되기 쉬운 육아의 길이 두 가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는 길이다. 요즘은 영어 유치원 들어가려면 시험을 본다고 한다. 단어 암기, 파닉스, 회화, 리딩 테스트까지. 심지어 부모 면접도 있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기본’,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선점해야 한다’는 불안이 만든 과잉이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네 살이다. 세상을 놀이로 익혀야 할 나이에 시험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일찍부터 경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필요한 걸까? 아이가 언어 발달이 빠르고 자연스럽게 영어도 접해왔다면 영어 유치원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부모에게 떠밀려서 벌써부터 경쟁의 트랙에 진입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누구의 필요고 누구의 속도였을까.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풍경도 있다.
“뭐, 애들은 알아서 큰다.”
“나도 유치원 안 다녔지만 잘 컸어.”
“요즘 부모들은 너무 예민해.”
그렇게 아이는 스마트폰을 친구 삼고, 언어 발달은 느려지고, 감정 표현은 닫혀간다. 놔두면 잘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운에 맡기는 육아는 아닐까. 세상이 바뀐 만큼 아이들이 올바른 어른으로 커가는데 어려움이 되는 일도 많아졌다.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은 줄어들고 중독적인 미디어는 넘치고, 학교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운에만 맡기고 있기에 나는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옆에서 충분히 사랑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고 한다. 동의한다. 사랑이 충만하면 문제없을 거라 확신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미 세상의 속도와 논리에 적응해 버린 내가 아기를 사랑하는 방식이 올바른 방식이 맞을까. 각종 육아 상담 채널들의 인기를 보면, 요즘 부모들이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그리 괜찮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진짜 도움일까.
게다가 문제는 방법에만 있지도 않다. 내가 언제나 사랑이 넘칠 수 있을까. 부모도 인간인데 피곤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아이에게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부모님에게 나도 많은 걸 받으며 자랐지만, 문득 그 사랑이 때로는 부담이기도 했고, 어떤 일들은 상처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역시 사랑은 정답이라는 걸 알지만, 실전은 또 다를 거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쉬운 정답으로 고민은 마무리한다. 서툴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