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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도 이 정도면 사람이다: 34주차

첫 하이파이브

by 퇴근은없다

드디어 34주 차. 지금부터는 아기가 밖으로 나와도 숨을 스스로 쉴 수 있는 시기다. 그래서 출산을 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시기로 보고 자궁 수축이 와도 라보파나 트랙토실 같은 자궁 수축 억제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조기 진통으로 3주 동안 입원했던 우리는 입원했던 기간 내내, 그리고 퇴원해서도 간혹 진통이 이어졌던 몇 주간, 이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40주는 바라지도 않았다. 34주만 되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어떻게든 34주만 되면 정말 좋겠다고,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니는 출산한 산모나 만삭의 산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몸 고생 마음 고생도 한때다. 지나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몇 달이나 지났다고 벌써 입원 생활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그렇게나 바라마지않았던 34이라는 숫자가 이제 우리의 것이 되었다.


쫑알이는 점차로 사람이 되어간다. 세포와 생명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은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의미가 칠해지는 시간들이 하나 둘 쌓이며 생명이 되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쫑알이의 태동을 느끼며 말을 걸고, 쫑알이가 잘 커가고 있는지 마음을 쓰며 건강하게 밥을 먹는 이런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쌓였고. 그렇게 쌓이는 시간만큼 쫑알이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는 아내 배에 조금은 딱딱하면서도 울퉁불퉁한 것이 만져졌다. 이게 대체 뭔가 하며 손을 대보고 있었는데, 내 의문스러운 손길을 느껴서 그랬는지 1cm는 튀어나올듯한 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내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그때까지 느꼈던 뭉툭한 느낌으로 하던 태동이 아니었다. 태아의 손은 샤인머스캣 한 알 정도 된다고 한다. 쫑알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니 포도알 정도 되겠지. 그 작은 손에도 엄지와 검지가 달려있고 이제 주먹을 쥐거나 펴거나 할 수도 있을 거다. 포도알과 같은 그 크기와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던 손의 위치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제의 그 태동은 손인 것이 분명하다. 내가 손을 대고 있었으니 처음으로 쫑알이와 하이파이브를 한 것이다.


쫑알이는 이제 세상으로 나와도 이름도 지어줄 수 있고, 출생신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인생 첫 하이파이브 이후에도 아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쿨쿨 코를 골며 잘도 자던데. 나는 미지의 세계와의 격렬했던 조우가 놀랍고 설레어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언젠가 쫑알이의 욕심에 (대게는 더 놀고 싶다던가, 간식을 먹고 싶다던가 하는 일들일 거다) 나도 피곤할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내가 욕심을 더 부려야겠다. 사람이 되었다지만 부디 34주가 아니라 40주 끝까지 꽉 채워서 튼튼하게 만나자. 34주만으로도 이미 감사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빨리 나오면 아직 작은 몸으로 힘들 테니까. 조금만 더 엄마 배 속에서 실컷 자고 맛있는 것도 먹고 튼튼해져서 나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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