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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커피 Nov 01. 2020

다름을 만드는 방법 - 제한의 미덕


예전엔 야간영업이 금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라에서 이것저것을 통제하던 시대였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놀고 싶은 욕구까지는 통제하지 못했기에 

불법영업을 하는 건전한 식당이 제법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서 이런 곳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지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어느 건물 현관에서 내려진 셔터를 서너 번 두드리면 한 5분쯤 지나서 사람이 나옵니다. 

어두운 계단을 따라서 2층에 올라가면 대충 50평이 넘는 감자탕집이 있었는데 

사방의 창문을 검은색 천으로 가려서 건물 밖에서 볼 때는 불이 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가득했고요.  


그러다가, 야간영업이 허용되었고 편의점을 시작으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각종 식당과 주점들이 생겨났습니다. 

24시간 영업이 허락되자 너도 밤새 놀기 시작했고, 

기존의 업장들도 24시간 영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었죠. 

그런데 그런 곳이 너무나 많아지다 보니 결국엔 밤샘 영업하는 곳이 다시 줄게 되었습니다. 

밤새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편의점의 등장은 놀라웠습니다. 

24시간 하는 가게에 없는 게 없었습니다. 품목은 점점 더 늘고 있죠. 

처음에는 동네 슈퍼에 비해서 비싼 가격으로 인해서 

낮시간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야간 영업이 허용되면서 밤문화가 생기면서

24시간 거의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편의점은 점점 더 늘어갔죠.  

언제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편리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딱 정해져 있거나 

거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벚꽃이 일 년 내내 핀다면 따로 벚꽃놀이를 가진 않겠죠?

단풍철이 한 6개월쯤 된다면 사람들은 사진을 덜 찍겠죠? 

제주도가 마포대교 중간에 걸쳐 있다면 그렇게 가려고 애쓰진 않겠죠? 

  

디저트로 유명한 모 카페가 있습니다. 

케이크와 구움 과자, 커피와 음료가 나옵니다. 여느 카페와 다를 바가 없죠.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매월마다 준비하는 케이크가 바뀝니다. 

1월의 맛, 2월의 맛, 3월의 맛. 이런 식으로요

늘 손님들이 많고 평판도 좋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집만큼 하는 집은 많아요. 

다른 점이라면 9월 맛있게 먹었던 케이크를 10월에 가면 못 먹습니다. 

그거 먹으려고 왔는데 없는데 짜증 나서 안 올래 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5월엔 이거네, 6월엔 뭐가 나올까 

작년 11월에 먹었던 그 케이크가 올해 11월에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됩니다. 

늘 먹을 수 없기에 소중하고, 기대되는 케이크를 만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래 이 곳을 사랑하고 꾸준히 다시 찾습니다.

  

특정한 계절에만 나오는 식재료로 만든 메뉴가 

매장의 시그니쳐 메뉴가 되는 것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죠. 

철 따라 나는 해산물이나 과일이 가치 있는 것도 이런 것이죠.  

 

이런 곳도 있어요. 

매장 영업시간이 매일 바뀌는 카페입니다. 

가게 sns 계정에 오늘의 일정을 올립니다. 


'오늘 낮은 1시에 열어서 3시에 닫습니다. 저녁은 추후에 공지하겠습니다.'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불편해서 어떻게 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 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려는 사람들로 가게가 가득 찹니다. 

주인은 어렵게 찾아온 손님들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고 기억하게 되고 

손님들 역시 이 특별한 공간과 커피 한잔에 반해 단골이 되곤 합니다.



저희 매장 역시 몇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저희 매장은 비스포크 커피 (be-spoke coffee)를 하는 '커피 바'입니다. 

'비스포크'는 맞춤정장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거기서 착안한 개념입니다. 

메뉴판에 있는 음료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은 자신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그에 따른 디테일한 커피를 받는 방법입니다. 


'화사한 꽃향의 커피를 좋아하는데, 평소에 카페라떼를 즐겨마셔요. 

에티오피아 커피를 라떼로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커피는 진한 게 좋고, 우유는 너무 뜨겁지 않게 해 주시면 좋겠어요. 거품은 최소한으로요'


커피를 주문하면서 페어링 디저트를 요구하면 그에 맞는 디저트를 맞춰서 드립니다. 

손님이 고를 수는 없고 다만 손님이 고른 원두와 메뉴에 따라서 디저트를 권해드립니다. 


'손님께서 오늘 고르신 커피는 과테말라 커피입니다. 고소한 견과류의 느낌이 좋은 커피라서

이태리식 생크림 푸딩인 판나코타 함께 준비해 드렸습니다. 푸딩 위에는 직접 만든 캐러멜소스와 캐러멜 코팅된 피칸입니다.'


처음에는 내 돈 내고 내가 사 먹는데 왜 케이크를 고를 수 없느냐는 항의를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커피에 맞는 적절한 케이크가 페어링 되었을 때, 맛의 조화가 극대화되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디저트를 맘대로 고를 수 없는 제한적인 상황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취향도 알아가고 바리스타와 소통하면서 커피 바의 매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거죠. 

여기에는 좌석이 4개밖에 없는 제한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만약에 이 공간에서 손님을 더 앉히겠다고 바를 줄이고 테이블을 놓는다면 이런 서비스를 원활하게 하긴 어려울 겁니다. 비록 웨이팅이 길어져서 기다리는 손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 적도 많지만 다른 곳과 같은 곳이 되지 않기에는 이 제한들이 공간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저희는 영업도 주 4일이고, 커피 외에 다른 메뉴는 없고, 테이크아웃도 안 됩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영업 비밀로 일단 남겨 두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여건이 안 되어 제한을 둘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공간의 크기, 매장의 위치, 직원의 수 등등  

그런데 여건이 안 되는데 꾸역꾸역 다 하려고 하면 아무런 매력도 없는 매장이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러나, 제한적인 것을 단순히 약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에서 더 좋은 것을 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다른 경험, 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긴 뭐가 안 돼'가 아니라 

'저긴 그게 좋아'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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